11. 박물관열람실(72)

57. [성서 말씀 명상]: 자화상 다듬기

solomong 2025. 10. 16. 10:00

 

 

 

57.  [성서 말씀 명상]: 자화상 다듬기

(요 21:15~23)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3번째로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에서 상봉하셨지만, 그 외 경우를 합치면 일곱 번째이었다. 3년 전 처음 만나서 제자를 부르시니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저버리고 주님의 뒤를 따라갔었다. 스위스의 철학자 칼. 히티는 "오늘이 나의 최초의 날(感激)인 것처럼, 또한 최후의 날(嚴肅)인 것처럼 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해변에서 처음으로 만나 뵈었던 그때는 <감격>에 찼었고, 3년이 흐른 지금 본문의 장면은 사제(師弟) 간의 <엄숙>함과 진지함이 가득 찬 상황이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상봉’에 대한 처음으로 언급하심은 최후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최후 만찬 후에, 감람산 가는 길목에서 제자들에게 부활 후에“갈릴리에서 만나자.”라고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신 주님과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제자들이 숙연한 재회 상봉(再會 相逢)을 하게 되었다.

 

갈릴리에서 만나서 말씀하신 것은 주님의 거의 공적 생애를 보낸 곳이며, 제자들의 옛 고향 땅인 갈릴리에서 부활 후에 현현하심은 그간 이미 보이신 교훈과 행적을 부활의 빛 하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이 담긴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첫 번째의 상봉은 <열 한 제자들>이 공포에 싸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문을 닫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으며, 두 번째는 회의주의자 <도마>에게 나타나시어 믿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셨다.

 

주님께서 부활 후에 3번째 제자들과 상봉하신 현장의 상황은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 일행은 밤이 지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이른 아침에 부활한 주님께서 이들에게 나타나시어 풍어(豐漁)를 얻게 하시고, 밤새 피곤한 제자들에게 아침 해변의 조반 향연을 베풀어 주셨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 대한 유명한 사랑의 삼 문답을 하셨는데,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3번 그의 사랑을 다짐하신 것이었다. 더욱이 조반 석상 옆에 숯불을 보시면서 실수한 그에게, 또다시 숯불 곁에서 끝없는 반성과 은총을 베푸는 장면이었다.

 

그리고서는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가를 말씀(殉敎)하시자, 이에 베드로가 주님께 “사도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질투와 시기심이 함축된 마음과 요한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여쭙게 된 것이었다. 주님의 답변은 “네게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씀하심은“너나 잘해!”라는 핀잔을 주듯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는 자기관리(너나 잘해서)를 잘해서, 위대하고 장엄한 생애의 최후를 마감했던 것이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너나 잘해!)라는 말씀은 <자화상의 다듬기>를 잘하라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는데, 특별히 인생 석양 길을 걸어가는 자들에게 주는 귀중한 교훈의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자화상(自畵像)>이란 윤동주 詩人이 쓴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거울 같은 우물물(明鏡止水)에 비친 자신의 자화상의 얼굴을 보고선 뜻이 맞지 않고 초라한 몰골에 밉게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가도 머잖아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자괴의 탄식과 딱하게 여기는 연민이 교차하게 된 것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바로 보아 양심에 거리끼고 떳떳하지 못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됨은 고뇌에 찬 큰 용기요, <자화상의 다듬기>를 새로이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자화상의 다듬기를 잘 할 수 있겠는가?> 그 기준 내용을 다음 바울 서신의 말씀에서 생각해 본다. 사도 Paul이 제1차 로마 옥중생활을 하다가, 방면되어 디모데 제자에게 쓴 편지(딤전 1:5~7, 1)에 의하면, 청결한 ‘마음’ 바탕이라야“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마 5:8), 이 청결의 미덕은 외식과 두 마음에서 벗어남을 의미하고 있다. 그다음은 ‘선한 양심’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수평적으로 대인(對人)과 대물(對物)과의 관계로써 윤리 도덕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지각(知覺)에서 출발하여 선악(善惡)을 아는 기능이며, 동시에 정서 감정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거짓 없는 진실한 ‘신앙’을 말함인데, 수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특별히 기도 생활을 잘하라는 말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對話)요, 영혼의 호흡(呼吸)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기독 신자에게로 이끌어 들이는 통로(通路)라고 하겠다. 이처럼 우리 각자 자신의 자아상의 청결한 마음, 윤리 도덕 문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다듬기도 급한데, 타인의 결점과 잘못을 논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 물으심은 지난날의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하기 위한 베드로 자아상을 다듬기를 잘하라는 저의(底意)의 말씀이었다. “3번 나를 부인하지 않느냐!” 그러니 “네게 무슨 상관이냐?” “이제부터 너나 잘해!” 베드로가 걸어야 할 길이 따로 있으니, <자화상 다듬기>나 잘하라는 말씀이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 다듬기를 잘해서 마지막 장엄한 순교로 종지부를 매듭지었던 것이었다.

 

우리 역시 이젠 “내 과거의 험상궂은 모습을 다듬기나 해야지, 너(You)에게는 상관치 말아야 하겠다.” 특히 인생 석양 길을 걷는 자들에게는 바쁜 인생 여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마음이 청결하여야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이웃 형제나 물질에 선한 양심으로 대하며, 하나님과는 기도를 통해서 부단한 대화를 해야만 영혼의 호흡이 잘 소통될 뿐만 아니라, 마지막 가는 길에 건강을 위시한 거침돌이 앞을 가로막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 들이는 기도의 통로로 잘 소통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끝.

2021년 9월 23일

山下연구소장: 양 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