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물관열람실(72)

56. [칼럼: 현대의 ‘황성옛터']

solomong 2025. 10. 14. 10:36

 

56. [칼럼: 현대의 ‘황성옛터']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엽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이루어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나는 가리로다 끌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 깊이 묻어놓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1932년에 작사, 작곡되어 부르게 된 ‘황성옛터’의 노래(작사: 王平, 작곡: 전수린, 노래: 이애리수)에 얽힌 일화(逸話)는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풀이 되는 듯해서 가슴을 쥐어짜는 듯이 아프다. 경북 청송군 교육 삼락회원인 박두식씨가 쓴 ‘황성옛터’에 대한 일화를 먼저 요약해서 소개하고, 현대의 ‘황성옛터’에 대한 소감의 일단을 펴볼까 한다.

 

1928년 ‘지두환’이 이끄는 순회극단이 만주 일대와 평양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무대 감독 겸 작사는 王平이 맡고 있었다고 한다. 개성에서 공연을 마친 왕평과 전수린은 옛 高麗의 영화를 되새기면서 달빛 쏟아지는 만월대의 옛터를 찾아 거닐 때, 달빛에 비쳐진 王城의 옛터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폐허가 되어 있었고, 벌레 소리만 쓸쓸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고 한다.

 

전수린은 온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괴로움에 지쳐 있는 터이기에, 만월대의 정경이 더한층 옛날 역사를 회상케 해서 눈물지으며 말없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에 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객지의 여인숙에서 만월대를 거닐었던 그 밤이 회상되어, 전수린은 황성옛터에 대한 악상이 떠올라서, 바이올린을 들고 즉흥적으로 연주하게 되었고, 그 멜로디를 왕평이 오선지에 옮겼다고 한다.

 

그 해(1932) 가을 그들이 서울 ‘단성사’(團成社)에서 공연할 때, 연극 막간에 이애리수가 ‘황성옛터’의 노래를 불렀는데, 객석에 있던 관객들의 눈은 눈물로 가득하였으며, 흥분한 관객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고 한다. 절망적일 정도로 애조 띤 이 노래를 듣던 관객들은 망국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이애리수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관객도 함께 부르게 되었고,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황성옛터는 1932년 이애리수의 노래로 발매되어 순식간에 5만장이 판매되었으나, 조선총독부는 민중에게 조선민족의 자각을 선동할 수 있다고 하여, ‘황성옛터’ 발매를 금지 시켰다고 한다. 왕평과 전수린은 종로경찰서의 취조를 받고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고 한다. 총독부는 이 노래를 부르는 조선인을 발견하는 즉시 심문하고 취조되었고, 대구의 모 보통학교에서는 창가 시간에 이 노래를 불렀다고 음악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쫓겨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성옛터’는 끈덕지게 불러지게 되었고, 이애리수는 민족의 여인으로 호칭되어졌다고 한다. 군사문화 시대 박정희 대통령은 술좌석에서 늘 '황성옛터'를 즐겨 불렀다고 전해진다. '황성옛터' 가요는 일제 강점기시대에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며 불렀으며, 노래 속의 ‘황성’(荒城)은 주권을 잃은 대한제국을 일컫는 뜻이었다. <아리랑과 함께 황성옛터>는 애국심(愛國心)을 자아내는 우리 민족의 노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서울의 북악산(北岳山) 산하(山下)는 '현대의 황성옛터’가 되어, 만추의 낙엽만이 쓸쓸히 대지에 뒹굴어 다니고, '북악산'에 부딪친 국민주권의 함성은 메아리 되어 그냥 울려 퍼지기만 한다. 우연이 아닌 것이 그 아버지가 고려 왕성(王城)이었던 송악산 산하 만월대였던 ‘황성옛터’의 노래를 술좌석에서 즐겨 불렀다는 것은 지난 날 왕권의 허무, 일제친일의 후회, 비명(非命)의 죽음 예견, 그리고 사랑하는 딸의 슬픈 종말 미리 예감하고서, 비가(悲歌)를 애석(哀惜)해서 혹여 부른 것이 아닐까?

 

뭐가 그 자리가 그리 좋단 말인지, UN. 사무총장 자리를 위해서 그처럼 애써 주선했던 그 임의 고마움도 망각한 채, 그 임의 죽음에 애도 한번 없이 의리를 저버리고, 북악산 산하만 연연하는 잠룡이 있는가 하면, 2016년 11월 20일 ‘나라 망신 사건에’에 연루된 검찰의 3인 기소장 속에 ‘현대의 황성옛터’의 주인공이 ‘공범’으로 적시되었으니, “자진 퇴진할 경우, '명예'를 지켜주겠다.”고 공언한 잠룡 중에 한 사람의 발언은 벌써 ‘북악산 山下’에 들어 갈 기득권(旣得權)을 얻은 것처럼, 쾌재(快哉)로 흥얼거리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참된 지도자를 찾지 못한 영특한 백성들의 한숨 소리는 깊어만 가니, 어이하리요! "하나님이시여! 굽어 살펴 주소서! 차제에 ‘거짓과 가짜’들을 모조리 청산하고, ‘참과 진실’만이 통하는 새 나라의 융성한 국운(國運)이 움트는 계기로 삼아 주소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R. Tagore, 1861-1941)의 ‘동방의 등불’의 일부분을 읊조려 본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부디 이번 국제적 망신이 전화위복의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면서 필을 놓는다. 끝.

2016년 11월 21일

산밑 연구원: 양       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