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눈물의 골짜기
(본문: 시편 84:1~12)
1). 서론: 서양에는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이때의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릅니다. 딸이 시집살이하다가 속상해할 때, 조개가 살속에 박힌 모래알의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잘 참고 견뎌내라는 뜻일 것입니다. 살다보면 우리 삶속에도 이런저런 모래알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시련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오늘 흘리는 눈물은 내일 아름다운 진주가 되게 해야하겠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시 126:5) 말씀이 있지요.
힘을 얻고 더 얻어 시온에 올라가 하나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시인은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4:6~7).라고 읇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물 골짜기를 반드시 인종하면서 통과해야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아삽의 시는73~83편으로 끝나고, 고라 자손의 시가 시작 됩니다. "주의 집"에 대한 열렬한 정은 42~43편과 통하여 같은 저자의 작품인 것을 말해 줍니다. 저작의 시기는 성전이 아직 건재한(1~4, 10절) 포로기 이전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혹은 이를 다윗이 사울이나 압살롬을 피하는 작품으로 추측하나, 고라는 다윗의 악인이었으므로 다윗 정신을 표현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본문 내용은 두 "셀라"로 3분 되어 있으며, 각 부는 "복이 있나이다."로 집약됩니다. 즉 (1). 성전을 사모하는 자의 복(1~4), (2). 성전 순례자의 복(5~8;그래서 성전을 사모하여 순례의 길을 가는데는 <눌물의 골짜기>도 통과해야 하는 아픔이 있음.), (3). 주께 의지하는 자의 복(9~12)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본문 시인의 생각은 성전 밖의 사람을 무시하고 오직 예배와 기도, 찬송과 제사를 드리는 형식적인 성전 내의 경건만을 즐기고, 성전 밖의 실제적인 삶의 투쟁을 회피하는 불건전한 신앙을 갖인 사람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예배와 성전을 절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마음, 하나님의 입김으로 호흡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고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영혼의 갈구, 그 심령의 간절한 소망 등을 그려준 아름다운 본문 시라고 하겠습니다.
"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이 있다."(5절) 라고 함은 성전 안에서 스스로 자족하고 마는 삶이 아니라, 삶이 고달프고 지루한 투쟁에서 온갖 불의와 악의 세력과 더불어 지저분하고 어둡고 습기에 찬 인생의 골짜기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심령들이 하나님이 계신 은혜의 보좌로 가고파 하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흑암이 지배하는 세계와 불안이 서린 역사의 현실에서 안전과 축복이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품안에 안기고 싶어하는 고달픈 영혼의 갈구라고 할 것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애타게 사모한다는 시편 42, 43편과 같은 말은 쓰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애가 타서 지쳤다고 함은 본문 시의 톡특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시인이 야웨의 "장막"이란 말을 쓴 것은 '건물'을 뜻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자비, 은총,도움, 보호, 축복 등은 인간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사모하다가 지친다고 할 만큼 깊은 영적 은혜에 대한 갈구라고 할 수 있수 있습니다.
참새나 제비는 하나님의 성전 처마 밑에서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보금자리를 가지고 행복스런 나날을 보내는데, 본문의 시인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은혜를 받아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악과 더불어 싸울 수 있는 근거와 진실과 사랑의 사자로 일할 수 있는 믿음의 보금자리를 하나님 안에서 가지고파 하는 심령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4절) 함은 영적 은혜에 잠겨 사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수난의 현장이나 수욕의 골짜기나, 버림과 고독의 광야에서나 울분과 비극의 감방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 그곳을 자기 집으로 하여 안심과 평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은혜의 손길에 붙잡혀 살아가는 사람은(결코 성전 안에서 제사 행위와 찬송과 기도만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난다고 해도 많은 샘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하며 이른 비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6절) 여기 "눈물의 골짜기"란 말의 히브어는 "바카"(הבכא)는 "눈물을 흘리다." ,"울다"라는 뜻으로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찾아 오는 순례자의 무리들이 지나가야 할 어느 "메마른 골짜기, 물을 구할 수 없는 골짜기"로 성서 주경학자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물의 골짜기"라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본문의 시인으로 하여금 예배지상주의자로 만들지 아니하고, 삶의 전쟁터에서 온갖 시련과 비애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마음, 즉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으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 23:4) 같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간다고 해도 그곳은 순레자들의 목마른 목을 축일 수 있는 오아시스가 있는 샘물을 만나는 것과 같은 만족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힘은 다만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령이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내적인 힘, 곧 영혼의 이른 비를 맞고 샘물이 솟아나는 것 같은 영적 힘을 하나님의 생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다시 갈하지 아니하는 생수가 솟아난다."는 축복을 거리의 여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요 4:14) 이러한 영적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은 예루살렘 순례자가 시온 성에 도달함으로 그의 영혼과 육체가 환희에 차듯 그 마음에는 "시온의 길"이 아니라, "시온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직접대면하는 은헤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 영적 교제는 극치에 달하게 됩니다. 그의 "눈물의 골짜기"는 살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에 잠긴 사람은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의 만족을 비유하자면, 하나님의 집에 영원토록 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의 집 안에서 사는 것이 천날(千日)도 하루같이 즐거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10절)
이것은 악인이 제공하는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의 신세가 더 행복하다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 정직하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12절) 여기에 "의지신앙"이 주는 축복을 이 본문 시인도 말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본문을 쉽게 풀이 해보았습니다만, 그 요점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자는 복된자이며, 그 성전을 향해 가는 순례의 길은 비록 "눈물의 골짜기"로서 고생스런 길일지라도 오아시스가 있으며, 이렇게 사모심과 괴로운 여정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심은 축복 받는 길이란 것입나다. 그렇다면 오늘날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는 인생살이를 사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묵상해 봅시다.
'눈물 골짜기'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의인의 구원은 주어지지 않으며, 찬송가 가사처럼 "눈물 골짜기 더듬으면서 나의 갈 길 다 간 후에 주의 품 안에 내가 안기어 영원토록 살리로다."라는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어야 하겠습니다. 열린 천국 문을 향하는 자가 어찌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에 쌓아놓은 것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만 하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며 산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자녀로 이 땅을 살아갈 때에 때론 눈물 골짜기를 걷더라도 하나님께서 많은 샘과 이른 비를 예비해 주셨음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천국이라는 미래를 소망하는 동시에 우리의 인생에 이미 '많은 샘과 이른 비'를 예비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눈물 골짜기'를 지나갑니다. 나이가 들면 눈물샘이 막혀 안구건조증이 온다고 합니다. 동시에 나이가 들어서 눈물이 적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감정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노화된 결과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음에 쌓인 것을 자주 토해내기 때문입니다. 수다를 많이 떠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감정에 쌓인 것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한 교수는 재학 중인 의대생을 대상으로 ‘분노와 죽음’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그들이 50대가 되었을 때, 사망률을 조사해 보니, ‘적대감이 높았던 그룹’이 ‘낮았던 그룹’보다 7배 이상 사망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분노와 죽음의 상관관계를 보여준 연구 결과입니다. 그래서 분노처럼 마음의 독소를 없애는 해독제로 ‘눈물 치료’법까지 나왔습니다. 눈물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감정을 순화시키고 몸을 이완하는 데 무척 효과적인 것이 입증됐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의학적으로 눈물을 흘리면 몸속에 있던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눈물과 함께 배출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속상한 일 때문에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지는 것도 이런 신진대사 작용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면 면역 항체가 2배 이상 늘어나 암세포 증식을 억제시키며, 심혈관계 순환기, 호흡기, 면역계, 소화기계 등의 활동이 활발해져 신진대사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수다를 떨 기회도 눈물을 흘릴 기회도 많지 못합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게 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나고서야 뒤늦게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억지로 눈물 치료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물 골짜기를 피해 가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눈물 흘릴 일이 없도록 세상의 형통(돈, 명예 등)을 추구합니다. 때론 강한 인내력을 가지고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런 위로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건강을 잃고 돈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잃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 만나는 대적은 우리의 눈물을 쏟게 만듭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눈물은 우리의 영혼의 강물이 되어 우리의 심령을 적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많을수록 더욱더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할수록 더욱더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눈물의 골짜기는 기쁨이 샘솟는 골짜기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통해 우리는 영혼의 치유를 얻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육체 가운데 있기에 여전히 자신뿐 아니라 혈육과 이웃의 아픔과 죽음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은 나그네 길입니다. 본향을 향하여 거쳐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삶의 종착지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인생의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절망으로 치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만약에 나그네 길이 영원한 길이라면 그것 자체가 지옥일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순례자입니다. 순례자는 목표가 분명합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압니다. 삶 전체가 어두운 터널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삶은 지옥입니다. 그러나 터널의 입구와 출구를 알고, 반드시 터널의 출구를 빠져나갈 것을 아는 사람은 터널을 지날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고생스럽고, 속상하는 일이 닥처도 분노의 칼을 가는 울분보다, 분함을 눈물로, 눈물이 나지 않으면 서러운 정서 감정으로 가슴을 부등켜 안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심령을 적시게 하는 기쁨이 샘솟는 골짜기로 변하게 하나님께서는 인도해 주십니다. 특별히 인생 석양길을 걷는 자들은 울분을 가슴에 묻어 두지 말고 발산함으로 정서 감정을 순화 시키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4). 결론: 눈물 골짜기는 눈물을 흘리며 가는 눈물의 장소입니다. 눈물 골짜기는 누구나 지나가는 골짜기로 예외가 없습니다. 눈물 골짜기는 우리의 훈련장이기도 합니다. 눈물 골짜기에서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깨닫게 되고, 깊은 감사를 하게 되지요.
또한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 만나는 대적은 우리의 눈물을 쏟게 만듭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눈물은 우리의 영혼의 강물이 되어 우리의 심령을 적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많을수록 더욱더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할수록 더욱더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눈물의 골짜기는 기쁨이 샘솟는 골짜기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생스럽고, 속상하는 일이 닥처도 분노의 칼을 가는 울분보다, 분함을 눈물로, 눈물이 나지 않으면 서러운 정서 감정으로 가슴을 부등켜 안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심령을 적시게 하는 기쁨이 샘솟는 골짜기로 변하게 하나님께서는 인도해 주십니다. 특별히 인생 석양길을 걷는 자들은 울분을 가슴에 묻어 두지 말고 발산함으로 정서 감정을 순화 시키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끝.
2024년 8월 18일
山下연구소: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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