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젊음을 독수리처럼 힘차게 달리자!
(시편 103: 1~22)
1). 서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며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많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가 사모하고 바래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가져도 하나님이 없으면, 그 인생은 빈털터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세상적 기준으로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시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부요한 사람입니다. 내 마음과 삶의 중심에, 모든 은혜와 회복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모시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특히 젊음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께 만강에 넘치는 감사한 마음으로 힘찬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2). 본론(Text):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은혜, 특히 사죄의 은혜로 인해 주를 찬미할 것을 고조합니다. 본 시의 저자를 표제대로 대윗으로 보는 편과 후대, 포로기 후기의 무명의 작가로 보는 편으로 의견이 나누어 집니다. 후자의 근거로 본 시에 아람어풍이 있는 것, 욥기, 예레미야, 및 이사야서 후반기의 상통하는 점들이 있는 것이 지적됩니다. 성경 표제대로 다윗의 저작이라고 하겠습니다. 내용은 1. 개인적인 회복의 감사(1~5), 2. 모든 성도들의 사죄의 감사(6~18), 3. 천군 천사의 송축입니다.
3). 본론(Context): 본문의 시는 "내 영혼아 야웨를 찬미하라."는 말로 시작하여 똑같은 말로 끝맺고 있는 아름다운 신앙시의 하나입니다. 여기 하나님 은혜의 긍휼에 흠뻑 젖어 있는 만족한 영혼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 통치의 위엄을 보는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가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102편에서 우리는 인생의 석양을 맞이하는 중년 신자의 모슴을 볼 수 있었는데, 본문 시에서는 새파란 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 청년의 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앙 청년이 가져야 할 믿음은 첫째,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격이 있어야 하고 둘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하고, 세째로 그 주권과 은총을 행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의 은총에 대한 고백을 본문의 시인은 시편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기분이 전 시편에 넘쳐 흐릅니다. 그 감사와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본문의 시인은 인생 경험이 앝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한 사람으로 청년들에게 줄 신앙의 교훈으로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잊지 말 것을 (2절) 권고하고 있습니다. 맨처음에 나온 은총은 "은택"이란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공동번역은 "은덕"이라고 했습니다.
이 원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여러 가지 일들"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시인은 일반적인 하나님의 행사보다 3절 이하에서 그 행하신 일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일"(3절),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일"(3절), "파멸에서 생명을 건져 주시는 일"(4절), "인자와 긍휼로 면류관을 씌워주시며"(4절),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일(4절) 등입니다.
이 모든 은총의 내용은 하나님의 선한 대접, 그의 구원사, 그의 병고침, 그의 죄사함,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베푸실 수 있는 여러가지 사랑과 관심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일들입니다. 과거에 어떤 곤경에 빠졌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목숨을 죽음의 자리에서 건져주신 은총을 말합니다. 본문의 시인은 과거에 병도 알았지만, 그 병마에서 해방시켜 고쳐 주셨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까지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셨고 죽음의 위험에서 그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새로운 삶을 받았습니다. 그의 삶 전체는 온총무한이요, 은헤무궁입니다. 이것을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웠다."고 했는데 생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 사랑의 연속이요, 또 그가 자비하게 여겨주시는 사건들의 연속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내 자신이 없다고 할 만큼 강한 하나님 은헤의 손길에 의하여 재창조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고 한 그대로 은총에 대한 감격입니다.
이렇게 육적으로 영적으로 새 삶을 얻었기 때문에 새롭게 청춘을 회복했다는 감격입니다. 독수리가 힘차게 푸른 창공(蒼空)을 차고 날아가듯이 이 은총의 손에 붙잡힌 자신은 독수리처럼 힘차게 날아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이 청춘의 재창조입니다. 새로운 젊음의 탄생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사로잡혔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참 젊은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러한 은총의 손길을 베푸십니까?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본성이 진노와 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은총과 긍휼과 인자의 하나님이신 데서 가능한 것입니다.(8~10) 여기 이스라엘의 역사가(歷史家)인 J기자가 밝혀 준대로 오래된 하나님 신앙이(출34:6) 다시 반복되어 있습니다. 나이에 의한 청춘보다 은총의 감격에 의한 하나님의 새 창조에 의한 청년의 모습이 여기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야웨는 옥좌를 하늘에 두시고 온 누리를 다시리신다(19절). 너희 모든 피조물들 그의 다스림을 받는 너희들은 야웨를 찬양하라"(22절).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다스림을 밝힙니다. 이 주권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을 지배하십니다. 은총의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의 모든 만물이 그의 손 아래 지배되고 있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배권을 무시하거나 항거하는 일은 피조물이 범하는 최대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인정은 곧 "하나님은 왕이라"(시46:7)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인간의 최초의 범죄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같은 자가 되어보고자 한 교만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주권성(主權性)을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무시함은 곧 인간이 하나님을 지배하겠다는 교만입니다. 인간 역사의 교훈은 인간은 이 교만으로 스스로 자멸의 길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옥좌를 두셨다는 사상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이란 뜻도 되지만, 사실은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주권의 불가침의 경게선을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경게선을 분명히 지키는 것이 인간의 피조성과 또한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위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청춘을 소유하는 축복은 항상 하나님의 주권 아래 복종하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청춘은 제 위치를 찾습니다. 젊음의 정열이 지나쳐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할 때 그는 스스로 그 젊음을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다음 마지막으로, 청년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그의 주권 아래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라고 거듭(11,13,17절) 말하고 있습니다.
"경외"는 결코 원시인들이 가지는 공포감이 아닙니다. 신적인 존재 앞에 자기 자신을 무(無)로 돌려버리는 자기 거부나 자기 부정이 아닙니다. 야웨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과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바른 태도를 알게 하셨습니다. 무서워서 죽는 시늉을 하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경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그 주권자에 대한 정당한 태도를 가지는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 태도를 구약에서는 "경외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2편 기자는 "경외함으로 섬기며 떨며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시2:11) 이는 정당한 공경심에서 든든함을 얻고 또 그 든든함에서 얻는 삶의 즐거움을 가지는 태도입니다. 경외심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 대한 바른 태도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야웨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잠1:7)
* 이상과 같이 본문을 좀더 쉽게 풀이 해 보았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주권에 대한 인식을 행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찬송하면서, 우리 靑春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청춘"이 무엇입니까?: 본문에 의하면, 시인은 과거에 죄와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 당한 경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3절).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죄를 용서함 받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5절)라며 고백하는데, 시인이 말하는 "청춘"은 히브리어 성경에 "נָעוּר"(나우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원래 의미로는 "젊은 시절", "힘이 왕성한 시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은 질병 등으로 인하여 젋은 나이에 모든 힘을 잃어 버리고 기력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심은 비록 시인은 젊은 나이에 질병 등으로 인하여 기력을 잃어 버린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심을 믿고 있습니다. 특히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טוב)으로 만족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은 지극한 선(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의 소원을 만족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의 쇠약해진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회복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의지하는 자를 하나님은 회복시키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환골탈태를 말할 때 독수리를 비유로 자주 말합니다. 독수리는 70년을 사는데 40년쯤 되었을 때 길어진 부리와 발톱과 두껍고 무거워진 날개의 털을 뽑어내고 새롭게 자라난 부리와 발톱과 날개를 가지고 남은 30년도 하늘의 왕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환골탈태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감내하기 정말 힘들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30년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우화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 그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은 가볍지 않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고 말하면서 5절에서는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 “독수리 같이 새롭게 ---”란 말씀이 그런 환골탈태가 주는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우리는 기독교적인 용어로 중생이나 거듭남이란 표현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환골탈태 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것은 3~4절 말씀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란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서 건져 구원하시고 새롭게 하심으로 독수리처럼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땅바닥이나 헤치며 벌레나 이삭이나 주워 먹는 병아리가 아니라 힘차게 하늘로 비상(飛上)하며 매일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란 사실을 기억하면서 독수리처럼 젊음을 훨훨 날면서 찬송하며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주권에 대한 인식을 행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잊지 않고 복음 선교를 잘하는 삶을 살아 갑시다.
4). 결론: 여러분! 특히 젊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며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많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가 사모하고 바래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가져도 하나님이 없으면, 그 인생은 빈털터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세상적 기준으로는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시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부요한 사람입니다. 내 마음과 삶의 중심에, 모든 은혜와 회복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독수리처럼> 힘차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끝.
2025. 9. 29.
山下연구소: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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