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48. 저마다의 괴로운 날

solomong 2025. 9. 24. 09:39

 

48. 저마다의 괴로운 날

(시편 102: 1~28)

 

1). 서론: 우리는 본문 시인의 성숙한 신앙을 엿볼수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괴로운 날'은 '기도하는 날'이었습니다. 또한 괴로움의 정도에 정비례하여 그의 부르짖음의 강도도 달라졌습니다. 즉 시인은 고난이 오면 기도하고, 고난의 강도가 강해지면 더욱 간절히 부르짖으며, 더욱 강력한 기도의 진을 펼쳐서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괴로운 날이 다 있습니다. 이 괴로움을 본문의 시인처럼 기도하는 신앙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시인은 극한 고민 중에 빠지면서 자신의 고통을 포로 중의 이스라엘의 고난에 비하며, 회개하면서 시온의 회복을 빕니다. 저작의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포로기 말기의 저작으로 추측되고, 저자는 느헤미야, 에레미야, 다니엘 등의 추측들이 있으나 분명한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의내용은 3분 되어, 1. 시인의 고민(1~11), 2.시온의 회복(12~22) 및 3. 장수의 기원입니다.(23~28)

 

3). 본론(Context): 본문의 시는 일곱 개의 "참회시"( 6, 23, 38, 51, 102, 130,147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참회를 나타내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다만 시인의 고난상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이 고난은 죄의 고통애서 온 것이라 생각함에서 "참회시"란 이름을 얻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나타는 시인의 고난상은 단순히 죄책감애서 온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시인을 괴롭히는 원수들(1~11)로 말미암은 것임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의 고난을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괴로운 날"(2절), "내 날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내 뼈가 숫불처럼 타고"(3절), "식욕을 잃었고 맥이 다 빠지고"(4절),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쇠약해졌고(5절), 그 고독하고 딱한 사정은 "광야의 당아새, 황폐한 곳의 부엉이, 외로운 참새" 같다(6절), "원수들의 악담을 종일 들으며, 미친 듯이 날뛰며"(8절), "재를 눈물에 말아 밥처럼 먹는" 신세가 되옵고(9절), "시들어지는 풀,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11절)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본문 시인의 고통은 육적이며, 정신적이며, 날마다 순간마다 고통의 연속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고통은 시인을 괴롭히는 원수들 때문이지만(8절) 본문 시인은 원수의 공격과 모략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를 높이 드셨다가 던지셨다."(10절)는 것은 시인의 고통이 마치 돌풍에 말려 올라가는 검부러기 같이 비참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욥도 자기의 고통을 이러한 돌풍과 비교하고 있습니다.(욥 30:22) 그러나 본문 시인은 자기의 고통의 넋드리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괴로움을 호소할 때가 있음을 본문 시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1절과 2절에 밝혀진 그의 신앙심이 없었다면 그는 참으로 "시드는 풀같고 어둠에 삼켜져 버리는 석양 그림자 같이(11절) 허무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롭고 과로워도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소서, 내게 속히 응답하소서" 하는 애원과 호소의 기도를 할 수 있음이 본문 시인의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괴로운 날"도 다만 "괴로운 날"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의 괴로운 사정을 돌보시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을 통하여 "살아계신 구속주를 만날 수 있고"(욥 19: 25), "이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그의 말씀을 귀로 듣고 그의 얼굴을 친히 볼수 있음을"(욥 42:5) 자랑함과 같은 신앙을 본문 시인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이 그의 노래가 되어 이 시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는 다음 부분인 12~22절까지의 내용이 앞에 나온 고난의 호소 부분1~11)과는 문학형식도 다르고 그 주제도 다르기 때문에 많은 주석가들이 다른 작자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로 찬양시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찬양의 주제는 시온(Zion)이며 이 노래의 삶의 자리는 포로시대 또는 포로시대 이후 시대의 예배의식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도시 시온과 멀리 떨어진 환경에서 시온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특히 14절에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라는 귀절이나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한다"(20~21))는 말씀은 본문 시인이 포로생활의 환경에서 시온을 그리워함을 보여 줍니다. 물론 "갇힌 자"나 "죽이기로 정한 자"가 포로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본문 시가 포로시대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근거가 박약함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시 137:1)는 귀절과 연결시켜 보면 포로시대 환경에서 본문 시를 지었다고 추측함이 무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둘째 부분과 첫째 부분이 동일한 작자의 시라고 한다면 모빙켈의 주장과 같이 신년 축제때 왕이 민족을 대표하여 민족의 고난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이 왕의 도심인 시온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기억되고 모든 삶의 중심지로 찬송과 기도의 대상이 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시의 마지막 부분(23~28절)도 첫째 부분과 같이 시인의 고난상을 말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서 자기 자신의 현재 당면한 육체적 정신적고통을 호소함보다 인생의 석양을 맞이한 중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으로 노쇠하고 병들어 일찍 죽는 일에 대하여 허무감(虛無感)을 느끼고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신다.", "내 날을 단축하신다."고 함으로써 자기의 일생이 하나님의 수중에 달린 것임을 고백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자기를 "중년에 데려가지 않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시인은 인생의 날이 짫음에 비하여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는 분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비록 괴로운 오늘이 나의 현실이요, 자기 목숨의 종말을 자신이 알지 못하는 허무한 인생이라고 해도 영존하신 하나님과의 산 교제관계만 되어 있으면 오늘의 고통과 인간의 허무성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존성으로 읽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 1장 11절 이하의 귀절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퀴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사라진다 해도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고 옷이 낡아지듯이 만물이 낡아버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어제나 오늘이 똑같으신 분이라고 믿는 신앙이 오늘의 괴로움을 잊는 길입니다. 이같은 사상은 이사야 34장 4절과 51장 6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하늘의 일월성신이 다 사라지고 만물이 포도나무 잎이나 무화과나무 잎처럼 말라버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나의 괴로운 날"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히 변치 않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니"(12절), "창조함을 받은 백성은 여호와를 찬송할 수밖에 없다."(18절)고 했습니다.

 

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영원히 잇대어 사는 사람입니다. 공동번역에 본문 시의 28절을 빼버린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귀절이 있어야만 27절에 반복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이 서로 관계를 맺게 되어 유한한 인간이지만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사람이 주 앞에 굳게 선 사람이라는 뜻이 분명하게 됩니다.

 

* 이상과 같이 본문을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본문 시인의 <괴로운 날>(고난상)을 3가지로 피력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시인의 고민(1~11절)은, 원수들로 말미암은 악담을 종일 들으며 사니, 삶이 재를 눈물에 밥처럼 먹는 신세가 되고, 시들어 가는 풀처럼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림으로 극복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로는 민족의 고난인 시온(이스라엘 전체)의 회복을 호소함입니다.(12~22절) 특히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한다"(20~21))는 말씀은 본문 시인이 괴로운 포로생활의 환경에서 시온을 그리워함을 보여 줍니다.

 

또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시 137:1)는 귀절은 본문과 연결이 됩니다. 모빙켈의 주장과 같이 신년 축제때 왕이 민족을 대표하여 민족의 고난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이 왕의 도심인 시온은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으로 기억되고 모든 삶의 중심지로 찬송과 기도의 대상이 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본문 시의 마지막 부분(23~28절)도 괴로운 고난상을 말합니다. 시인은 여기에서 자기 자신의 현재 당면한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호소함보다 인생의 석양을 맞이한 중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으로 노쇠하고 병들어 일찍 죽는 일에 대하여 인생의 허무감(虛無感)을 느끼고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신다.", "내 날을 단축하신다."고 함으로써 자기의 일생이 하나님의 수중에 달린 것임을 고백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자기를 "중년에 데려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본문의 3가지 고난상은 오늘날 우리들도 저마다 괴로운 날이 다 있습니다. (1). 각자의 고난1~11): 우리들의 저마다 괴로움이라는 것은 극도로 심령의 피곤이 오는 때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영적으로 피곤이 오게 하고, 원수에게 훼방 거리가 되게 하여 눈물로써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도로 심령의 곤핍을 느끼게 될 때, 자기 약점을 깨닫게 되고 억울하게 훼방을 받고 괴로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으로 괴로운 날을 통과시키게 하는 것은 더욱 자기의 부족을 깨닫게 하는 것과 좀더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함으로써 괴로운 날을 극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2). 민족의 수난(12~22): 본문의 시인은 조국인 시온(Zion,이스라엘 전체를 말함)이 <바벨론 포로시절>에 눈물 지우며 괴로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외적으로는 36년간의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시대의 삶, 1950년의 6. 25. 전쟁하에서 3년간 고통의 삶! 지금은 이북 공산정권의 김정은이 소련과 중공에 아부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통한 우리 대한민국을 향한 공포와 불안 의식속에 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1972년~1987년까지의 15년간을 좁은 의미에서의 군사독제기간으로 생각되나, 특히 유신체제(1972년~1979년)는 박정희 정권이 '종신 대통령제'를 노골적으로 추구했던 시기로 국회를 해산하고, 대통령 간선제와 긴급 조치권을 통해 헌법까지 무력화 했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수난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으로 기억되고, 국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찬송과 기도를 지극정성을 다하여 평안의 대상이 되도록 온 국민이 기도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3). 인생 중년의 위기(23~28): 시인은 본문에서 자기 자신의 현재 당면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함보다, 인생의 석양을 맞이한 중년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노쇠하고 병들어 일찍 죽는 일에 대하여 인생의 허무감(虛無感)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있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신다.", "내 날을 단축하신다."고 함으로써 자기의 일생이 하나님의 수중에 달린 것임을 고백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자기를 "중년에 데려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중년기를 평강과 평안을 누리면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안에서 잘 살도록 항상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본문 시편은 극심한 개인적인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애통한 탄원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구하지만, 곧이어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노래합니다. 점차 시선을 돌려 시온(Zion)의 회복과 하나님의 영원한 주권을 바라보며 소망을 찾는 깊이 있는 시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 저마다의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는 것이 허용됨을 배우고,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 하나님의 크신 구원 계획과 공동체의 회복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야를 가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탄식을 들으시고, 빈궁하고 갇힌 자들을 기억하시며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도, 변하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신실하신 언약은 우리들 중, 인생살이 중도에 허물어 질수있는 짧고 허무한 삶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도를 통해서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그의 언약의 신실함을 붙들고 소망 가운데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살아 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저마다의 간곡한 기도의 눈물과 하소연을 들으시고, 우리들에게 영원한 평안과소망을 허락하시는 분임을 굳게 믿고 살아갑시다. 끝.

 

2025. 9. 22.

山下연구소: 양 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