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내가 사는 이유
(본문 시편 118:17-18)
1). 서론: 종교개혁자 루터는 46편을 자기 시편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저 역시 오늘 본문 118편 17~18절 두 구절을 저의 시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사도 바울도 이 시편을 사랑하여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찬양을 하는 곳에서, 서론으로 이 시편 6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웨는 내 편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 구절은 로마서 8장31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시인 자신을 모든 환란과 고통, 심지어 죽음의 자리에서 건져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무엇에서 어떤 구원이나 덕을 얻었으니까' 하는 식의 조건부 감사가 아닙니다. 시인 자신의 삶 자체,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감사의 심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병에서 고쳐주신 이유를 분명히 알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바로 시인 자신이 “내가 사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2). 본론: "죽지 않고 살아서 야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꼭 병에서 고침을 받은 경우가 아니어도, 우리는 삶의 이유를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행사를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고 알리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한 봉사, 세상의 정의가 짓밟히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압제하는 것을 보고, 바로 잡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내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늘날 내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손이 나를 오늘도 붙잡고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의식과 믿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삶이 하나님의 손에 좌우되고 있는 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의 삶의 목적은 날마다 숨 쉬고 살고자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가를 알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사명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또 사람들을 위해서 할 것인가. 시인은 그것을 "하나님의 행사를 선포 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삶의 순간이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지나든지 간에 하나님이 이 세상과 역사에서 무엇을 하셨고, 또 지금도 하고 계시는가를 선포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특히 세상과 역사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고, 또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가를 알릴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과 긍휼에 의하여, 지금 살아 있는 내게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고, 또 하고 계시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간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2001년 겨울에 급성심근경색으로 모 의료원 흉부외과 의사들에 의해 11시간 수술(심장의 관상동맥 3개를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처치실'에서 가슴 조이는 시간을 보냈고 마취에서 덜 깨어있을 때, 저는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할 일이 많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집도의가 나중에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살아있는 이 한가지만으로도 감격스럽습니다. 그 뒤로는 저녁노을 볼 때마다, 내 인생의 황혼이 저렇게 붉게, 보람으로 일관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치실'에서 '중환자실'로 진급했으나, 주치의는 아직은 안심할 때가 못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50%는 살아서 일반병실로 가고, 나머지 50%는 시체실로 가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제 옆 병상에는 스님 한 분이 급성 폐렴으로 산소 호흡기를 달고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고통을 덜기 위해 잠자는 주사약과 더불어 제 몸에는 6개의 고무줄과 링겔 주사선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5일 뒤 저는 의식을 찾아서 죽을 먹게 되었고 고무줄은 하나씩 하나씩 없어졌습니다.
제가 입에 곡기라도 넣으니 옆의 스님 보호자는 저를 선망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때 당시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우릴 바라보는 시선으로는 '스님이 살아나느냐, 목사가 살아나느냐'로 수근 거렸습니다. 그때 저는 스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종내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그는 산소 호흡기를 빼고 시체실로 갔고, 같은 날 거의 몇 분차이로, 저는 5층 일반병실로 옮겨졌습니다. 같은 종교인으로 그가 못한 몫까지 중생을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내 옷깃을 추스르게 됩니다.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그 스님의 마지막 영상을 생각해 봅니다.
<죄와 벌>의 저자인 러시아의 문호 토스토에프스키는 28세 때, 국사범으로 시베리아 유형생활 중, 시베리아 영하 50도 선상에서 형장에서 사형집행하려고 하던 순간에, 황제의 사형면제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후에“내가 세상에서 그 어떤 고뇌와 아픔에도, 시베리아 영하 50도 추운 일기 속에서, 사형집행을 위해서 형장기둥에 묶여 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살아 있는 이 한 가지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다.”고 술회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선(死線)을 넘긴 사람들의 공통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본문의 이 시인은 이런 심경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의 감격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절실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歷史)와 역사(役事)를 인간들에게 선포하는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에 있어서도, 이것은 교회의 교역자만이 아닙니다. 기독자 누구나 자기 삶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전해야 합니다."하나님의 행사를 선포 한다"는 것은 자기의 말로, 글로, 예술적인 창조로, 혹은 날마다의 생활로써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일한다는 것을 전하는 일입니다. 이 시인은 사경(死境)에서 헤매다가 살아나서 그 삶의 목적을 바로 깨닫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말씀의 배경음악(제목: Flying Over The Canyons)으로 듣고 있는 미국 작곡자(Frederic Delarue)도 3번 사선을 하나님의 은혜로 넘어서 이런 심리치료 음악이 작곡되었습니다.
우리는 병을 통하거나, 기타 고통, 환란, 시험 등의 사선을 넘긴 자들에겐 삶의 감격뿐만 아니라, 각자의 잘못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시험과 고난은 자기 죄와 허물 때문에 자기를 경고하여, 하나님을 생각나게 한 기회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도 더 순수해 지고, 신앙적으로도 순전한 금(金)처럼, 불순물들이 여과(濾過)되어, 하나님께 대한 참신한 믿음을 갖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살아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 각오를 새롭게 하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삶과 병과 죽음의 문제를 바로 깨닫는 것은 인간이 가져야 할 참된 지혜입니다.
3). 결론: 시인은 자기 하나님이 얼마나 자기에게 '힘'이 되었는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야훼가 내편이니, 내가 두려움이 없다./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야훼가 내편이 되어 나를 도우니/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갚아 주심을 내가 보겠다."(시편118편6~7절)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믿고 의지함보다, 하나님을 의지함이 낫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강하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
2008. 4. 5.
山下연구소장: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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