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예배정신의 승화(昇華)
(시 100:1~5)
1). 서론: 본시는 시편의 수많은 시 가운데서도 과연 성도에게 예배란 무엇인가를 가장 잘 알게해주는 예배정신의 시입니다. 본문에는 본시의 특징을 나타내는 시어들로 가득합니다. 곧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 '노래', 우리를 '창조해 주심과 구속(救贖)'에 '감사', '찬송'등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들은 모두 표현만 다를 뿐, 한 가지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는 하나의 잔치요 축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매주일 하나님 앞에 나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예배는 하늘 나라의 축제요 예배의 기본 정신을 승화(昇華)시켜 주는 시편입니다.
2). 본론(Text): "왕"이란 낱말은 보이지 않으나 신정시(903~100)와 같은 가락으로 그 결론적 송영으로 보입니다. 내용은 표제 그대로 "감사의 시"로 품위 높고 아름다운 어조로 젠세계가 감사함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올 것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감사의 시로 성전예배에서 사용된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이 짤막한 시는 유대인과 크리스천에게 가장 애송되는 시의 하나입니다. 유대인들이 날마다 회당예배 때 부르는 노래이며 크리스천들은 예배의 노래로 부르고 있습니다. 스콧틀란드 장로교를 처음 시작한 존 녹스의 친구 윌리암 케티가 이 시를 교회 찬송가로 개작하여 1561년 발행된 <영국-제네바 찬송가>에 수록 되었습니다. 이 시를 프랑스 개혁교 신자 '루아 불죠아'의 자곡으로 성가대가 부르면서 입당하는 찬송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 예배는 정규적인 예배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특별한 예배의식인 것 같습니다. 제목에 "감사의 시"라 함도 이 사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시가 가르치는 예배 정신은 다음 여러 가지 기본적인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기쁨으로 예배를 드림: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이 시는 "옛날의 시 100번째 노래"란 제목으로 서방교회에서 지금도 사랑을 받는 역사가 오랜 찬송이 되어 있습니다.
이 시를 찬송가로 고친 '캐티'는 당시 가톨릭의 박해에 견디지 못하여 1556년 제네바로 피난해 갔습니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을 자유스럽게 예배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 시에서 참 예배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본래 이 시는 성소에 예배하러 들어와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러 오고 가는 심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불렀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결코 기쁜 것만이 아닙니다. 시편 90편 시인이 말하듯이 "우리의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다."(10절) 함은 결코 어떤 특수한 수난 중에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이런저런 괴로움을 안고 지내기 때문입니다.물자가 풍족한 나라는 그 풍성한 생활 여건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가고, 가진 것이 모자라는 나라에서는 그 궁핍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수백 년 동안 전쟁이 없는 안정된 사회는 그 안정이 가져다 주는 불안과 고민에 사람들은 기쁨을 잃었고, 전쟁이 일어난 나라, 또 우리나라처럼 순간적으로 전쟁 푹발의 가능성을 가지고 불안하게 사는 나라는 또 그 위기에서 오는 괴로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의 마음이 기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괴로운 심정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복을 빌고 평안을 빌고 안정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의 형태를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예배하러 하나님 성전에 나아가는 사람은 함성을 지르며 기쁜 노래를 부르며 가라고 합니다. 슬픔과 괴로움의 삶에서 드리는 예배라고 해도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기대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전에 나아가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로가는 것과 같이 기뻐하라고 합니다.
2. 예배 받으시는 하나님의 정체: 예배 드리려는 사람은 그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며,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시인은 "야웨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우리는 그의 것,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3절)라고 했습니다. 이 예배는 공동체의 예배이기 때문에 "나의 하나님"이란 생각보다 "우리 하나님"인 것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우리의 하나님"을 내 한 사람의 하나님이라는 신앙적인 이기심 또는 개인주의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든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공평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애를 구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기도와 경견에서 하나님께 매달릴 일입니다. 내 자식, 내 집, 내 사업, 내 자신 등 나를 위한 생각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성전에 나아가서 공중예배를 함께 드릴 때는 이 사적(私的)인 생각, 개인적인 생각을 사양하고 우리 모두의 영감, 우리 모두의 축복, 내 주위의 사람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을 만나고 대화하고 새로운 삶의 의욕과 소명감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된 말씀, 능력의 말씀, 성령의 은사를 우리 모두에게 내려주소서" 하는 심정으로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을 생각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걔가 특수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를 본문의 시인은 창조의 신앙, 소속감의 신앙, 하나님 백성의 신앙, 그리고 그의 온총의 신앙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까닭에 존재하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질그릇이 토기장이에게 항거할 수 없듯이"(렘18:1~6)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그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이것은 이 창조주에게 내 생명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 의지하는 심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것이 된 우리는 자랑스럽습니다. 마귀의 소유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은 우리의 영광이요, 우리 자랑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육체적, 물질적인 것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는 우리는 근심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일을 알아서 처리해 주신다는 의지심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이러한 소유관념은 "그의 백성",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 함에서 더욱 구체적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적고 약한 민족이었으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 거룩한 백성, 기업의 백성, 특수한 백성이 된 것을 신명기는 자랑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이 역사적 민족의 자랑을 "그의 백성"이란 말 속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 함은 예수님이 요한복음 16장에서 가르치신 대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먹을 꼴, 마실 물을 언제나 마련해 주시고 우리를 해칠 수 있는 모든 사나운 짐승들의 위험에서 건져주시는 특별한 관심을 쏟아 주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먹고 자라고 일하는 사람들임을 알려 줍니다. 이렇게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3. 예배 정신은 구속(救贖) 은총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에배함: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교훈은 역사가 깊은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사의 연속입니다. 건짐받을 수 없는 자리에서 간짐을 받았으니 감사할 것밖에 없고,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필요한 것으로, 때로는 불기둥, 구름기둥, 메추라기, 만나 등 나그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신 하나님이시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우기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죄에서 구속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고 하늘나라의 후사(後嗣)가 되어 이 땅에서 살게 하시고 또한 온갖 현실적 모순, 절망, 좌절, 비애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이 밑받침된 구원의 복음으로 용기있께 희망을 가지고 살게 하시고 죽음까지도 이길 수 있는 부활의 소망이 임할 때 영원한 셰계로 우리를 숨겨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함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4. 마지막으로 에배자의 찬송 내용은 "야웨는 선하시고 그의 사랑은 영원하시며 그의 진실은 대대에 이른다." : 라는 하나님의 선과 사랑과 진실이라 가르칩니다. "사랑과 진실"은 시편 시인들이 계속 노래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이미 보아왔습니다.(특히 89편 참조) 야웨가 선하시다는 말은 도덕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악과 구별되는 아무 데도 이지러진 곳이 없는 원만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원만하신 분입니다. 그를 섬기는 사람에게는 불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한 상태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은(엡 2:7; 4:13) 하나님의 선하심이 온 것입니다. 에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원만하게 대접하시는 분임을 찬송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본문의 시인은 예배를 어떤 정신에서 드려야 할 것인가를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고 또 하나님을 위하야 살 수 있는 원동력과 지혜를 받게 됩니다.
*이상과 같이 본문을 쉽게 풀이 해보았습니다. 본문 시인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정신은 1. 기쁜 마음, 2.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히신 분, 3.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어 새 사람이 되게하심에 감사함, 4.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의 사랑은 영원하시며 그의 진실은 대대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시인의 에배정신을 4가지로 예배의 원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 정신>도 본문 시인의 <4가지 예배정신> 순서에 준해서 답습하는 것 보다, 순서와 내용을 신학적 차원에서 달리 했으면 합니다. 주일날 예배 드리러 갈때에, 첫째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을 심사숙고하는 심정의 감사를 하자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하심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셋째로: <감사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자는 것입니다.
현대 삶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기본 정신은 심리 현상이 잠재적인 의욕이 신앙적인 면으로 활동하는 것을 승화(昇華) 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고, 진실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 지극 정성을 다하여 감사의 기도와 감사찬송을 드림이 예배정신에 극치에 이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 감사의 대상: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그분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3절). 그러므로 그 창조주되신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드를 드려야 하겠지요. 또한 하나님은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요, 양 떼입니다.(3절) 그러므로 그분의 양인 우리는 목자되신 하나님께 당연히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요. 16세기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감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믿음의 시금석이다"라고 했다.
2. 감사의 이유: 첫째로, 창조와 구원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그의 백성이 되는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시편 100:3).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실하심은 변하지 않습니다.(시 100:5).1620년, 영국 국교도들이 종교적 핍박을 피해 메이플라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떠난 청교도 이민자는 총 102명이었다. 이들 중 약 절반인 50명 이상이 첫 겨울 동안 추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믿음의 표현”이라 말했습니다.
3. 감사의 방법: 첫째로 감사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표현됩니다.(시 100:1). 둘째로 우리의 삶과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감사의 한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말라기 3:10).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찬양과 헌신은 감사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라 말했습니다.
4. 감사의 시기: 감사는 첫째, 풍요로울 때 감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때 그분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신명기 8:10-11). 둘째, 고난 중의 감사: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감사해야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18).셋째. 일의 일상 속 감사: 감사는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고백입니다.(시편 103:2). 호라티오 스페포드(Horatio Spafford)는 1873년에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를 작사했습니다. 이 찬송가는 깊은 개인적인 비극과 신앙적인 승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페포드는 성공적인 변호사이자 사업가였으나,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인해 재산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1873년에는, 아내와 네 딸을 유럽으로 보내던 중,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 다른 배와 충돌하여 침몰했습니다. 이 사고로 그의 네 딸은 모두 목숨을 잃었고, 아내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스페포드는 아내가 보내온 전보를 받고 바로 유럽으로 가던 중, 딸들이 희생된 장소를 지나면서, 그는 큰 슬픔 속에서도 평안과 위로를 경험하였고, 그때 작사한 찬송가가 바로 "내 영혼 평안해"입니다.
5. 감사의 결과: 첫째로, 내적 평강과 기쁨: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게 되며(빌립보서 4:6-7), 마음 속에서 울어나는 평안과 기쁨입니다. 둘째로, 공동체의 연합: 감사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골로새서 3:15). 셋째로, 영적 성장: 감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말라기 3:10). 마틴 루터는 고난 중에도 감사로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고백했으며. 팀 켈러(Tim Keller)는 “감사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4). 결론: 본문 시편 100편은 예배자의 마음과 자세(예배정신)를 승화(昇華) 시켜 주는 시편입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심에 감사함으로 그분께 나아가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고, 주일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복된 하루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리이다”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끝.
2025. 8. 27.
山下연구소: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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