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다스리는 자의 윤리
(시 101:1~8)
1. 서론: 윤리적 행동은 지도자의 책임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며, 이는 지도자가 조직을 이끌어가는데 필수적인 신뢰를 구축하는데 기여한다고 하겠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지도자의 도덕적 기준을 따르며, 따라서 지도자가 보여주는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윤리를 지키지 않는 지도자는 조직의 내외부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성과와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굳게 다짐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2. 본론(Text): 이스라엘의 왕자가 어떻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노래한 소박하고도 성실한 고백시로 흔히 왕의 대관식 때 낭독되었습니다. 본문 시는 다윗의 저작이라는 히브리어 원전과 70인역을 위시하여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다윗이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실렘으로 모셔왔을 때(삼하 6: 12~15)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내용은 왕의 개인적인 경건과(1~4), 국민에 대한 교훈으로(5~8) 분류됩니다.
3. 본론(Context): 본문 시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떻게 자기의 삶을 바르게 살며 그의 지도를 받는 대른 사람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1절에서 4절까지는 지도자 자신의 삶의 원칙, 5절에서 8절까지에는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삶의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시를 지은 작자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최고 지도자인 왕이라 생각합니다.
표제에 "다윗의 시"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다윗 왕"이 그 자신에 대한 명상과 자기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될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본문 시에는 1인칭 대명사가 강하게 나옵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사람이 반드시 "다윗"이라고 지정되어야 할 근거는 본문 시 자체 안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 중의 한 사람이라 함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시는 "제왕 시"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내용의 노래를 어떤 삶의 자리와 관련시켜야 하느냐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의 차이가 있습니다. 즉 모빙켈과 같이 신년 축제 때에 왕이 야웨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약속한 내용이나, 또는 바이저와 같이 시내산 계약 축제 때에 부른 노래나, 아니면 크리우스와 같이 다윗의 시온산 계약 축제 때에 부른 노래인가 하는 세가지 상황을 말할 수 있으나, 그 정확한 삶의 자리는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종류의 축제이든 간에 본문 시는 7년에 한 번씩 정규적으로 지키 는 축제 때에 왕이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을 선포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여기 왕이 언급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는 어떤 것인 것이겠습니까? 먼저 그의 제일 관심은 헷세드(인자, 사랑)와 미쉬파드(공의, 공정한 판단)입니다. 왕의 제일 관심은 백성을 사랑하는 일과 공정한 판단을 하는 일입니다.
<공동번역>이 "사랑과 정의"라 했는데 "정의"는 사회정의보다는 한 나라의 주권자가 지켜야 할 공정성, 공의라는 뜻이 더 원문의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자세로서 우선 백성의 송사를 공정하게 판단해야 되겠지만 백성을 보는 눈이 일시동인(一視同仁)으로 차별 없이 보여야 합니다. 소위 권력과 결탁된 특혜층이란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는 공정성, 국민 누구에게나 기회를 평등하게 주는 일, 부모가 자식을 차별 없이 대하듯 제왕이 백성을 차별 없이 보는 태도입니다.
제왕 또는 한 나라의 주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사랑과 공의에 편벽 됨이 있으면 그 나라의 질서는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불평과 원한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정치를 한다는 것이 어렵지만 사랑과 공의가 편만한 정치라면 거의 완전에 가깝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시인은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 "완전한 길"이란 말은 원만성보다도 비난받을 일이 없는 허물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만족함을 준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만족을 위할 때 타락하고 그 지도를 받는 상대방 사람들의 만족을 위해서 노력할 때 존경을 받게 됩니다. 왕이 본문 시의 주인공이라 할 때, 그는 2절에 강조되어 있는 바와 같이 흠잡힐 일이나, 비난 받을 일을 자기 자신에게서나 그의 집, 왕궁, 또는 그의 행정의 현장에서 없도록 해야 합니다.
가령 1977년 한 해 동안에 7천 4백 명의 비위공무원이 생겼다는 보도는 (1978. 7. 19. 동아일보 1면) 나라의 주권이 공정성과 공의를 떠난 타락상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본문 시편의 왕도는 공정성을 이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눈앞에 비루한 것(원어의 뜻은 '유익함이 없다') "아무 가치가 없는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며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바른 길이 아닌 길을 걷는 자를 미워한다는 것이며, 이런 자들을 왕 자신 옆에 가까이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 악한 자 또는 악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문에 "알지 않는다."로 되어 있는데 이는 관계를 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의한 일들을 자기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자기 곁에 두지 않으며 더우기 이런 것들과 상관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왕도의 이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상은 왕 자신의 윤리적 결단에 속한 것이지만 결국 2절에 있는 "야웨여!" 또는 "당신이 언제까지"하는 말로써 왕과 같이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그의 사람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또는 하나님과의 관련에서 가지는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다음 왕이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5~8절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은 "내가....하지 아니하리라."는 소극적인 금지와 "내가....하게 하리라."하는 적극적인 권장 두 가지 형태의 문장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소극적인 금지 사항으로 (1) 이웃을 헐뜯는 일, (2)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 즉 안하무인격의 오만불손한 자(이상 5절), (3) 거짓을 행하는 자, 즉 사기질하는 사람(7절), (4) 악인과 죄인(8절)들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권장할 일은 (1) 땅에서 진실하게 사는 사람(7절), (2) 완전한 길에 행하는 사람(6절)입니다. 여기 소극적인 면에서는 잘못된 행동이고 적극적인 면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죄는 미워해도 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시인의 심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일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첫째 내가 멸하고, 즉 그 악행이 계속 진행되도록 용납하지 않으시고 중지시킨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에 "입을 봉해버린다."고 한 것은 이웃을 헐뜯는 일에 대한 적절한 조치입니다. 다음 "오만불손한 자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교만한 태도를 계속 할 수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악행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을 알려 줍니다. 물론 현실 사회에서는 이런 죄인들과 악인들이 자기들의 세상인 양 날뛰지만 사실 하나님의 심판의 손이 그들 위에 내려져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그들의 형통과 성공 속에 감추어진 시한폭탄을 알지 못함과 같습니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에 거하지 못한다."(7절)라고 했는데 이는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8절)을 뜻하기도 하지만, 왕의 통치권 속에서 사기(詐欺)는 용납될 수 없음을 뜻하고, 8절에 나온 "이 땅"이란 말과 연관시키면 왕의 통치하는 전 지역, 전 세대에는 그런 사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목전에 서지 못한다."(7절)는 "거하지 못한다."와 평행되는 귀절입니다.
이와 반대로 이 땅에서 왕의 통치 영역에서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나와 함께 거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왕의 축복과 사랑을 받고 살 수 있는 행복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복한 사람은 왕의 일을 맡아서 하는 특권을 가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리하여 이 왕도는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하는 동양의 왕도사상과 히브리 왕도사상이 매우 유사함을 보여줍니다.
* 이상과 같이 본문을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본문 시는 한 나라의 지도자(帝王)가 어떻게 자기의 삶의 원칙대로 바르게 살며(1~4절), 피지도자인 백성들이 삶의 원칙(5~8절)을 지키며 바르게 사느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치 지도자들 및 사회공동체 지도자들의 바른 윤리생활을 하면서, 국민의 윤리도덕 생활이 올바르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교 경전 <대학>에서 유래한 고사 성어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齊家治國 平天下)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개인의 수양을 하고, 집안에 규율이 있게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지도자의 윤리 생활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개인의 도덕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개인이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돌아보고, 이를 통해 가정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리더십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에서도 자주 언급되며, 개인의 도덕적 수양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표현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변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개인이 도덕적으로 성장할 때, 그 영향은 가정과 사회로 확산되어 국가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1). 수신(修身): 국가 사회 공동체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윤리 도덕의 삶이 자신부터 깨끗하고 아름 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라와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지도자의 다스림에 순응을 잘하면서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2). 제가(齊家): 자신의 삶이 깨끗게 한 후에는 자기 가정이 윤리 도덕적으로 아름답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가정도 못 다스리면서, 사회 공동체와 나라 백성들을 "이렇케 하시요, 저렇게 하시요."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치국(治國): 수신 제가가 이루어진 후에는 국가를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치국은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체를 이끄는 모든 지도자에게 적용되는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행하고,공정함과 정의를 바탕으로 사회 공동체를 운영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치국의 의미가 정치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바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시민의식 또한 치국의 실천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의 종들은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치국(天國)의 한 부분을 맡아서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깨끗한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본문의 지도자 윤리와 백성들의 윤리의식인 <진실과 정직>이 효과적인 리더십과 건강한 공동체의 기초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현대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투명성과 정직성은 모든 건강한 조직 문화의 핵심 요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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