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忍苦의 세월 38년
(본문: 요5:1-9)
1. 서론: <忍苦>라는 낱말의 첫 자인 ‘忍’자는 ‘참을 인’자입니다. 한자 ‘忍’을 해석해보면, 마음심(心) 위에 칼 도(刀)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가슴에 칼을 얹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시퍼런 칼이 내 가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가슴 위에 놓여 있는 칼에 찔릴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이런 정황인데, 누가 와서 짜증나게 건드린다고 뿌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움직여봤자 나만 상하게 됩니다. 화나는 일이 생겨도, 감정이 밀려와도 죽은 듯이 가만히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듯 참을 인(忍)자는 참지 못하는 자에게 가장 먼저 피해가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平靜을 잘하는 것이 인내한다는 의미입니다. 참을 인(忍)자에는 또 다른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가다금씩 죽순(竹筍)처럼 솟아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온갖 미움, 분노, 배타심, 그리고 탐욕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싹틀 때마다 마음속에 담겨있는 칼로 잘라버리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인내에는 아픔과 결단력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고의 삶을 터득한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인격과 축복이 내려질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혈기마른 병자가 忍苦의 세월 38년이 그러했습니다.
2. 본론-Text: ①.베데스다-예루살렘 성내의 양을 매매하는 시장 가까이에 있는 못인데, ‘자비의 집’이란 뜻이며, 크기는 55척의 장방형이라고 합니다.(1척이 30.3cm X 55척=약 17m) ②. “물의 동함을.......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수많은 병자들이 이 못가에 기다리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 못은 간헐천(間歇川)으로 때때로 물이 솟아오르고, 그 때 수면이 동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전설(미신)로 가끔씩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고, 그 때 먼저 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③. 38년 된 병자- 거의 절망적인 상태의 병자이나, 忍苦의 세월을 보낸 자라고 하겠습니다. 38년의 연수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방황한 기간과 거의 맞먹는 기간입니다.(신2:14) ④. “물이 동할 때에.......”-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의 대한 38년의 혈기 환자의 비참한 사정의 답변입니다. 못 물이 동할 때, 먼저 뛰어 들어가는데 혈기 마른병자가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었던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생존경쟁에서 패배자로서의 딱하고 참혹한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그간 정황에 대한 답변 속에는 ‘忍苦의 세월 38년’을 보내면서도 낫고자하는 열망과 함께, 그러면서도 나을 가망이 없는 사정을 덧붙여 직고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주님께 자기의 사정을 속속들이 진정으로 아뢰는 사람은 福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⑤. “네 자리를 들고 걸어 거라.”-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찬 말씀은 忍苦의 세월 38년을 이런 환희의 종국을 맛보여 주셨습니다. “자리”는 짚으로 만든 빈민용 침상이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직한 그 자리를 버리라고 하지 않고, ‘들고 가라’하심은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기리간직하며, 보는 사람들마다 <忍苦의 세월 38년>의 절망을 축복으로 전환 시킨 예수님의 권위는 율법보다 크다는 교훈을 암시한 것이리라!
3. 본론-Context: 본문에 나오는 혈기 마른 38년의 병자란 혈액이 마르고 산소공급이 제대로 순환이 되지 않아서 오는 병을 말합니다. 인체에 혈액순환장애가 오면 상대적으로 산소공급 부족현상이 나타나면서, 만성두통, 어지러움 증, 빈혈, 기억력감퇴, 정신적 우울증, 소화기 계통으로는 위장장애와 근육경직으로 세포가 마비되면서 손발 저림이 오며, 허리근육이 경직되면서 말초신경이 자극 받으면서 허리통증이 생기고, 더 심해지면 허리 연골을 녹여서 만성 디스크 병이 되며, 종기(부스럼-아토피 피부병)등이 다 氣血순환장애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런 병마와 싸우면서 <忍苦의 세월 38년>이 흘러갔습니다. 참으로 가혹한 투병생활이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발병 시점이 20대 청년기라면, 희망찬 인생을 위해서 20대의 학습과 수련, 30대의 뜻을 세워서 심혈을 기우리는 노력과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나날들, 40, 50대의 사나이 대장부가 누리는 일의 보람과 행복의 황금시기도, 투병의 삶이 죄다 앗아간 38년이 세월이었으며, 어언간 60대에 당도하여 삶을 결산하면서 서서히 삶을 정리하는 당시 수명으로는 석양 길에 들어서는 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들 관심의 焦點은 그의 극심한 아픔을 참고 병에서 해방 받겠다는 그의 끈질긴 <기다림의 執念>입니다. 돌덩이 같은 심지(心地)를 가슴에 품고서 이끼가 끼면서, 생명보다도 무섭고 싸늘한 孤獨과 벗했으며, 38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思念 속에 묻어 둔 그리운 사람들의 아른거리는 영상 때문에 오는 가슴앓이와 고개 들면 싸늘한 빈 허공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귀에 들리는 것이라곤 창가에 스쳐가는 바람 소리 뿐! 가슴 메이는 피 눈물이었습니다.
세월이 가면 잊혀 진다더니 더욱 가슴에 안겨오는 눈물보다 앞서는 서글픔! 진정 <허기진 기다림과 그리움>뿐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닥의 가냘픈 소망인 치유(治癒)의 그날을 바라보면서 참아 온 忍苦의 세월 38년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다림>의 실상은 애타게 가슴을 쓸어내려서, 불안 , 초조, 그리움, 등등의 정서적 감정이었습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도 있지만, 거의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절망상태 속에서 허우적거리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1952년에 에이레 출생의 S. Beckett의 노벨 수상 문학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전체적 사상은 현대 인간 실존의 <부조리>를 표현한 작품으로서, 현대인은 자아가 상실되고, 희망은 잃어버린 존재로 파악되는 실존주의의 기본적 전제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자아를 상실한 부랑아와 같은 존재로서, 만난 적도 없고, 결코 오지 않을 고도(Godot, God=하나님)를 기다리는 현대인의 투사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작품이기에 대사를 소개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갈대 잎 소리가 나는데, Godot가 오는 것이 아닌가?, 아닐세! 우리는 기다리는 일에 진력이 났네!, 지겨워서 죽을 지경이네, 저기 버드나무가 있네, 우리 목매달까?, 내 허리띠가 있네, 우리 목매세, 그 이가 온다면?......" 등등입니다. 기다림에 대한 인간의 실존적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을 흔히 들어 왔습니다. “섶에 누워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의 한자성어로서, 마음먹은 일을 이루려고 괴롭고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입니다. 이 병자는 이를테면 와신상담의 38년의 세월이었습니다. 마지막 유일의 바람은 베데스다의 못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면 낫는다는 전설로 기다리지만, 그렇게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마당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서 그의 앞에 서 계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심에 대한 그의 답변은 못 물이 동할 때, 먼저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자기는 가장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설명함은 인생의 생존경쟁에서 패배자로서의 딱하고 참혹한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고한 그의 답변 속에는 ‘忍苦의 세월 38년’을 보내면서도 낫고자하는 熱望은 간절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直視하면서 “일어나고 싶지만 일어날 수 없는데, 어찌 일어나라고 하십니까.”라고 외칠 수도 있었고, “제가 38년을 이 거적때기 신세를 졌는데 무슨 재간으로 일어나 그것을 들고 걸어 갈 수가 있습니까.” 앙탈을 부릴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편에서 볼 때도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종내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찬 말씀은 그의 ‘忍苦의 세월 38년’의 생을 마감하고 감격에 찬 황홀한 치유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본문이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복음의 메시지는 무엇이겠습니까. 현재 우리 역시 당하고 있는 아픔에 대한 열망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거의 절망적인 불가능성과 한계상황이 저마다 가슴을 애달프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자신, 가족, 친지가 앓고 있는 ‘질병’이겠지요. 모질게도 살아 보려고 발부동처도 가시지 않는 ‘가난’이라든가, 야멸치게도 심술궂게 엉킨 악연의 ‘인간관계’ 등등을 손꼽을 수 있겠네요. 문제는 질병에 대한 치유, 가난에서의 해방, 뼛속 깊이 엉킨 악인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와 너의 애정 어린 감정들을 위한 ‘인고의 세월’을 보낼 수가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열망을 포기치 않는 忍從이 가능하냐에 있습니다.
악성 베토벤이 말한바와 같이, “忍從! 그것은 괴로운 인생의 아내자다.”라고 한 것처럼, 끈질긴 집념이 계속 살아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주님께서도 38년 된 혈기마른 병자를 연민에 찬 눈길로 본 시각은 38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에 가상(嘉尙)하게 생각하시면서도, 그의 가슴에 낫고자하는 열망을 또한 기특하게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쉼 없이 눈물뿌린 기도가 속속들이 다함없이 지속적으로 주님께 메어달려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서론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가슴위에 놓인 칼이 위기적인 상황임에도 참고, 마음속에서 부단히 유혹하는 탐욕을 단칼로 자르는 그런 결단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 편에는 人格이 다듬어지고, 종내 주님의 부드러운 사랑의 손길이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연민에 넘치는 주님의 눈길이 우리들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애타게 기다림과 그리움의 집념이 만강(滿腔)의 축복으로 넘치고, 환희의 찬송이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까지 忍苦토록 하십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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