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88. 꺼져 가는 심지

solomong 2025. 8. 5. 12:15

88. 꺼져 가는 심지

(본문: 마 12:20~21)

 

1). 서론: 미국의 단편 소설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오 헨리가 1905년 쓴 작품으로 휴머니즘이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뉴욕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사는 그리니치의 아파트에 사는 무명의 여류화가인 존시는 심한 폐렴이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친구의 격려도 아랑곳없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덩굴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집에 사는 친절한 노화가(老畵家)가 나뭇잎 하나를 진짜 나뭇잎처럼 보이게 하여 존시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생명이 가물거리는 존시처럼 기름이 소모되어 더 이상 불길이 타오를 공급원이 소진되어 바람 앞에 가물거리는 것이나, 한 공동체의 명운을 두고 기대했는데 그 마저 기대를 걸 수 없어 생명이 가물거리는 것이나, 인간이 바라보는 마음은 매 일반으로 애잔하고 절망스러워 안따깝기만 합니다.

 

2). 본론(Context): 오늘 본문 말씀에 '꺼져가는 심지'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서에서 등불이나 심지 또는 빛은 여러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빛을 가리길 수 있지만, 윤리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빛은 우선 요한1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성, 지혜, 진리, 성결성, 정결성,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했고, 세상의 빛으로 나타내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마 5장 14절)이라 함은 주님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빛은 이와 같이 인격(人格)을 가리키는 동시에 상태를 표시합니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서 '꺼져 가는 심지'를 명상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에 나타난 등불과 심지는 이미 기름이 소모되어 빛을 잃어 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신앙의 빛이 꺼져 가는 심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초대교회의 신앙을 회상해봅시다. 로마 시대에 무서운 박해 아래 놓여 있으면서도 그 사람들은 생명을 내걸고 믿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곧 전도자가 된다는 것이고, 전도한다는 것은 증거(말투스)라는 말이며 순교를 뜻하기도 합니다.

 

A. 풍요하지만 고독한 교회: 종교개혁 시대엔 로마 법황의 압력 아래, 오직 믿음(Sola fide)이란 기치를 들고 항거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청순한 신앙을 강조하여 신앙의 기초는 성경, 신학사상은 단순한 것,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영국 사람은 단 한 권의 책을 읽는 백성인데 그 책은 성경이다'라는 말과 같이 성경을 애독했다는 의미입니다.

 

영국 뉴 케슬(New Castle)에서 복덕방 소개인이 어느 집을 소개하면서, "이 집은 이층에서 주일날 앞을 전망하면, '타아함의 탑'이 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간에는 공장의 연기로 하늘이 흐려서 보이지 않으나, 주일에는 쉬기 때문에 하늘이 맑아 멀리까지 보인다는 말입니다.

 

초대 한국교회는 30~40리 길을 걸어서 교회에 오고, 전도하고, 성경공부, 그룹 활동에 열심히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는 명암이 불분명한 시대입니다. 옛날처럼 신앙의 방법의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그 중심이 침식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사랑도 점점 희미해집니다. '친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초창기 한국 교회는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지금은 냉각해져서 교회는 마치 꺼져 가는 심지와 같습니다.

 

현대철학의 실용주의와 같이 실용과 실리에 밝은 현대인들은 의리도 없고, 사랑도 없이 마구 질주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를 매스컴 시대라고 합니다. 디지털 컴퓨터 시대라고 합니다. 전파를 이용하여 수 억의 대중이 일시에 교류하고 대화하는 편리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중적 교류에도, 현대인들은 고독하게 살고 있습니다. 대양(大洋)을 항해하면서 식수를 잃은 배처럼 대중 가운데서 사람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그것은 현대인이 진정한 사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영화, 소설이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교인마다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유명한 희극배우가 우울증에 걸려서 정신과 의사를 찾았습니다. 그 의사는 진찰을 하고서 배우에게 "당신은 좀 웃으며 살 필요가 있으니 희극 구경을 자주 하시오" 라고 하더랍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에게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가 훌륭한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종교 문제에 대해 깊은 회의에 파졌습니다. 고민하던 그는 어느 목사에게 찾아가서 의논하였습니다. 키에르케고르를 알지 못하는 그 목사는 서재의 책 몇 권을 빼어 주면서 "이 책을 읽어보시오. 이 책에 당신이 고민하는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가 책을 보니까 바로 자신이 저술한 책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자신, 나 자신의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각자 자신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위로가 있습니다. 아가페는(신적 사랑), 에로스를(우리의 사랑) 깨뜨리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를 변질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란서 시인 '발레리'는 "바람이 인다, 애써 살아야지"라고 말했습니다. 공기가 빠져버린 진공의 지대로 바람은 불어오는 법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랑의 진공관에 대해 아주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B. 사막의 나무처럼: 어두움의 검은 장막이 대지(大地)를 온통 삼켜버려 모든 일상(日常)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가는 시점에서 항상 새 빛을 던져 주고 의욕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다시 일으켜주는 오직 한 분이 계시니, 곧 그는 아가페가 육신으로 화한 그리스도이시며, 그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을 믿어야겠습니다.

 

어제께(2007. 12. 3.) 저는 공원에 산보하고 귀가하다가, 골목길에서 잠시 기다리는 중에, 후진하는 자가용차 왼쪽 바퀴가 제 왼쪽 발등을 굴렀지만, 병원 X-Ray 진단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지극히 작은 것에도 관여하시고 주의 종을 보호하시는 그런 사랑의 주님이 십니다.

 

사막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고독과 배신의 열풍이 휘몰아쳐 오고, 거짓의 모래와 먼지가 몸 전체를 뒤덮고 오더라도 보이지 않는 우리 삶의 터전 밑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주님의 사랑이 항상 푸른 정열로 솟아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길가의 무수한 갈대 중, 꺾이어 진액(津液)이 흘러나오고 쓸모없이 다 타버린 심지는 인생고해(人生苦海)로 시달리는 인생과 같습니다. 그러한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시는 분입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그런 사랑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겠습니다.

 

3). 결론: 이 믿음과 사랑이 우리 속에서 꺾일 줄 모르는 소망의 불빛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주님의 큰 사랑을 의심치 않아야겠습니다. '바람이 불더라도 애써 살아야지…'라는 시인의 말도 한번 깊이 되씹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송구영신의 이 경계선에서 화살 같이 빨리 흐르는 세월을 탓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의미있는 삶을 사느냐를 반성하면서 이 계절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끝.

 

2007. 12. 4.

山下연구 소장: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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