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87. 인생의 기초 공사

solomong 2025. 7. 29. 11:11

87. 인생의 기초공사

(본문: 마7:24-27, 눅6:46-49)

-청소년 그대들에게 삶의 터전인 ‘신앙’을 권한다. -

 

1). 서론: 일본 동경에 있는 임페리얼 호텔( Tokyo Imperial Hotel)은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가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는 호텔의 공사를 맡은 뒤 기초 공사를 하는 데만 2년이 소요되었으며, 기초공사에 많은 비용을 썼기 때문에 당시 일본의 건축가들은 낭비라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기초공사 2년, 실제 건축공사 2년, 4년이 걸려 임페리얼 호텔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런데 준공 후 5년이 되는 1952년에 ‘동경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진으로 매몰되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임페리얼 호텔은 견고하게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일본의 건축계에서 라이트 공법은 표준이 되었고, 라이트는 일본 건축학의 아버지로 존중되었습니다.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 라이트의 건축법은 하나의 모범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집짓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바위 위에 기초를 두고 집을 짓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홍수가 날 때 바위 위에 세운 집은 안전하지만,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위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모래 위에 세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이란 집을 짓는 것과 같고, 집을 지으려면 기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란 것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이라는 집입니다. 아파트나 호텔 같은 빌딩을 튼튼한 기초공사를 하여서 그 위에 아름다운 집을 짓듯이, 내 인생이라는 집을 아름답고 견고하게 짓는 법을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2). 본론(Tex):마태복음 본문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라는 말씀은 산상보훈 전체에 대한 결론부분에 속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접속사 ‘그러므로’(οὖν)가 이를 더욱 선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집을 반석 위에 지은.......”라는 말씀의 표현은 자연 석(自然 石)을 의미하는 것이고, 본문 누가복음 6:48엔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라는 말씀은 인공적(人工的)인 기초공사를 뜻하고 있습니다. 고전 3:11의 건축의 비유에서는 ‘그리스도를 기초’라고 하였고, 본문에서는 기독신자의 ‘신앙의 실천을 기초’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지혜로운”(φρὀνιμος)의 헬라원어는 ‘생각 깊은’, ‘지각 있는’ 것을 뜻하며, 본문 마7:25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라는 말씀은, 비는 지붕에 내리고, 창수는 주초에서 솟아오르고, 바람은 벽에 부딪치는 것으로 즉,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적인 상황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우리들의 인생살이가 폭풍우가 치는 칠흑 같은 밤처럼 사방에서 몰아쳐 올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본문 마7:26의 “그 집을 모래 위에”.......”라는 말씀의 뜻은 팔레스타인의 기후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와디’(Wadi, ‘계곡’이라는 뜻)라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지중해성 기후패턴에 속하는 건천(乾川)을 ‘와디’라고 부릅니다. 비가 오지 않는 여름에는 물이 없으므로 강바닥이 드러나는데, 미련한 자가 집을 짓을 때, 이 강바닥에 지으면, 우기(雨期)인 겨울에는 비가 와서 금방 물이 불어나서 쉽게 집이 문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허다하며, 신앙의 세계에서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에 실천이 동반하지 않고 고백으로 그칠 때, 하위(下位)의 신앙 자는 일단 유사시(有事時)에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오늘은 기독청년들에게 인생의 기초공사를 잘하자는 요지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신앙의 기초공사 이전에 먼저 자신의 생육 사(生育 史)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묻고 싶습니다. 부모로부터 어떻게 양육을 받았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이 형성되고, 그 여하에 따라서 신앙의 양상(Pattern-극단적 회의주의자 혹은 열광적 신비주의자 등등)도 저마다 다르게 심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로 정서적인 면에서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정상적으로 생육되지 않았다면, 미성숙(未成熟)된 것이 인생여정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출생에서 1년 반까지의 첫 위기는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기본적 신뢰냐, 불 신뢰냐(Basic Trust vs. Mistrust)에 따라서, 커서 하나님을 잘 신뢰하느냐 반항하느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신앙의 양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생육의 터전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자기 생육 사에 대한 것을 자세히 탐문해 보는 것이 중요함.) 어찌되었던지, 사춘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흔히 ‘종교적 각성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뇌 속에 몸부림치는 때가 이 때인데, 이는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구축하기 위한 아픔의 나날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인생의 궁극문제, 절대자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말입니다. 인간관계도 인격적으로 서로 신뢰하고 친구가 되고, 서로 사랑이 통하는 때에만 속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인격적인 신뢰와 사랑의 교류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신뢰하는 마음, 하나님의 계시(啓示)인 성경말씀과 만남(Encounter)에 부딪쳐야 합니다. 이렇게 알고 만나서, 하나님께 정서적(情緖的)으로 신뢰하게 됩니다. 이런 신뢰는 사랑의 표시이기도 한 것입니다.

 

젊은 남녀가 서로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할 때, 그것은 “나는 당신에게 나를 맡깁니다.”라는 말과 같으며, 따라서 그것은 사랑의 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를 맡길 이유가 없는 것이며,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에게 나를 내어 맡기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뢰하게 된 사람은 신뢰하는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意志)에 자기 의지를 순종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녀가 사랑하는 정서 가운데, 서로 순종하는 것에서 유추(類推)해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황금(黃金)을 믿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애인(愛人)을 하나님처럼 믿는다고 합니다. 어떤 자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고서, 자기 신앙 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Ideology에 신봉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헌신하고 그 제단에 피를 뿌리기도 합니다. 결국 이 세상엔 신앙이 없는 자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종내 어리석은 자가 모래 위에 집을 짓은 것 같아서, 일단 유사시에 붕괴(崩壞)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이나 철학에 심취하여 헤매다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극한점에 도달했을 때, 신앙의 문을 두드리게 되고, 종내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으로 비약’하게 됩니다. 인간 이외의 하나님의 손이 자신을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기 됩니다. 그것은 ‘알고 믿는 것’이라기 보담도 ‘믿고 안다’는, 말하자면 이성을 초월한 이해인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말씀은 ‘영으로 거듭난다.’(重生), 사도 바울이 말하는 ‘새사람’, ‘영의 사람’으로 삶 전체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여기서부터 ‘인생 기초공사’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기초 공사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느냐, 어리석은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자면 ‘생각이 깊은’(深思熟考)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역사에 뿌리박고 하늘을 향하여 자라나는 생명의 현실입니다. 공중에 둥실 떠 사는 것도 아니고, 거꾸로 매달려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이 현실의 삶을 깊이 뿌리를 박고 뻗어 나갈 수 있는 터전(基礎)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려 깊은 생각을 하여서, 기초가 견고한 반석 위에 현명한 인생 기초공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소유물이나 인간세상의 보편적 가치관에 점령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들은 자기 존재의 근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자기를 믿고 “나의 존재의 근거는 나 자신”이라고 해 보았자, ‘인간이 산다, 성공한다, 그리고 죽는다.’고 하는 모든 경우에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의존 감정에 사로잡히는 한(限), 자기의 존재의 근거로 삼고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 유한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인생의 삶에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오는 힘겨운 사면초가의 위기와 시련이 불시에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전기(傳記)에 의하면, 그는 귀족이요, 부호요, 세계적인 대문호요, 행운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대체 인생이란 자체에서 아무 근본적인 의미를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생 50세를 고비로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극도의 고뇌 끝에 그에게는 창조주 하나님 신앙의 여명이 밝아 왔다고 합니다. “내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을 믿는다.”고 스스로 고백한 그 때, 그는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처럼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인생의 기초로 삼는 때에만 모든 상대적인 파도의 도전을 극복하고, 보람 있는 삶의 여정을 행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마다의 인생의 기초를 하나님 신앙에 견고하게 쌓으면, 그 삶은 풍요롭게 자라나게 됩니다. 신앙은 삶의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절대자 하나님께 깊이 박혀 있을 때, 그 삶 전체가 하늘을 향하여 매일 매일 실생활이 씩씩하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너희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요10:10)고 하셨습니다.

 

또한 신앙은 삶의 열매를 충실하게 맺히게 합니다. 인생을 다 살고 결산해 볼 때, 물거품과 같은 인생이 있고, 살고 나서 남는 삶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청소년 그대들에게 이런 삶의 기초공사부터 잘하여 씩씩하게 자라서, 충실한 열매를 맺고, 인생 여정이 끝날 때, 가치 있는 잉여(剩餘)를 하나님께 드려서 칭찬받고, 상급을 받으면서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함을 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

 

4). 결론: 인생의 삶에는 비극(悲劇)을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지만, 비극 없는 삶을 그 누구라손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고해(人生苦海)에서 아름다운 ‘신앙’을 터득하게 될 때에, 비로소 <철>이 들시 시작하게 됩니다. 온갖 인생의 사면(四面)에서 엄습하는 비극에서 다만 피동적으로 참는다든지, 비관하고 패배 할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하나의 비법을 느끼고, 그 비극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그 인생고뇌를 새 창조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곧 신앙인의 저력(底力-기초인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산다고 해도, 제 각기 자기 의지를 관철하여 대립만을 날카롭게 한다면, 첫 신뢰와 사랑이 식어지고 다툼과 회한(悔恨)만이 남을 것입니다. 그 두 의지가 제삼(第三)의 절대의지인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의무를 느끼게 하는 것이 곧 <신앙>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둘이서 고요히 하나님의 제단 앞에 꿇어앉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모래 위에 짓은 집과 같아서, 파탄이 쉽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깊은 생각 속에서 신앙이란 기초공사를 한 터전 위에, 상대를 배려하는 실천적인 사랑의 삶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인생의 기초공사 터전 위에 실천적인 신앙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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