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신학이론마당(75)

58. "최초의 은인과 최대의 은인"

solomong 2025. 7. 10. 09:04

58.  "최초의 은인과 최대의 은인"

언더우드 선교사와 홍삼 장사 출신 서상륜은 한국의 장로교회를, 아펜젤라는 감리교회를, 팬윅(M. Penwick)은 침례교회를, 카우만(C. Cowman)과 양반 출신 김상준은 성결교회를,매리 램지(M. Ramsey)는 순복음교회를 세웠습니다. 구세군과 성공회도 구한말에 점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나라가 쇠망하자 조선 민중들은 새로운 신앙에 소망을 두었고 서구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조선 전역에 점차 전파된 기독교는 구한말 사회를 개혁하였습니다. 한글 성경을 일반 대중에게 배포하여 수 백년 동안 천대 받아 온 한글의 위상을 고양시켰고 문명을 깨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신분을 타파하고 미신을 청산하였으며 농촌 계몽 운동과 사회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병원들과 수백여 진료소들을 세워 병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최초의 결핵요양원이 '해주'에 세워졌고 버림받은 수만 명의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요양원들이 세워졌습니다. 부산 상애원과 대구 애락원, 그리고 여수 애양원 등입니다. 미국의 워싱턴 의과대학을 졸업한 로바트 윌슨(Robert M. Wilson)은 1905년부터 43년간을 한국에서 헌신하였는데, 특히 애양원에서 나병 환자들을 일생동안 돌보았습니다.

또 글래스고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10년 내한한 제임스 노블 맥켄지(James Mackenzie)도 일제에 의해 추방되기까지 나병 환자들을 위해 38년간을 사역하였습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유수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이 한국 선교에 자원하여 열정적으로 봉사하였고 수많은 국민들을 치료한 것은 물론 의학 지식을 전수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공혜원 의사 호레이스 알렌, 제중원 의사로 섬기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사망한 존 헤론, 세브란스 병원장 올리버 에비슨, 민중 치료소를 세운 윌리암 스크랜턴, 최초 여의사 박에스터를 양육한 로제타 셔우드 홀, 간호 학교와 간호사 협회를 시작한 엘리자베스 쉐핑 등 구한말 한민족을 위해 일한 이들의 공적은 필설의 평가를 넘어섰습니다.

개혁기 기독교도들은 독립운동에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19년 3. 1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중 16명의 인사도 또 독립운동으로 체포된자들 중 1/3도, 그리고 상해 임시 정부의 주역들도 기독교도들이었습니다. 당시 총 인구의 2%에 불과하던 기독교의 교세를 고려하면 이런 다양한 활동들은 큰 위업이었습니다. 3.1 만세운동을 기획했던 손정도(1882~1931) 목사는 중국 상해로 가서 1919년 4월 13일 임시 정부 출범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의정원(국회) 임시 의장을 맡아 신석우와 함께 국호 "대한민국"을 정하고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아펜젤러의 배제 학당에서 공부한 이승만(1875~1965)은 서재필을 도와 독립협회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1899년 고종 폐위 음모의 무고한 죄목으로 한성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승만은 옥사에서 성경을 읽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희망을 찾으며 변화되었고 함께 수감된 월남 이상재와 40여 명의 죄수들을 전도하였습니다. 6년의 옥살이 끝에 사면으로 풀려난 이승만은 1905년 미국 유학을 떠나 프린스턴 대학에서 한국인 첫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하와이에서 거주하며 한인 기독교회와 한국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운동에 함썼습니다.

기독교는 구한말 신식 교육을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1885년 아펜젤라 선교사는 배제 학당을 세웠고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 기관인 이화 학당을,언더우드 선교사는 구세 학당과 연희전문학교(후일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심지어 동대문의 백정 마을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친 새무얼 무어(Samuel Moore)의 사랑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 수많은 교육 기관이 선교사들과 기독 교도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1909년 통계로 팔도에 존재한 총 1500여 개의 학교 중 약 950여 곳이 기독교계 학교였습니다. 이들 학교들은 영어, 수학, 지리, 천문, 과학, 성경을 가르치며 근현대 한국을 이끌어간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고 한국 사회 발전의 중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반상의 차별을 거부하고 평등의 가치를 고취시켰고 서구의 신학문을 접하는 주된 통로로도 가능했습니다. 현대 한국의 기독교는 배타주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분열주의 등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상기한 모든 공로들 때문에 춘원 이광수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 지적과 더불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야소교(예수교)는 실로 암흑하던 조선에 신문명의 서광을 전하여 준 최초의 은인이며 겸하여 최대의 은인이다." (1917년 7월 "청춘지" 제11호)-<기독교로 보는 세게역사>에서- 끝

 

2025. 7. 10.

山下연구원: 양       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