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렌 의사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
56. 구한말의 정황과 기독교
1866년은 대원군 집권 3년째로 천주교의 병인박해가 한창인 때 이었습니다. 이 해에 영국 웨일즈 클라노바 출신의 개신교 선교사 로바트 토마스(Robert Thomas) 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만(General Sherman)호를 타고 중국에서 출발하여 평양에 왔습니다. 그러나 평양성의 군병들은 방자히 행동한 셔먼호 선원들과 전투를 벌였고 이에 토마스는 체포되어 효수되었습니다. 그의 목을 친 조선 무관 박춘권은 훗날 신자가 되었습니다.
개신교의 본격적인 접촉은 1884년 9월 내한한 미국 의사 호레이스 알렌(Horace Allen)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해 12월 개화파가 수구파를 밀어내고 사흘 동안 정권을 잡은 갑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원을 약속했던 일본은 청나라와의 충돌을 우려해 개화파를 배신하였고 수구파는 청의 군대를 동원하여 '3일천하'를 누리며, 개화파를 진압하였습니다.
수구파 대표자 민영익은 개화파의 칼을 맞아 중태에 빠졌으나 주한 미국 공사관에서 근무하던 의사 선교사 알렌이 치료하여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후 고종 임금은 알렌에게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는 제중원으로 개명되었다가 미국 기업가 루이스 세브란스(L. H. Severance)의 기부로 신축되면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로써 한민족에 대한 기독교의 본격적인 포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살아난 민영익은 후에 알렌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백성들은 당신을 위대한 의사라고 생각하오. 당신은 아메리카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같소!"라고 하였답니다. 1885년 4월에는 장로 교회의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와 감리 교회의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선교사가 입국하여 기독교 전파가 본격화 되었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은 신앙과 교육을 통해 서재필, 안창호, 김규식, 이상재, 이승만, 이승훈, 김정식, 이동녕, 이준 등의 민족 지도자들을 양성하였고 한국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885년 아펜젤라 선교사는 배재 학당을 세웠고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인 이화학당을, 언더우드 선교사는 구세 학당과 연희전문학교(후일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끝.
2025년 6월 30일
山下연구소: 양 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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