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신학이론마당(75)

57.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사상

solomong 2025. 7. 8. 15:07

57.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사상

1).그의 저작들: 113권의 책과 250편의 서신을 썼으며 대표적인 저작과 사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한 교본-신앙에 대해 명료하게 진술하였습니다. 사도신경은 믿음에 대한 고백이고, 주기도문은 소망의 간구이고, 십계명은 사랑의 명령이라고 해설하였습니다. (나). <고백론>-가장 유명한 저슬로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회심을 기술하였습니다.

여기서 "고백"은 죄의 고백보다는 하늘의 은총에 대한 고백을 뜻합니다. 이 책은 서양 최초의 "자서전 문학" 으로서 지성사적 전환을 뜻합니다. 참된 인간은 자신의 내적 여정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추적하고 찾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이 경험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기독교가 화려한 건물, 고급 의복, 복잡한 의식, 성직 제도 등으로 형식화되는 것을 경계하며 은총의 빛과 만나는 진리 추구를 강조하였습니다.

(다). <신의 도성>(신국론, On the City of God)-아우구스티누스는 말년에 '서로마'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로마가 왜 멸망했는지에 대한 신학적 대답이 이 책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인간의 도성"이며, "하나님의도성"은 지상의 가시적 왕국이 아님을 지적하였습니다. 지상 왕국은 멸망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성은 새로운 지상 왕국들을 사용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임을 역설하였습니다.

특히 이 책은 중세 통치자들의 애독서가 되었고, 지상에 신국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중세가 기독교적 통일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책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적 대립자들: 기독교가 국교였던 중세에서 선행이 없는 죽은 믿음들이 많았습니다. 영국의 수도사 펠라기우스 이런 형식적인 신자들을 비판하며 행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나쳤던 것은 선행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의 이런 사상을 배격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가 인간의 행위에 근거할 때, 가장 저급한 신앙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선행이란 하나님의 은총을 수용하는 것이며, 이때 진정한 이웃 사랑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펠라기우스가 종교의 윤리를 강조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의 본질에 대해 성찰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300년대 교회는 박해 때에 배교한 신자들의 처리 문제로 대립이 있었습니다. 도나투스(Donatus, d. c. 355)라는 카르타고의 주교는 배교자들을 쉽게 용서한 기존 교회를 떠나 새로운 분파를 만들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분열주의적인 도나투스파를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교회의 거룩함이 인간이 아닌 그리스도께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마지막 때까지 교회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으며, 이 둘이 태초에는 마치 부부처럼 친밀한 관계이었으나, 타락 이후 서로 갈등 관계로 바뀌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때문에 육체를 즐겁게 하는 일과 영혼을 즐겁게 하는 일은 대립된다고 보았습니다.

3).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산들: 그의 생애 마지막은 로마 제국의 쇠퇴기이었으며, 430년 8월 악명 높은 반달족(Vandals)이 북아프리카를 침공하여 '힙포'에도 몰려왔습니다. 반달족이 성곽을 에워쌌을 때,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내에서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병자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찾아와 안수 기도로 낫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없으며 만일 있다면 먼저 중병에 걸린 자신에게 사용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병자는 꿈에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기도를 받으면 나을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다며 끈질기게 청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였고 기적적으로 그 병자는 얼마 후 회복하였다고합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작 병세가 중해져 수일 후, 76세를 일기로 영원한 도성에 들어갔습니다. 죽을 때, 그의 재산은 책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며칠이 지나 반달족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도성을 약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역한 교회와 도서관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힙포'를 수도로 삼은 야만족들은 점차 기독교로 교화되었고, 족장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공부했던 과목들인 수사학,법학, 수학, 문학, 신학 등은 800년 후, 유럽 대학들의 커리큘럼이 되었습니다. 인문주의의 아버지 페트라르카(d. 1374)도 <고백록>을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Time)은 오로지 피조물의 세계에만 있으며, 하나님은 시간 바깥에서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t)로 존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역사도 현재뿐이며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고, 미래는 '다가올 현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보시고 영원으로 시간의 한계를 초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영원과 시간의 관점으로 통찰하는 '시간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의 타락은 과거의 일이아니라, 인류의 '원죄'(Original Sin), 즉 "근원적인 현재 죄"이며 예수의 십자가도 현재의 속죄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역사가 토마스 카힐(Thomas Cahill, d. 1940)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마지막 고전 철학자이고 최초의 중세 학자"라고 불렀습니다. 이 위대한 중세 학자는 이렇게 인간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일식이 언제 오는지 너무나 잘 아는 그대들은 인생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여러분이 공중의 새를 쉽게 잡듯이 여러분 마음에 떠다니는 교만함이 잡혀야 한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4). 결언: 중세기 천년(千年)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신학의 사상과 생애가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일직이 17세때 아버지를 여의고 허랑방탕한 삶을 살아온 탕자였습니다. 그러나 독실한 신앙자 어머니 <모니카>의 20여년 눈물 뿌린 기도는 그를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살게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사상의 해설인 "<사도신경>은 신앙에 대한 고백이고, <주기도문>은 소망의 간구이며, <십게명>은 사랑의 명령"이란 설명은 우리들에게 간단 명료하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고백론>은 참된 인간은 자신의 내적 여정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과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추적하고 찾아 오신다는 아우구스티누스 경험의 고백을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Time)은 오로지 피조물의 세계에만 있으며, 하나님은 시간 바깥에서 '영원한 현재'(Eternal Present)로 존재한다고 가르쳤으며, 인간의 역사도 현재뿐이며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고, 미래는 '다가올 현재'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보시고 영원으로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시며,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의 타락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인류의 '원죄'(Original Sin), 즉 "근원적인 현재 죄"이며 예수의 십자가도 현재의 속죄 사건이란 그의 사상을 깊이 간직해야 하겠습니다. 끝.

2024년 1월 18일

山下연구원: 양 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