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고뇌를 통한 신앙의 환희
(본문: 빌1:12~18)
1). 서론: 베토벤은 유럽의 성악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1등을 한 어떤 여인에게 "당신 노래는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누가 당신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면, 당신의 노래는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요."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는 베토벤의 "忍從, 그것은 괴로운 인생의 안내자다."라는 유명한 명언의 동기인, 그의 청각을 잃고서 고뇌 속에서 '자살'을 극복하고, 종내 위대한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작곡 것에서 온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가슴으로 교류하는 그리움’을 나누자고 서두에서 언급한 후, 이제 본문에서 로마옥중에 투옥된 아픔에 대해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옥중에 매임은 복음 선교에 장애가 아니라, 로마 복음화의 기폭제가 되고, 로마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확신을 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빌립보 교인들의 연민이나, 성공적인 복음 선교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의 시기심도, 그 어떤 다른 정황도 ‘고뇌를 통한 신앙의 환희’라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2). 본론(Text): ①.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간증 속에 투옥된 자신의 삶에 대한 상세한 아픔의 실상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빌립보교인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그만큼 빌립보교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교인들이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극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은 바울 자신은 고난이 극도에 달하고, 사형언도만 남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개인문제를 초월해서, 오직 빌립보교회와 복음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선교한 하나님의 교회와 복음전파만 잘 된다면, 자신의 개인의 사정은 어찌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②. 바울이 옥중에 매임으로 복음 선교 사업에 큰 타격이 오고, 지장이 되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에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이었습니다. 바울의 로마 옥중에 갇힌 것이 복음의 진보(προκοπή-군대가 진군하는데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의미)와 전진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역설(Paradox)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진리는 逆理이기 때문입니다.
③.로마에 체류하는 성도(형제)들 중 다수가 “주 안에서 신뢰”하는 신앙의 부흥운동의 起爆 劑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투옥이란 고난의 사건은 다른 성도들에게는 투철한 신앙의 확신을 심어 주는 큰 감화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일직이 주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고 했던 것입니다.
④.또한 복음이 진보하는 도상에 2가지 종류의 일꾼이 있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는 참된 일꾼으로 바울에게 신의를 가지고 대하고, 다른 하나는 투기와 분쟁 등의 불순한 자들인 유대인적인 신자들로서,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경시하고 이방인들에게 선교함에 대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늘도 있는 것이고, 참 것에는 언제나 거짓이 따른다.’는 明暗과 愛憎을 바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선의든지 악의든지, 利害에 상관하지 않고, 바울 자신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믿음 안에서 사는 자의 위대한 모습을 여기에 피력하면서(갈2:20), 그리스도의 복음전파 여부가 喜悲를 결정 지운다는 숭고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지금까지 본문 말씀의 요약은 바울이 당한 고난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가 잘 되어가니, 다만 기뻐할 다름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뇌를 통한 신앙의 환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고난을 당하는 기독자가 이 빌립보서를 읽으면 무한한 위로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필자도 신약성서를 매일 아침 차례대로 읽어 가는 중, 이 빌립보서신의 말씀이 너무나 은혜로워서, [본문설교 디자인]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가만히 눈을 감고, 바울이 처한 정황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비록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바울일지라도, 피지배 식민지의 백성이 '대로마'를 향한 복음전파에 대한 웅대한 꿈이었던,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그것이 실현되어 로마로 갔으나, 바울을 기다리는 것은 정치적 지배자 권력의 상징이었던 로마의 감옥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그 옥중을 복음전파의 방편으로 삼아서, 그 결과가 기쁨이 되게 했습니다.
이제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란 苦海는 힘 있는 자의 조직적인 권력의 횡포와 화려한 물질적, 문화적 매혹들이 순간마다 우리를 유혹하여 가슴을 애달프게 찢고 있습니다. 그래서 18C. 독일의 소설가였던 장 바울(Jean Paul)은 “아! 인생이란 숨을 거두기 전의 길고 긴 한숨이다.”라는 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길고 긴 고뇌의 밤길을 통해서 환희를 맛보게 하는 逆說의 복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일예가 오늘 본문의 바울의 간증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세상의 풍랑만 보고 무서워 할 것이 아니라, 풍랑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앙모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섭리의 역사는 기묘막심 함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급으로 팔려간 것은 비극이었지만, 그로인해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고, 가나안의 기근과 아버지와형들을 구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로마 옥중에 투옥됨으로 기독교 복음이 로마황실과 군대에 침투하게 하는 요인이 되게 했습니다. 환언하면, 로마도성과 로마제국 전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포위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풍랑 속에 휩싸여 고난을 당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인 것을 자부하면서 담대히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진정 사랑하기에, 순풍이 아니라 풍랑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고난의 십자가의 진리를 안다는 것은 쉽게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 고뇌를 통해서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라’의 쓴물을 통해서 '단물'로 소유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바울의 매임을 통해서 환희를 맛보게 하는 복음이 오늘날 우리들 삶속에도 있기를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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