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밤의 찬미
(본문: 행16:25-34)
I. 서론: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바람에 시달리던 겨울은 지나 가고, 꽃피고 새우는 봄이 오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변하는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시련과 고통 및 고뇌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밤과 같은 어두움에도 찬미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야말로 밤의 찬미이었습니다. 성서에서는 밤이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룻밤에 모압알이 망하여 황폐할 것이며....”(사15:1)라고 하였습니다. 이럴 때는 밤이란 “갑작이 오는 위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 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여기에는 밤이란 무지와 불신앙의 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사21:12)여기서는 밤을 인생의 역경에 견주고, 아침을 순경에 견주어 주야가 반복하는 것처럼 변천 무상한 인생에 있어서 순경과 역경이 교대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 할 수 없느니라.”(요9:4) 이 경우는 밤을 주님의 ‘죽음’의 때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찌했던, 밤의 찬미란 역경의 찬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밤이 없다.”(계21:25)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비유에는 지옥을 “바깥 어두운 곳”이라고 말씀하였고, 그러한 천국은 완전히 낮이고, 지옥은 완전히 밤이며, 이 세상은 밤과 낮이 교대하는 곳이라고 보겠습니다.
하여간, 세상에서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것처럼, 순경과 역경이 교대하곤 합니다. 기쁜 일과 괴로운 일이 언제나 번갈아 가며 찾아오는 것입니다. 실로 역경에서 감사하며, 밤의 찬미를 부르는 것은 성도들의 특색이라고 하겠습니다.
2. 본론(Text):①. 16:25 - “밤중 쯤 되어.......기도하고 찬미하매”-초저녁부터 밤중까지는 바울과 실라 2사람이 그날 하루 동안 당한 일에 대해서 마음을 정리해 보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별안간 당한 고난과 능욕으로 몸과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차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있었고, 따스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의 임재를 느끼게 되어 기도와 찬미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2가지 의문사항을 제기해 봅니다. ⑴.이들은 로마 시민권 소지자란 것을 왜 처음부터 밝히지 않고, 출옥하는 마당에서 시민권 주장을 했느냐는 것입니다.(6:37) 당시 로마인은 무법하게 재판을 받지 않으며, 채찍이나 고문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권리를 주장했다면, 체포와 매질의 면책특권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당시 상습적인 ‘재판의 불법성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로마인을 불법으로 처벌했을 때 중벌을 받는 것을 환기시키면서, 또한 빌립보에서 믿게 된 어린 성도들의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⑵.하나님의 능력으로 옥문이 열렸음에도 왜 출옥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로마 법률에는 죄수가 도주하면 간수가 대신 형벌을 받게 됩니다.(12:19) 그러므로 간수가 형벌을 받기 전에, 미리 자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간수에게 ‘인격적인 놀람’을 통해서 복음 전도의 호기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본문 16:29에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이 열린 옥 안에 泰然自若하게 앉아 있는 두 전도자를 볼 때, 그는 인격 이상의 인격을 느끼면서 무서워 부복했던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이제 우리가 봉독한 본문에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잡히어 매를 맞아 상처가 나고, 옥에 갇힌 후에 밤중에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밤의 찬미”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밤의 찬미의 실례를 구약의 욥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욥이 행복했던 산정(山頂)에서 불행의 심연(深淵)으로 떨어졌을 때,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갈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1:21)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밤의 찬미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같은 실례를 우리 주님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만찬을 잡수셨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이요, 속죄의 길이긴 하였으나, 인간성을 가진 주님께서는 캄캄한 밤이요, 역경의 때였던 것입니다.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반역하러 나가버렸고, 가장 신뢰하던 베드로는 주님을 3번이나 부인할 것을 예언하시면서 다가오는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시던 주님의 가슴은 어두웠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만찬 석상에서 일어나시어 찬미하면서 감람산으로 가시었던 것입니다. 밤의 찬미를 부르신 것입니다. 밤의 찬미는 역경에서 감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찬미가 아니라, 역경에서 느끼는 심심한 은총에 감사하여 부르는 찬미인 것입니다. 수리아의 제3대 감독이며 로마 트라얀 황제 때, 순교당한 익나티우스는 그의 죽음의 행진이었던 로마로 가는 최후의 여행을 하면서, “죽음이 가까이 오고 포도열매가 커지며, 익어가기까지는 제자도(弟子道)의 진미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조각가 로댕은 “격렬히 자기를 단련한 사람 아니고는 박물관을 구경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유명한 말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일제탄압 하에 살 때, “주님을 찬미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험악하여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찬송을 부를 때의 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님의 은총을 실감했던 것입니다. 역경 속에서 심심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면서 부르는 그 찬미에서 참된 감사의 신비경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현대와 같이 국가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역경이 중첩해 있을 때, 진정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며, 밤의 찬미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특권인 것입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하여 왔으나, 그간 군사문화시절 때, 인권이라든지, 자유엔 제제를 받아 온 불행했던 세월을 우리는 경험했고, 그 상처가 남아 있는 분들도 있으나, 지금 착실한 자유민주주의 터를 잡아 희망찬 미래를 향해 가는 이 마당에, 특히 젊은 세대들은 갑절이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찾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밤의 찬미'란 것은 알지 못하면서 부르는 찬미인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히어 매 맞은 상처가 쓰라리고 아플 때, 자기들의 당한 일들의 대해서, 석언치 않는 의아심이 많았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들의 아세아 전도의 일을 막으셨을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옥중에 갇히게 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중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그들의 가슴에는 원망스런 생각은 사라지고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조상이라 부르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하면서 안심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과 과학의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은 갈 길이 분명하며, 증거가 확실 할 때만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 질 때, 그 가야 할 바를 모르며, 그 곡절을 모르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 품안에 안긴 아기가 어머니만 같이 있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도, 안심하면서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칼빈은 “신앙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우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왜 하나님은 무신론자를 용허 하시는가? 왜 악인의 번영을 용허하시는가? 왜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역사에 그처럼 작용토록 두었는가?”등등의 이해 할 수 없는 문제와 회의에 젖을 때가 많습니다. 신앙이란 이런 미해결의 장(章)을 가지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지만, 길을 인도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기독자의 삶인 것입니다.
4. 결론: 기독교의 신앙의 참된 감사는 역경에서 감사하는 것이며, 역경과 풀리지 않는 의문과 문제의 해결점을 알지 못하면서 찬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종교는 먼저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면 해결이 되는 종교입니다. 금년엔 수많은 우리 역사상의 돌출사건이 야기되는 이 때, 수많은 역경과 이유 모를 문제 속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밤의 찬미>를 부르며 전진했으면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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