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80. “세월을 아끼라.”

solomong 2025. 7. 1. 10:39

 

80. “세월을 아끼라.”

(본문: 엡5:15-16)

 

*-여러해 전, 12월 말에 쓴 설교문이지만, 그냥 올립니다. 금년도 오늘이 반년을 보내고 내일이 남은 반년을 시작하는 날이군요. 세월의 빠름을 느끼게 됩니다!-

 

1).서론: 18C.독일의 시인이요 극작가이었던 실러(F. Schiller,1759-1805)는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고 했고,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가라, 달려라, 그리고 세계가 6일 동안에 만들어졌음을 잊지 말라.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에게 청구할 수 있지만, 시간만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시간관에 대한 소중한 금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送舊迎新이란 시간상 최첨단의 최후와 최초란 경계선상에 서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말했던 것처럼, “지난 시간들의 불행은 언젠가 잘 못 보낸 시간(시간을 허비한)에 대한 보복”이라고 했습니다만, 오늘이란 현재의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찰나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묵은 숙원을 성취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새해엔 다시 소생시킬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중대한 關頭에 서서 무엇보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의 교훈을 통해서 새해에도 승리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2). 본론(Text): 본문5:15- ①. 새 사람의 지혜 있는 생활-바울은 옛 사람과 새 사람, 어두움과 빛 등으로 이교도와 기독자의 생활을 대조시켜 불신앙 때의 일을 버리고 새 생활을 권장하면서, 이제 본문에서는 기독자의 삶이 지혜 있는 자가 되어서 절제 있는 생활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②. 본문5:16- “아끼라”(ἐξαγοραζω) -앞 절에서 언급한 智慧있는 사람의 첫 번째 요소입니다. 새 사람은 시간을 가치 있게 활용하는 것이란 것입니다. “아끼라”(ἐξαγοραζω)라는 말은 <속량하여 낸다.>(갈3:13)라는 뜻입니다. 속량하여 낸다는 것은 Satan과 악한 자의 유혹하는 손길에,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서 귀중하다는 것을 내어 주고 ‘신앙의 절개’를 자기 것으로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3). 본론(Context): 바울은 에베소서 4:17에서부터 기독신자의 생활에 대한 것을 말씀해 왔습니다. 즉, 옛 사람과 새사람, 어두움과 빛, 이교도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대조시켜 지난날의 불신앙을 버리고 새 삶을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우리 역시 새 시간이 새 삶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해라는 그 시간의 계기를 통해서 질적으로 변화를 받는 새 생활의 출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새사람, 새해는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우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본문에, <아끼라>는 뜻은 <속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홀리어서 잘 못 산 삶에서, 혹은 악한자의 손아귀에서, 그 노예적인 삶의 해방을 위해서 贖錢을 지불하고서 탈출하여 이젠 자기 인생을 자기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윤리도덕에서부터 깨끗한 영혼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마치 부자 집에 강도가 침입했는데, 부자가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재산을 강도에게 내어 주고 자기 생명을 얻는 것과 같이, 인생 삶의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예리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순전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근원적으로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생활 속의 기독교 신앙을 견지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인 기독교계와 신학계는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진보성향의 교파들은 지금까지 역사의식, 사회구원, 구조적인 사회악 등에 역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해왔고, 보수성향의 교파들은 세상살이 자체를 죄악으로 보고 일종의 도피적인 삶을 살면서, 오직 영혼구원 그것도 개인구원에만 置重 하다가 보니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의 모습이 많이 露呈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보계는 인간개조 즉 기독자 자신들이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우측날개로 접어들고 있고, 보수계는 생활의 기독교, 행동하는 양심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래서 左와 右가 서로 만나는 共通分母인 변혁의 접촉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특히 한국장로교의 통합과 합동 측의 후배 목사들에게 부탁하노니, 목사 자신들의 삶 자체에서 신앙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라는 이 바울의 교훈은 기독교 신앙이 인간역사 街道에서 도피하는 신앙이 되어서 안 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살이의 피난처요, 동시에 위수지가 되면서 要塞가 되며, 동시에 전초기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과 경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후퇴는 금물입니다. 초대교회시대는 세상이 곧 끝나리라는 신앙 때문에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일하기를 그만 둔 자도 있었기에 일하기를 싫어하는 먹지도 말라고 바울이 경고했던 것입니다.

 

개인구원, 사회구원! 할 일이 너무 많기에 시간을 절약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은 의미 있는 생활의 '활동'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시간 관리를 잘하는 자가 인생의 승자가 되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다니면서 虛浪放蕩하기에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닥아 오는 새해는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안일에서 탈피해야 할 것입니다. 시인 롱펠로는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그리고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는 현재에 노력하는 자만이 인생의 최후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매 시간을 “우리의 마지막 날인 듯이 보내야 한다.” 고, 옛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제가 여기 시골 전원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모든 것이 機動的이던 도시생활과는 달라서 좀 느긋하고 태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집에 살았던 제 후배 부모님이 사용했던 卦鐘時計, 일명 自鳴鐘時計, 벽걸이 시계를 창고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사용했던 것이라 탭의 밥을 주어도, 벽에 반듯하게 잘 걸어도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계 점에 가서 말끔하게 고쳐서 거실에 걸어 놓았습니다. 이 자명종 시계의 재미있는 것은 매 시간마다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고, 매 시간 30분마다 한 번씩 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지금 전자시계는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알기 위할 때만 시계를 봅니다. 꼭 시계 아니더라도 PC. 휴대폰 등등으로 필요할 때, 시간을 잘 알 수 있습니다.이런 시계는 인간 삶의 시간에 있어서는 객체일 뿐입니다. 그런데 자명종 시계는 단순히 벽걸이 시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람들에게 警鐘을 울려주는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괘종시계를 벽에 달고부터는 다른 일을 하다가 시간 종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게 됩니다. 30분에 종소리 한번 치더니, 잠시 후엔 정각 몇 시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의 빠름을 절박하게 느끼고, 좀 부지런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익한 것은 새벽에 잠을 깨었을 때나, 어두워서 다른 전자시계를 보지 못할 때에도, 자명종 시계는 종소리를 울려주니, 보지 않아도 귀를 통해서도 시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새해엔 세월을 아껴서 근면한 삶을 살려면, 자명종 벽걸이 시계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세월을 아껴서 사는 일종의 한 방법도 될 수 있음을 고백적으로 전합니다.

 

4). 결론: 이 짧은 인생의 삶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소명에 응답하여 충성스런 청직이의 사명을 잘 감당키 위해서는 지금까지 잘못 산 삶을 속량하는 뜻에서도 우리는 세월을 아껴서 사는 2019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일회적인 인생의 삶속에 저마다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좋은 ‘스토리’를 남겼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가버린 시간을 반복하거나, 다시 오지 않게 한 것은 세월을 아껴서 살라는 의도라고도 생각하면서, 시간을 절약해서 할 일 많은 세상살이에서 무엇인가 가치 있는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다가오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