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그리움의 얼굴들
(본문: 롬 16:1-16)
1). 서론: ‘그리움이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이나, 또는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말합니다.’ 나이 들어 거울 속을 들여다보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는 아쉽다는 모습이 묻어나지만, 그래도 가슴에는 설레는 그리움이 저마다 있는 줄 압니다.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엔 전화를 걸어 차 한 잔 나누고 싶은 사람이 내가 그 사람이 되고, 그가 나의 대상이 되어, 소리 없이 우리는 저마다의 가슴에 들어오는 그리움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이런 그리움의 문안 인사가 바울의 정중한 인격과 인간미를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바울의 문안을 받는 26명의 명단이 단독으로, 혹은 부부로, 또는 집단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로마인, 헬라인, 유대인 등등 각각의 인종이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사들은 바울이 지난날 순회 전도하는 중에 사귄 친지들이며, 그 후에 로마로 이주한 신자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를테면 <그리움의 얼굴들>입니다. 어떤 연유로 ‘그리움의 얼굴’들이 되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본문의 이해(Text): ①.(롬 16장 원문비평의 문제) -⑴. 롬 15~16장은 로마 서신의 일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롬 14장 끝부분에 롬 16:25-27의 송영 부분의 내용이 담긴 寫本이 있다는 것으로, 본문 비평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⑵. 롬 16장에 26명이나 되는 인사들에게 문안을 보내고 있는데, 아직 로마에 가보지 못한 바울로서 미지의 교회에 이렇게 많은 친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의 첫 번째의 문제는 로마서는 15장으로 끝났고, 16장은 바울이 에베소로 보낸 것이란 가설이 유력하다는 것인데, 16장은 바울이 로마에서 에베소로 보낸 한 서신의 결론적 人事로서, 그 사본이 로마에 남아 있다가 바울의 로마서와 합쳐서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라면 바울이 3년간 전도한 곳이니, 친지가 많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문제는 당시 로마와 지방과의 교통이 빈번하였고, 글라우디오 황제의 추방령으로 유대인들이 로마를 떠났을 때(행 18:2), 바울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것이며, 본서가 기록되기 4~5년 전에 황제가 죽었으므로 많은 유대인이 로마로 귀환하였고, 따라서 아굴라 부부도 에베소에서 로마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②. 롬 16:1~2-뵈뵈의 천거 -뵈뵈는 로마로 가는 도중에 있고, 그래서 바울이 본서의 전달자로 그에게 위탁하였기에 뵈뵈를 높이 추천하였고, 로마 교인들에게 그를 정중히 대우해 주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존경과 사랑을 토대로 한 그리스도인 교제에 대한 예의를 지시한 것입니다. 바울은 특히 뵈뵈를 <나의 보호자>라고 하였습니다. ‘보호자’(προστάτις)라는 원뜻은 “앞에 서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로마 시민권이 없는 이방인 거주자의 대표로, 법률적으로 그들을 보호하는 직책을 가진 뵈뵈는 재력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지위도 높아 그리스도인 단체를 보호한 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당시 한 지방의 유력한 신자는 그 지방의 어려운 신자나 순회전도자를 대접하고 보호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하였던 것을 말합니다. (요3서 5절 참조) 하여간, 그때 뵈뵈는 바울의 보호자가 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③.롬 16:3~23-바울의 문안 인사 - 바울서신에는 문안의 교환이 상례이지만, 이렇게 방대한 경우는 처음입니다. 여기 명단에 나타난 사람들은 바울이 3차례 전도 여행 중에 사귄 친지들이며, 그 후로 로마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아래 26명의 문안 인사자들의 간략한 소개 내용이 있습니다만, 바울 자신의 가슴 속에는 더 깊은 사연과 추억들이 그를 오매불망(寤寐不忘)하도록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바울의 신앙과 인격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④. 26명의 문안 인사자 소개 - ⑴.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 ⑵.아시아의 처음 익은 열매(에배네도), ⑶. 많이 수고함(마리아), ⑷. 바울의 친척이요, 바울과 함께 투옥된 자들(안드로니고와 유니아), ⑸. 주 안에 있는 사랑하는 노예 신자(암블리아), ⑹. 노예 신분을 가진 주님의 일꾼(우르바노),
⑺. 바울이 사랑하는 자(스다구), ⑻. 어려운 시련을 믿음으로 극복하여 교회에서 인정한 자(아벨레), ⑼. 가족이요, 노예의 신분을 가진 자(아리스도불로), ⑽. 바울의 친척인 유대인(헤로디온), ⑾. 노예에서 해방된 자들(나깃수의 권속), ⑿. 주안에서 수고한자들(드루배나와 드루보사의 자매), ⒀. 주안에서 수고하여 사랑받는 자(버시),
⒁. 주안에서 택함을 입은 자들(루포와 그의 어머니-바울이 어릴 때 모성적인 사랑을 베푼 자), ⒂. 블레곤을 제외한 노예 신자들(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 및 함께 있는 가정교회의 형제들), ⒃. 작은 가정교회의 교인들(노예인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부부와 남매를 중심으로 한 가정교회 교인들)
3). 본론(Context): <문안 인사>라는 것은 보통 직접 만나 얼굴과 얼굴이 相面치 못하기에, 편지 속에서 안부를 묻는 인사의 한 書式입니다. 어쩌면 마음에도 없는 서신의 한 형식이기에 안부를 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 속에서 상대자가 처해있는 상황 여하에 따라서, 格式을 초월해서, 서로 간 얼굴이 스치듯이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Encounter) 애절한 그리움의 정이 담긴 문안 인사가 참 문안 인사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바울이 26명에 대한 문안 인사가 바로 그런 정이 담긴 참 문안 인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Rome 식민지 치하에서, 노예시장으로 끌려가는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이단 사설이 난무하는 정신문화 속에서, 가정공동체란 교회 안에서 참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정황에 처하여 있던 초대교회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AD. 50년대 말경) 사도 바울은 세계의 심장부인 로마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그의 결의는 일편단심, 일사 각오의 정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문안하는 26명은 주 후 40년대 말에서 50년대 말까지 바울이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방을 순행 전도하는 중에 사귄 친지들이며, 그 후 로마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 중엔 단독으로, 부부로, 혹은 집단으로, 인종 구분으로는 로마인, 헬라인, 유대인 등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자신이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있는 ‘그리움의 얼굴들’입니다. 우리는 바울 개인의 문안 인사라고 넘기기엔 아까운 교훈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목회자의 道理, 성도 간의 사랑의 交際와 목회 동역자 사이의 情義를 엿보게 됩니다.
이 문안 인사는 현대적인 의미로는 성도의 교제를 말하며, 그것은 신학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뜻하고 있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가지는 곳이며, 그 교제의 차원에서 구원받은 성도들끼리 신성한 교제를 가지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신도들 사이, 교회 신도들 간 및 동역자 간의 관계가 ‘그리움의 얼굴들’이 될지언정, “그 사람 보기 싫다! 그 장로, 그 권사, 그 집사 미운 사람이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오매 간(寤寐 間) ‘그리움의 얼굴들’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신앙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움이란 것>은 인생의 어떤 한순간이 마치 예전에 사진을 찍을 때 터뜨리던 마그네슘처럼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속에 찍히고 인화되는 그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것을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 <그리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문안 인사는 서신의 격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의와 인격을 포함한 그리움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혜원 박영배 시인은 ‘그리움의 定義’를 詩로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바닷가 사람은 수평선으로부터/그리움이 밀려온다. 하고/산자락 사람은 메아리 속에/그리움이 묻어있다 한다./눈앞에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그리워하는 건 누군가를 담았다는 것/그곳으로 나만의 시선을 모아/사랑이라는 지표로 삼는 것/그것이 더러는 고통이라는 것/먼발치에 두고 말 한마디/섞어보지 못한 사람도/남몰래 가슴만 태우는 사람도/저마다 그것을 품어 안고/바람이 전해 준 말을 쓰다듬으며/하루하루 숨통을 틔워나가는/자기만의 몸부림이라는 것/밀물처럼 일렁이는 설렘도/귓속말로 소곤대는 아쉬움도/내 울타리에 피어난 꽃 넝쿨이다." 그리움은 막연한 보고 싶은 것이 아닌 처절한 육신과 영혼의 목마름이라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佛家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습니다만, 이는 ‘나와 소중한 만난 한 사람을 귀중히 여겨라.’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여간, 바울이 문안 인사를 한 上記 대상자들의 소개 명단을 볼 때, 추억으로 점철된 인연의 사람들이요, <그리움의 얼굴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도 목회자와 신도들 사이, 목회 동역자 간에, 친구 간에 서로가 그리움의 얼굴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움의 26명의 얼굴들’은 주님을 위한 일의 열매요, 보람이요, 삶의 기쁨이요, 주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움의 얼굴들을 가지고 살라는 교훈이요, 또한 우리 자신이 그리운 얼굴의 대상자가 되어야 한다는 忠言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향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들면 그것이 그리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그리움은 우리 존재의 內面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귀중한 <그리움의 얼굴>이 된 것은 위의 26명의 문안 인사자 소개 내용을 대략 보아도 그 답이 나옵니다.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을 각오가 선 희생적인 사랑, 바울이 전도하여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온 자, 바울과 함께 옥중에서 고생한 성도,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이 어릴 때 모성적 사랑을 베푼 자, 비인간화된 사회 속의 노예 신분임에도 주님의 일꾼이 되고 주님을 믿는 신자가 된 자들입니다.
내 삶의 어느 한순간이 "얼음"처럼 차디차게 냉엄해졌을 때, 따뜻함이 넘쳐 뜨겁기까지 해 준 추억의 주인공들, 상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몫을 나눈 연민의 정이 엉킨 인연의 주인공들, 따스한 말 한마디가 바른길을 걷게 하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함께 땀을 쏟음으로 참사랑을 알게 하고, 수천 갈래 수만 갈래 애달픈 생각에서 기도해 주는 자들은 모두 ‘그리움의 얼굴’들인 것입니다. 우리 이런 그리움을 유발하는 주인공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못 잊어 그리워하는 당사자들이 다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서로 간 ‘그리움의 얼굴’들이 됩시다.
4. 결론: 사도 바울이 문안하는 26명은 3차례(AD. 40년 말에서 50년대 말까지)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방을 순행 전도하는 중에 사귄 친지들이며, 그 후 로마로 이주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엔 단독으로, 부부로, 혹은 집단으로, 인종적으로는 로마인, 헬라인, 유대인 등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자신이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있는 ‘그리움의 얼굴들’입니다. 우리는 바울 개인의 문안 인사라고 넘기기엔 아까운 교훈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목회자의 道理, 성도 간의 사랑의 交際와 목회 동역자 사이의 情義를 엿보게 됩니다.
이 문안 인사는 현대적인 의미로는 성도의 교제를 말하며, 그것은 신학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뜻하고 있습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가지는 곳이며, 그 교제의 차원에서 구원받은 성도들끼리 신성한 교제를 가지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신도들 사이, 교회 신도들 간 및 동역자 간의 관계가 ‘그리움의 얼굴들’로서, 오매 간(寤寐 間) ‘그리움의 얼굴들’을 그리면서 사는 신앙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 삶의 어느 한순간이 "얼음"처럼 차디차게 냉엄해졌을 때, 따뜻함이 넘쳐 뜨겁기까지 해준 추억의 주인공들, 상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몫을 나눈 연민의 정이 엉킨 인연의 주인공들, 따스한 말 한마디가 바른길을 걷게 하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함께 땀을 쏟음으로 참사랑을 알게 하고, 수천 갈래 수만 갈래 애달픈 생각에서 기도해 주는 자들은 모두 ‘그리움의 얼굴’들인 것입니다. 우리 이런 그리움을 유발하는 주인공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못 잊어 그리워하는 당사자들이 다 되도록 합시다. 그래서 서로 간 ‘그리움의 얼굴’들이 됩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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