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72. 어린이 헌장(憲章)

solomong 2025. 5. 2. 11:02

 

72. 어린이 헌장(憲章)

(본문: 마18:1-14, 막9:33-37, 42-48, 눅9:46-48)

 

1). 서론: 저는 고려대 교수를 지낸바 있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聖誕祭)라는 시를 즐겨 읊조리고는 합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비비는 것이었다./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아직도 내 혈맥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눈을 지그시 감고, 눈이 펑펑 내리는 광경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감상했으면 합니다.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깊은 산골 마을, 밤중에 사랑하는 자식의 체온이 39도를 넘는 불덩이입니다. 밖에는 눈이 펑펑 내려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눈이 가득 쌓이고 있습니다. 고열로 신음하는 애처로운 어린 자식을 볼 때, 자식에 대한 부정(父情)의 사랑이 자식의 육체적 열보다 더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데는 산수유 열매가 좋다는데…그런데 이 춥고 눈 내리는 산골 마을에 그런 조약을 어디서 구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가보자" 하면서 동네방네 추운 줄도 모르며, 눈 속을 넘고 넘어 김 서방 집, 이 서방 집을 다니면서 구해 온 산수유, 아버지의 그 희생적인 사랑이 아들의 그 열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날 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 백성을 사랑하셔서 비천비하의 모습으로 탄생하신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제의 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월은 20여 년이 흘러, 인간같이 보이지 않아서 마치 어린 짐승처럼 보이던 나약한 10대의 소년이 이젠 30세가 되어, 이마에 인생고의 첫 주름살이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문득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자신은 또 아버지가 되어 자녀를 낳아서 양육하는 즈음, 눈 오는 '성탄제'의 그날 밤! 사랑에 찬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그의 혈맥(血脈)에 다시 흘러 그 사랑의 피가 또 자기 자녀에게 흘러가는 시에 젖게 합니다. 우리는 이 시에서, 오늘 성서 말씀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부모(어른)라는 거울 통해서(투영된) 어린이들의 인격, 가치관, 신앙, 등이 성장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본문의 말씀을 '어린이 헌장'(憲章)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어린이 중에는 어릴 때부터 비뚤어진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개 잘못된 부모, 어른, 교사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것은 '어린이'라는 보편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헌장이란 것은 국가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정한 원칙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본론(Text): ①. 누가 크냐(μείξων-메이콘) 비교급으로 “누가 더 크냐”라는 것입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가버나움 오는 도상에 ‘누가 더 크냐’에 대한 시비가 있었다고 봅니다. 제자들의 전도여행의 결과를 분석,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한 주님의 격찬, 변화산상에 3제자가 뽑혀서 동반한 것 등에서 우열(優劣)에 대한 변론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상경하면 왕위에 오르실 것을 기대하고, 그럴 경우 제자들 중 누가 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 할 것인가를 두고 다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②.“돌이켜”(στραφῆτε-스트라훼-테)라는 헬라어 동사의 시상은 ‘단 한번’인 ‘최후의 결정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그릇된 야심에서 마음의 방향을 전환한다.”는 뜻입니다. 즉 ‘돌아서는 것, 회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의 욕심과 우열에 대한 시비에서 단 한번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라는 주님의 단호하고 결단적인 말씀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③. “어린 아이들과 같이”-어린 아이의 ‘단순성과 겸손’을 배울 점이라고 합니다. 특히 본문의 내용은 ‘겸손’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제1조:"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것은 어린이의 천진난만함으로 구원받고 도덕적으로는 성결한, 꾸준한 정진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2조:"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 겸손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겸손은 기독교 최대의 미덕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개인윤리에 대한 교훈만이 있었고, 사회윤리에 대한 교훈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사상(再臨思想) 때문에 사회윤리 교훈이 없었습니다. 바울도 '노예제도'를 묵인했습니다. 곧 '주의 재림'이 임박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겸손 하라는 것은 비겁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성서에는 사회윤리 사상이 많습니다. 예컨대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正義)를 하수(河水)같이 흘릴 지로다.'(암 6:24). 제3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뢰하라는 교훈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진한 어린이처럼 당신(Thou)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삶이란 어른이 될수록 인생살이가 복잡해집니다. 인간관계가 신뢰에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불신으로 변해갑니다. 순진한 어린이의 마음이 자랄수록 점점 때가 묻어 인간성이 변질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때가 묻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 기성인들이 모범이 되고, 교육을 잘 해야 한다는 교훈도 명심했으면 합니다. 또한 항상 어린이(보편성)와 같은 순결한 마음을 우리 기독신자들이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제4조:"이 소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죽으리라."(인간에 대한 생명의 존엄성) 인권의 존귀성, 자기 생명에 대한 자존심(자긍심)입니다. 2000년 월드컵대회 때의 붉은 악마는 국민의 자부심의 표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으로 21세기 한국인의 '문예부흥'(The Renaissance)이었습니다. 생명의 경외심이 없이는 자기 사랑도 남에 대한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어린이 헌장에 대한 교육심리학적인 해석을 해봅시다: 1).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쉐릴(Sherrill) 박사의 이론(The Struggle of Soul)에 의하면,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 진공관 속에 태어나지 않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난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날 때 이웃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초의 그 이웃을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영원한 인생 드라마인 삼각관계(Triangle)를 말합니다.

 

2). 심리학자 에릭슨(E. Erikson)이란 학자는 "인간 최초의 위기는 바로 1살 이내에 찾아오는데, 그것은 신뢰(Trust) 대 불신뢰(Mistrust)로서, 최초의 이웃인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정서 감정(사랑 대 미움의 감정)입니다. 잘못 되면 나중엔 하나님도 불신뢰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3). 마지막으로 자기 존중감(Self-Esteem)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기 존중감은 자녀들 각자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남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자신이 평가하는 정서(情緖)를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웃사랑의 출발은 자기 사랑을 전제하는데서 이웃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긍정)이 없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존중감의 두 가지 중요한 신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랑스럽다."(나는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자기를 존중하지 못하면 남도 존경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가치가 있다."(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유익을 제공할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다) 긍지(Pride)가 있어야 축구 경기에도 산업 전선에도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린이 자아상은 부모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정립해나가는 하나의 '심리적 거울' 그것이 부모의 모습인 것입니다.

 

4). 구체적 방법(How to)은 '실천'입니다. 조그마한 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철학자: 뱃사공 당신은 철학을 알고 있습니까? 뱃사공: 모릅니다. 철학자: 허허! 인생의 3분의 1을 헛살았구려! 그럼, 문학을 아는 가? 뱃사공: 모릅니다. 그때 배가 바위에 부딪쳐서 파선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뱃사공: 선생님! 수영을 할 줄 아십니까? 철학자: 못합니다. 뱃사공: 그럼, 선생님의 인생의 전부를 잃게 되는 셈이구려! 그래서 칸트(Kant)는 '실천 없는 이론은 이상주의자들의 환상에 불가하고, 이론 없는 실천은 영혼 없는 육체 같아서 유물론자들의 환상과 같다'고 했습니다.

 

5). 그래서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는, 교육자와 부모는 "부정적 언어를 버리고 긍정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난, 창피, 훈화, 명령, 문책, 멸시 및 협박 등의 인격과 성격을 논하지 말고, 다만 상황만 말하라(미술시간: 물감이 엎질러졌을 때, 왜 그랬느냐가 아니고 걸레가 필요하구나, 라는 말이 적합하다는 말입니다) "인격을 가지고 비난도 칭찬도 말라." "너는 왜 석두냐, 수학시험 100점 맞았구나, 너는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라는 예가 그런 것입니다.

 

처벌문제-범죄 소년을 위한 특수학교 첫 수업하는 교육자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문제 소년들이 교실입구 바닥에 왁스를 칠해 놓은 함정에 넘어졌습니다. 첫 수업을 하기 위해 들어가던 선생님은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인생의 삶에는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문제 소년 소녀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첫 수업이 성공적이었습니다.

 

4). 결론: 제1조 '천진 난만성'은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가 되어가는 성숙한 성도가 됨을 의미합니다. 제2조는 '겸손'인데 이것은 개인윤리적인 입장에서 겸손하고, 사회윤리적인 입장에서는 정의(正義)를 실현하라는 함축된 의미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제3조는 '신뢰'인데 인간관계에서 신뢰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제4조는 생명을 사랑하는 것으로서, 자기 사랑(긍정)부터 시작하여 이웃 사랑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들이, 어른들이, 교사들이, 부모라는 거울, 어른이라는 거울, 교사라는 거울을 통해서, 어린이들은 인격, 신앙, 가치관, 인생관 등이 형성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또한 보편성을 띈 어린이의 심성을 항상 우리 기성교인들이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