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바울의 원죄론
(본문: 롬5:12-21)
1). 서론: 로마서 5장에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마당에서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악이 세상에 보편화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罪觀을 말하는 동시에 原罪論(Original Sin)을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으로 말미암은 범죄와 멸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와 영생이란 축복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면 그 원죄론의 세부 내용과 이 원죄론에 대한 그간의 역사적으로 어떻게 흘러 왔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①. 롬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한 사람> -<모든 삶의 대표>를 뜻합니다. 아담은 모든 범죄자의 대표로서 거기서 사망의 줄기가 뻗어 나놨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는 모든 중생자의 대표로서 거기에서 생명의 줄기가 흘러나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와 사망을 논하면서 그것이 한 사람을 통하여 들어오고, 번식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미친 것이므로 아담이 <죄와 사망>의 원조인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②.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죄로 말미암아 육적 죽음은(창2:17,3:19), 죄의 결과로 사망이 왔다는 것입니다.(롬6:23) 만일 아담이 범죄 하지 않았던들 그는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였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원래에 대한 變態인 것입니다. ③. “죄를 지었으므로”(ἥμαρτον) -이미 결정적으로 범죄 하였다는 뜻입니다. 본 절은 원죄설의 근거가 되어 왔습니다.
④. 롬5:13-14-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율법이 있기 전, 즉 아담부터 모세까지도 죄는 있었고, 율법이란 죄를 규정하고, 따라서 심판하는 것이므로(롬3:20, 4:15), 율법 이전의 죄란 정죄를 받을 수가 없을 터인데, 사실은 그와 반대로 그 때의 죄도 심판을 받고 사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담 한 사람의 범죄와 사망이 그대로 만인의 죄와 사망이 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⑤. 롬5:14-“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표상(τύπος)> -자극(요20:25), 모범(히8:5) 등을 뜻합니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말입니다. 아담은 죄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죄를 미치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의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의를 미치게 하였고, 아담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에서 모든 사람이 산 것을 뜻합니다.
⑥. 롬 5:15-21-롬5:12-14에서는 아담에게서 모든 인류의 타락을 지적하고, 5:15-21부터는 그리스도의 모든 인류의 구원을 증명하고, 이 증명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예리한 비교로 되어 있습니다. <은사(χάρισμα) -성령을 통하여 각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은혜(χάρις)> ‘넘친다.’는 뜻입니다. 그릇의 물이 한계를 넘어서 넘쳐서 흐른다는 것입니다.
⑦. 롬5:20 “율법이 들어 온 것은”-아담으로 말미암은 범죄와 멸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와 영생이란 축복으로 결론지었는데, 그러면 그 중간에 있는 율법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이미 있던 죄 곁에 와서 그 범죄를 가중케 함이란 뜻입니다. “범죄를 더하게 함이라.”-율법의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롬7:7), 욕심을 격동시켜 범죄를 더하게 하여(롬7:8), 결과적으로 살게 할 것이 도리어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롬7:10)
⑧.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비로소 하나님은 잔인한 폭군이 되지 않고 생명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해 범죄가 더한 잔인한 현상은 넘치는 은혜로 압도된 것입니다.<더욱 넘침>은 ‘복합형으로 넘치고 추월하여 풍성함’이란 강한 표현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죄가 인간을 파면에 빠트린 후에, 은혜는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즉, 죄가 넘칠 때에 은혜는 더욱 넘쳐 단지 죄의 홍수를 극복만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흡수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3). 본론(Context):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마당에서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악이 세상에 보편화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罪觀을 말하는 동시에 原罪論(Original Sin)을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죄론의 근거로서 본문 외에 엡 2:3, 욥31:33, 사43:27 등의 인용되기도 하였지만, 본문은 더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죄론의 세부 내용을 해부해 보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①. 원 범죄(Original guilty): 아담의 범죄라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죄를 논한 것입니다. 아담은 전 인류의 시조로서 그의 범죄는 그대로 그의 모든 자손에게 유전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담의 죄목인 선악과를 따 먹은 그 자체는 유전될 수 없지만, 그 범죄 사실인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은 그대로 유전되어 그의 모든 자손에게 원죄가 되고, 그것이 모든 구체적인 自犯罪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롬5:12-19, 엡2:3, 고전15:22)
②. 근본적 부패(Original corruption):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사람은 나면서부터 부패한 심령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심령적 질병이거나 결핍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악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③. 완전타락(Total depravity): 인간의 근본적 부패의 범위는 완전타락이란 것입니다. 이는 인간에게 도덕적인 선이거나, 하나님을 찾는 종교적 탐구심 같은 것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즉 더 높은 종교적 요구의 표준에서 판단 할 때에, 전적으로 타락하여 선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롬7:18, 23, 엡4:18, 딤후3:2-4, 히3:12)
④. 전적무능(Total inability): 완전 타락의 결과는 인간의 전적 무능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인간에게 도덕적 또는 율법적 선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본 높은 표준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신령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롬7:18, 24, 8:18, 24, 고전2:14, 엡2:1, 8-10, 히11:6)
이와 같은 원죄론은 여러 관점에서 반대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즉, ⑴. 과학적으로 보아서 완전하게 타락했다는 원죄론은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진화하였다는 진화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⑵. 윤리적으로 보아서 타인의 범죄의 보응을 받는다는 것은 윤리적 원리에 배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⑶. 실제적으로 보아서 전적무능의 주장은 도덕적인 장려를 막는 다는 것입니다. ⑷. 종교적으로 완전타락의 주장은 회개의 가능성을 없이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반대들은 오히려 피상적인 것뿐이며, 더 깊은 면에서 조화의 길이 많다고 봅니다.
우리 정통주의의 원죄론은 초대교회시대의 Augustine에서 형성되고, 중세 Schola시대에서 굳어져서 개혁자 Calvin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좀 더 세밀히 원조론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신약시대 당시 유대인의 랍비신학에서는 아담의 범죄에 결부시키는 것이 정설이었고, 바울도 그것을 답습한 것이라고 봅니다. 초대교회시대엔 Greek 교부들은 육체적 타락을 아담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보았습니다. 변증학자 Tertullianus은 인간의 罪性이 아담에게서 기원한 것을 시인했으나, 동시에 善性의 요소는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니케아회의 이후엔 그리스도론이 확정됨을 준해서 교회의 罪惡論도 점차적으로 명료해 졌습니다. 즉 Athanasius는 아담의 범죄에서 인류는 전적 타락한 것으로 보았고, 그러나 원죄론은 역시 서방교회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사료되며, Augustine의 스승인 Ambrose는 사람이 출생 전에 벌써 원죄로 인해 더러워 진 것과 원죄와 自犯罪를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원죄론의 대성자는 Augustine이었고, 그의 학설은 Pelagius와의 논쟁에서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Pelagius는 아담의 범죄는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서 그의 자손에게 영향이 없으며, 육체의 죽음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은 육체의 자연스런 운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Augustine은 인류는 전체적으로 그 시조 아담 안에서 그와 같이 범죄하여 타락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길 외에는 전적으로 소망이 없는 자란 것을 단정을 하였습니다. 중세 Schola시대의 원죄론은 대체적으로 Augustine의 학설을 계승한 것이었습니다.
종교 개혁가들의 원죄론은 Augustine에서 계승한 것이나, 성질의 부패(원죄)와 자범죄로 나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Calvin은 Augustine에 비해 원죄로 말미암은 완전타락을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스칼라주의의 종교 전체는 2가지의 반동을 가져왔습니다. 그 하나는 성서에로 돌아가는 종교개혁 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성에 돌아가는 자유주의의 발흥이었습니다.
19C. 신정통주의의 영도자 Karl Barth는 인간의 無能性을 강조하고 자력으로 하나님을 향할 수 없는 위기에 있는 것을 단정함으로 정통적 풍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트는 인간의 타락을 많이 말하지만, 원죄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타락이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진리로 보았습니다.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왔다는 것은 엄격히 역사적 또는 심리적 사건은 아니었다. 서방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원죄론 같은 것은 바울에게는 흥미 있는 가설은 아니었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현대에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 오히려 주목되는 것은 H. Gunkel이나 Bultmann의 양식 비판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신구약성서 중에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神話라는 전제하에 단지 저작시대의 사회적 사고 양식을 표시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아담의 범죄와 전 인류의 타락을 연결시키는 원죄론은 물론 아담 자체의 역사성까지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대의 신학적 동향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성을 떠난 진리를 수립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란 사실에서 출발하여야 하고, 또한 사실에 귀착될 때 비로소 진리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罪論에 있어서 원죄론이 말하는 아담의 범죄와 거기에서 전 인류가 타락하였다는 것은 죄의 출발을 밝히는 것이며, 죄의 필연적인 형벌로서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그 귀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원죄론은 오히려 건전한 죄론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그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밝히는 바요, 성서 전체에 흐르는 진리하고 사료 됩니다.
4). 결론: 아담은 모든 범죄자의 대표로서 거기서 사망의 줄기가 뻗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는 모든 중생자의 대표로서 거기에서 생명의 줄기로 흘러나왔습니다. 바울은 죄와 사망을 논하면서 그것이 한 사람을 통하여 들어오고, 번식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미친 것이므로 아담이 <죄와 사망>의 원조인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아담은 죄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죄를 미치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의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의를 미치게 하였고, 아담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에서 모든 사람이 산 것을 뜻합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롬7:7), 욕심을 격동시켜 범죄를 더하게 하여(롬7:8), 결과적으로 살게 할 것이 도리어 죽게 했습니다.(롬7:10) 비로소 하나님은 잔인한 폭군이 되지 않고 생명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율법으로 인해 범죄가 더한 잔인한 현상은 넘치는 은혜로 압도한 것이었습니다. 죄가 인간을 파면에 빠트린 후에,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즉, 죄가 넘칠 때에 은혜는 더욱 넘쳐 단지 죄의 홍수를 극복만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흡수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은총에 대하여, 만강에 넘치는 심정으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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