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58.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

solomong 2025. 3. 12. 10:57

58.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

(본문: 히1:1-4:13)

 

1). 서론: 光源(發光體) 앞에 불투명한 물체를 놓으면, 빛을 발하지 못하고 그림자만 생길 뿐입니다. 그 그림자는 빛이 직진하는 성질을 통과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리를 발광체 앞에 놓으면 생생하게 그대로 빛을 발하고, 더욱이 거울은 발광체의 빛을 받아서 反射(되 쏘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빛의 속성을 지니신 光源 그 자체이십니다. 구약의 모세, 선지자들, 제사장들 및 천사들은 광원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그대로 발하거나, 반사치 못하는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빛을 받아서 그대로 비추시며 반사하는 신적 속성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적인 요지는 구약의 그 어떤 인물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하물며 天使도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에 비교 할 수 없는 한갓 된 모형(ὑπόδειγμα)과 그림자(σκί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히1:3, 히8:5 참조)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正體(Identity)를 재인식시키고, 유대교에서 개종한 성도들의 배교(背敎)를 방지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이 존귀하게 여기는 구약의 존재들보다 우월한 인격체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묵상해 봅시다.

 

2). 본론(Text):①. 히브리서의 槪觀: 히브리서는 요한계시록과 더불어 이해하기가 어려운 성경 중에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우리 기독자들의 삶과 너무나 遊離되어 있으며, 현대 기독자들은 성전이나 성막에서 제사를 지내 본 적이 없는데, 히브리서엔 구약의 제사제도, 제사장, 그리고 성막에 대해서 많은 언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를 묵상하고 연구해야 할 이유는 히브리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대한 진수를 담고 있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과의 상관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신약에서 가장 구약적인 성서입니다. 구약의 직접 인용이 29회 이상, 정황적 인용이 53회 이상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성경입니다. 또한 유대교에 대한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한 변증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서는 만물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구약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약에서 예언한 Messiah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이미 성도가 된 유대인의 신앙을 돈독케 하도록,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구약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속죄 제물로 이 세상에 오심을 밝힘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하도록 권면하며, 이 신앙의 본보기로 제시한 구약의 인물들이 소개됨으로서 변치 않는 신앙의 위대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교리부분(1:1~10:18)과 성도의 믿음을 촉구하는 실천부분(10:19~13:25)으로 나룰 수 있습니다.

 

②. 본문 말씀의 要旨: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적 속성을 강조하므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1장은 본서의 서론부분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와 천사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당시 1세기란 시대적 상황에서 유대주의 전통 때문에 예수의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에게 예수에 대한 정체(Identity)를 재인식케 합니다.

 

유대교주의에서 개종한 성도들의 배교(背敎)를 방지하기 위해 예수가 유대인들이 존귀하게 여기는 구약의 존재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증명하게 됩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를 선지자(1:1절)와 천사(1:4~2:18)와 모세(3:1-6) 등과 비교하여 예수만이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를 보여 주며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내용구조는 계시의 완성이신 그리스도(1:3),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4:13)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③. 천사론: 천사는 구약과 신약에 자주 나타나며, 대체로 어떤 註解 없이 단순한 출현 또는 언급이 있었으나, 히브리서는 이를 교리화 하고, 그리스도와 비교함에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한 히브리서는 먼저 천사와의 비교에서 그 주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다 같이 ‘使者’라는 뜻이며, 천사는 초자연적 또는 천적 존재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천사의 직무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창28:12, 31:11) 이외에 주로 하나님의 심판의 전달자로 활약하였습니다. 구약의 천사를 논하게 될 때는 반드시 ‘여호와의 천사’, 또는 ‘하나님의 천사’라는 명칭이 붙게 됩니다. 이는 다른 천사들보다 초월하여 특수한 존재인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일시되어 그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창32:3, 삿13:22) 동시에 여호와의 천사는 늘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나 단순한 사람의 길손과 혼돈되기도 하였습니다.(창16:7, 출3:2, 삿2:1, 4)

 

이런 전제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1). 하나님 자신의 나타나심(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구약의 관념: 삿13:22), (2). 특별한 사명을 띠고 나타난 천사(일반 천사보다 초월한 존재), (3). 성자 그리스도(그리스도의 선재설: 요1:1-5), 이 3가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천사에 관한 그리스도의 교훈은 구약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였습니다. 천사에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가 있어, 선한 천사는 하늘에 있으며(마22:30), 타락한 천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시므로(눅10:18) 악한 천사의 교리도 확인됩니다.

 

히브리서의 천사론은 피조물로서 그리스도 아래 종속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논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면 천사는 하나님의 도성에 천만을 헤아리는 무리로 존재하며(히12:22), 구약의 율법은 천사로 말미암아 주신 것임으로 그리스도가 주신 복음보다 열등하다는 것입니다.(히2:2, 3, 1:4), 천사는 사람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섬기는 자들이란 것입니다.(히1:7, 14) 천사의 기원에 관해서는 천지창조 제2일에 지음을 받았다고 하며, 혹은 천지창조 이전에 먼저 지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얼마의 세월이 흐르는 중 천사장의 하나인 루시퍼(Lucifer, 사14:12, 눅10:18)가 하나님의 보좌를 엿보고 하나님과 同等하게 되려다 추방되어 Satan이 되고, 그 때 그와 같이 타락한 일단의 천사들이 마귀가 되었다는 마귀론(Demonology)이 형성되었습니다. 선한 천사장으로는 우리엘(Uriel), 라파엘(Raphael), 라구엘(Raquel), 미가엘(Michael), 사리엘(Sariel), 가브리엘(Gabriel) 및 라미엘(Ramiel) 등이 7천사로 불리 웁니다.(계8:2) 하여간, 천사를 사람 이상의 위치에 두는 유대적 개념(히2:7)에 대하여 히브리서와 같은 천사론이 필요했다고 보겠습니다.

 

④. 본문에 있어서 핵심구절의 낱말해석: (1).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 3절 전체의 말씀은 시적표현의 형태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의식에서 신앙고백을 반영하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人格(Person)을 잘 설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스도는 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ⅱ). 본체이신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ⅲ). 그리스도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ⅳ).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며, ⅴ).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위엄에 가득 찬 인격을 가지신 분이란 것입니다.

 

(2).“광채(ἀπαύγασμα)라는 용어는 이곳에만 나타나며, 헬라어의 동사는 <ἀπαυγάζω>인데, 자신의 빛을 “비친다.” 또는 “반사한다.”라는 2가지 뜻을 가지나, ‘광채의 직접적인 비침’으로 해석하는 것이 Greek 교부들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성자 그리스도는 神性의 존엄성이시고, 그 영광이 밖으로 비춰 가시는 광채란 것입니다.

 

(3).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형상(χαρακτὴρ)이란 이 용어는 신약에서 이곳에만 보이는 용어이며, ‘새긴다.’(χαράσσω)에서 파생된 낱말입니다. 그러므로 조각한 도구, 거기에서 원형을 그대로 그린 肖像을 뜻하고 있습니다. “본체”(ὑπόστασις)는 ‘아래’(ὑπό), ‘선다.’(ἵστημι)라는 것으로 ‘근거가 되는 것’에서 실질적인 성격(substantial nature)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뜻은 하나님의 본질이 도장을 찍은 듯 그대로 그리스도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4).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위의 2구절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人格을 나타내었으나, 여기서부터는 그리스도의 役事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적 인격이 신적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λόγος가 기본적으로 “말씀”(Word)을 뜻함에 대해서 ῥη̑μα는 ‘말한 말씀’(saying)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다시 그 말씀으로 지으신 만물을 붙드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적 능력을 대표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붙드시며(φέρων)는 원래 ‘운반함’을 뜻하고 있습니다. 광활한 우주를 운행하시고, 인간사의 제반사를 섭리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시란 의미입니다.

 

(5).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신 최대의 사명을 말씀하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속죄의 대업을 완성하시는 것을 뜻함인데, 그리스도의 속죄는 구약이 제사장과는 다르게, 결정적인 동작인 단 한번으로 완성하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히9:28)

(6).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높은 곳”(τοι̑ς ὑφ́ίστοις)은 일반적으로 송영에 사용되는 낱말입니다.(마21:9) “위엄의”(μεγαλωσύνη)는 히8:1과유25절에만 보입니다. 이 두 낱말은 동일하게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신분과 대조가 됩니다. 세상에 오셔서 가장 낮은 처지에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룩하신 결과로 그리스도는 높은 하늘의 지성소에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좌정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히브리서는 단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확립하고, 기독교 복음에서 배교하는 자들에게 경계하기 위하여, 목회적인 설교형태로 혹은 권면적인 논설(히13:22)의 형식으로 이미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의 신앙을 돈독케 하도록,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구약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속죄 제물로 이 세상에 오심을 밝힘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하도록 권면하며, 이 신앙의 본보기로 제시한 구약의 인물들이 소개됨으로서 변치 않는 신앙의 위대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교리부분의 서론(1:1-4:13)과 본론으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의 役事(히4:14-10:18), 그리고 성도의 믿음을 촉구하는 실천부분(10:19~13:25)으로 나룰 수 있습니다.

 

좀 더 상세히 논한다면, 본서의 상대자들은 주님의 제자들로부터 구원의 복음을 받아서(히2:3), 외부로부터 엄습해 오는 박해와 시련엔 고난을 감수하면서 싸워왔었습니다.(히10:32), 그러나 점차 그들을 인도하던 자들은 세상을 떠나게 되고, 내부에서 유대교의 교리적 공세에 동요가 야기되어,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한 펀으로는 밖에서 밀려오는 박해는 극심해져서 죽음의 한계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히2:15, 12:4)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고(히3:12), 타락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히10:26) 이런 정황에서 저자는 당사자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당시 유대교에서 가장 존경하던 天使나 모세나 선지자들보다도 우월하시며 절대적인 Messiah인 것을 논증하고, 더 나아가서 구약의 제사장에 비해서 완전하신 대제사장인 것을 밝히므로 배교자에게 경고를 주면서, 한편으로 신앙을 고수하여 어려운 시험을 극복하여 승리할 것을 권면과 격려를 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본문 중 1:3은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핵심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환언하면, 성자 그리스도는 神性의 존엄성이시고, 그 영광이 밖으로 비춰 가시는 광채란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본질이 도장을 찍은 듯 그대로 그리스도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신적 인격이 신적 役事를 하신다는 의미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다시 그 말씀으로 지으신 만물을 붙드신다는 것입니다.

 

‘붙드신다.’(φέρων)는 원래의 용어의 뜻은 ‘운반함’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광활한 우주를 운행하시고, 인간사의 제반사를 섭리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시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하신 최대의 사명은 십자가에서 속죄의 대업을 완성하신 것인데, 그리스도의 속죄는 구약이 제사장과는 다르게, 결정적인 동작인 단 한번으로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히9:28) 종래는 세상에 오셔서 가장 낮은 처지에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룩하신 그 결과로 그리스도는 높은 하늘의 지성소에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좌정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의 절대성을 강조한 본문 말씀의 뜻을 이상에서 언급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훈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는 기독자 생활의 중심이시며,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보다 우월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표이라는 말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과연 교회나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가 문제라고 사료됩니다.

 

현대교회는 세속도시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매스컴(Mass Communication)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농촌도 세속도시화한 지금의 세상입니다. 현대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생활환경, 사회심리학, 그리고 영적인 신앙이 서로 연결의 고리로 엉켜 있습니다. 도시의 생활환경은 인구, 산업시설 그리고 財貨의 집중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사회적 상황 요인이 개인의 행동· 생각· 느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 간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심리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사회심리학도 많은 문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둘려 쌓여서 기독자들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와 기독자에게 도전하는 그 첫째가 세속주의 사상입니다.인간의 냉철한 이성과 절대의존의 감정으로 수련해 오던 철학과 종교(신앙)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것이 도시의 세속화라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폐쇄적인 세계관과 초자연적인 거룩한 상징들을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속화는 인간의 관심을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돌리고, 신앙에 대해 냉소적으로 반응케 하며, 영화, 오락, 스포츠 같은 시민 종교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세속주의는 결국 심신장애, 범죄, 자살, 매춘, 마약, 알코올중독, 이혼, 실업, 파산, 빈곤, 도박, 과도한 경쟁의식, 비정상적인 입신출세 등의 사회병리현상을 낳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대도시인은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무관심은 교회와 기독자에 대한 실망감에서 오는 요인도 있지만, 그 근저엔 이런 세속사상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팽배한 세속사상 앞에서 기독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우월주의”를 외치면서 신앙의 절개를 지킬 자신이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그 둘째는 개인주의 사상입니다. 개인주의 사상은 국가나 사회공동체보다는 개인의 가치와 의미를 중요시하고 우선하는 사상과 생활태도입니다. 이 사상은 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가 되면서 전통적인 국가 사회나 교회 등의 권위의식에 대한 시민계급의 저항에서 비롯되어, 개인의 권리, 가치, 자유를 최고의 가치관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이 사회공동체 이익과 일치한다는 사고와 개인의 행복이 至上의 가치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근대초기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사회적 책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19C. 후반을 지나서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개인주의는 내면적, 고립적, 현실도피적인 경향이 深化되었고, 하물며 무정부주의적인 경향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도시인들의 사고는 개인주의가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개인주의 우월감 앞에서, 필자는 기독자들에게 교회신앙공동체의 의식과 그리스도의 우월주의로 극복할 자신이 있는지를 반문하고 싶습니다.

 

그 마지막 셋째는 배금주의 사상입니다. <표준 국어 대사전>(1999년 판)에 배금주의를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숭배하여 삶의 목적을 돈 모으기에 두는 경향이나 태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배금주의를 황금만능주의라고도 하고 물질주의라고도 합니다. 도시는 모든 산업과 재화가 집중된 곳이기에, 그래서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도시인들은 물질적 삶에 관심이 고조되어 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물질주의가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시가 생산과 부의 축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기독자들까지도 성공의 기준을 부의 소유와 함께 출세의 길이라는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소비중심, 쾌락중심, 물질중심의 배금주의적인 문화 속에 빠져 있는 도시의 기독자들에게는 섬김과 나눔, 그리고 절제를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우월주의는 시대착오적인 공허한 것이라고 조소하는 교회 내부 및 기독자들까지도 심층에 자리 잡고 있다면, “나는 아니라!”고 외치는 자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 멀리보이는 하늘나라도 좋지만, “무조건 여기가 좋아오니”할 자도 없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필자가 세속도시 속에 존재하면서 살고 있는 교회와 기독자들이 진실로 세속주의, 개인주의, 및 배금주의 사상에서 超脫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는 심정입니다. 그 어떤 존재나 가치관도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앞에 굴복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유대주의에서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에로 돌아서라는 그의 간절한 심정의 언저리를 이해하면서, 지금 한국 땅에서 실존적인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을 찬양하면서 신앙의 전진이 있기를 바랍니다.

 

4). 결론: 본문의 핵심적인 요지는 구약의 그 어떤 인물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하물며 天使도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에 비교 할 수 없는 한갓 된 모형(ὑπόδειγμα)과 그림자(σκία)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히1:3, 히8:5 참조)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正體(Identity)를 재인식시키고, 유대교에서 개종한 성도들의 배교(背敎)를 방지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이 존귀하게 여기는 구약의 존재들보다 우월한 인격체임을 증명한 것이 히브리서인 것을 감명 깊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저자가 문제 제기와 그 명확한 해답을 속 시원하게 刻印시켜 준 것처럼, 이 말씀이 오늘 한국의 기독자들에게도 ‘아멘’으로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현대의 세속주의, 개인주의 및 배금주의 사상이 제 아무리 세력이 크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 앞에는 엄두도 못 내도록,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관심인 신앙으로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냄새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흩날리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끝.

'04. 신약설교마당(135)'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 근심이여 안녕!  (0) 2025.03.26
59. 종과 사도  (1) 2025.03.17
57. 삶으로 드리는 예배  (0) 2025.03.10
56. 사울의 막다른 골목  (1) 2025.03.09
55. ​예수의 흔적(痕迹)  (0) 20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