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우리 몸은 성령의 殿입니다.
(본문: 고전 3:16-17, 6:19-20)
1). 서론: 성 삼위의 歷史를 보면,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는 성부시대
요, 그리스도의 33년의 재세기간을 성자시대라고 하며, 오순절 이후를 성령시대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God in us), 그래서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구성 요소로서, 몸과 영혼으로 되어 있는데, 몸이란 그릇에 영혼이 담겨져 있으면서, 우리 몸을 통제,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靈魂의 靈은 보다 깊은 정신작용 즉 하나님과 접촉하는 부분을 말하고, 魂은 일반 감각의 분야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인격성(personality)과 役事(Work)하심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인격성은 뜻, 생각, 지식, 말, 사랑 및 선의 요소를 가지시며,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는 구원(重生)과 그 이후에 따르는 성령의 聖潔한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라는 것입니다. 이 뜻을 분명히 밝혀 보면서, 우리 몸이 성령의 성전이면, 성령께서 계시는 우리들의 몸과 영혼이 聖潔한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①. 인간의 본성 구성-몸(body-σῶμα), 혼(soul-ϕυχή), 영(spirit-πνεῦμα)으로 나누는 삼분설이 있고, 몸(σῶμα), 영혼(πνεῦμα)으로 나누는 이분설이 있습니다. 삼분설(살전5:23, 히4:12) 은 헬라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초대교부들과 헬라교부들이 지지자들이었습니다. 이분설은 Augustine 이래 라틴교회에서 옹호하여 중세시대의 일반적인 견해이었습니다.
삼분설의 난점은 영(πνεῦμα)과 혼(ϕυχή)의 차이점이 문제이었습니다. ⑴. 혼은 동물적 생명이나 영은 이성적이며 불멸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역할입니다. 혼은 다른 동물과 같은 것으로 이해, 감정, 감각 등을 주관하고, 영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으로 이성, 의지, 및 양심을 관장한다는 것입니다. ⑵.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분적이나, 내용적으로는 삼분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혼이란 영에서 유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서의 관점은 위의 성서구절(삼분설)을 제외하고는 늘 이분법적이라는 것입니다. 창2:7에 하나님의 인간 창조 시에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soul-ϕυχή)이 되었다고 하며, 욥32:8엔 “사람의 속에 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영은 πνεῦμα(spirit)를 뜻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12:7엔 사람의 구성을 흙(몸)과 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⑶. 혼은 동물적인 생명, 영은 보다 높은 생명으로 분류되나, 사실인즉 후자(영)도 동물적인 생명을 뜻하기도 하며(전3:21,계16:3), 전자(혼)가 하나님께 적용되기도 합니다.(사42:1, 렘9:9, 암6:5, 히10:38) 이와 같이 두 낱말을 교대하면서 사용되는 곳이 많습니다. 사람의 구성을 ‘몸과 혼’으로(마6:25,1028), 혹은 ‘몸과 영으로(전10:7, 고전5:35) 밝히고, 사람의 죽음을 혼이 떠나는 것이라고(창35:18, 왕상17:21, 행15:26), 혹은 영이 떠나는 것이라고 합니다.(시31:5, 눅23:46, 행7:59)
성서에는 대체적으로 혼이 自我(ego)의 주체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내 혼이 하나님을 찬미하고(눅1:46), 내 혼이 범죄 하여(레4:2), 내 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고(신6:5, 10:12, 30:10), 내 혼의 결국(벧전1:9)은 곧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계6:9, 20:4)
⑷. 위와 같은 사정에서, 인간의 본성 구성이 이분법적이라는 것이 성서의 사상이라고 하겠습니다.(마6:25, 10:28, 고전2:14,15, 5:3, 7:34, 15:44, 46 등) 위와 같은 인간의 내적 자아(ego)인 영혼(soul)에 대한 2가지 표현에 있어서 靈은 보다 깊은 정신작용 즉 하나님과 접촉하는 부분을 말하고, 혼은 일반 감각의 분야를 가리킨다고 볼 때, 인간 본성의구성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다고 하겠습니다.
②. 성령론-⑴. 구약시대의 성령은 선지자, 제사장, 왕 등의 특수한 사람에게 役事하셨고, 또한 그 役事는 일시적이었습니다.(삼상16:14, 시51:11)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다락방 강화를 통해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으며(요14:16-17, 26, 15:26, 16:7-8, 13), 성령은 모든 믿는 자에게(오순절 성령강림) 차별이 없이 오셨으며(행 2:1-4, 2:17), 한번 오시므로, 영원히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요14:16)
⑵. 삼위일체 중에 한분이신 성령은 인격성(personality)과 役事(Work)하심에 대한 설명으로 어떤 분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성을 가지신 성령은 전지(고전2:10), 편재(요14:17), 전능(슥4:6), 등의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시고, 동시에 성령의 人格性은 뜻(고전12:11), 생각(롬8:27), 지식(고전2:10), 말(고전2:13), 사랑(롬15:30), 선(느9:20), 등의 인격적인 요소를 가지셨습니다.
성령의 役事하시는 것은 우리 몸 안에 거주하시며(요14:17), 가르치시며(요14:26), 증거 하시며(요15:26), 확신 시키시며(요16:8), 인도하시며(요16:13), 감동 시키시며(벧후1:21), 말씀하시며(행8:29), 부르시며(행13:2), 보내시며(행13:4), 금하시며(행16:6), 중재하시는(롬8:26) 등을 役事하십니다.
결론적으로, 性靈의 役事는 구약시대는 태초에 천지 창조(창1:2)와 하나님의 특정한 종들과 같이 역사하셨으며(출31:3, 삿3:10, 겔2:2), 또한 성자의 지상 생애에 있어서, 탄생 때부터 부활 승천까지를 도우셨습니다.(눅1:35, 4:18, 히9:14, 롬8:11 등)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순절 이후 모든 신자에게 하신 역사일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거듭나는 구원(重生)과 그 이후에 따르는 성령의 생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성령의 세례(막1:8, 고전12:13), 인침(엡1:13), 내재(요16:7), 등으로 표시되고, 후자는 성령이 충만(엡5:18), 동행(갈5:16-17), 열매(갈5:22)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重生과 聖潔인데, 중생은 믿는 순간에 회개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얻는 것이며, 한번 받음으로 영원히 받으며, 성결은 계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계속적으로 진보하며 죽음의 날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성 삼위 역사에 관련시켜 볼 때, 구약시대를 성부시대(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는 시대), 그리스도 재세기간을 성자시대(인간과 함께 계시는 시대), 오순절 이후를 성령시대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God in us), 그래서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③. 고전3:16-17- “하나님의 성전”-성전 안의 성소를 말하는 것이며, 성도들은 거룩한 것과 모든 성도들은 하나인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기독자의 성전은 하나님의 성령 자신(Spirit of God Himself)께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몸 안에 거하는 <성령의 전>인데, 고린도교회의 분쟁은 성령의 전을 더럽히는 것이 되며, <더럽히면>(φθείρω)의 뜻은 ‘부패한다.’와 ‘파괴한다.’의 의미로, 정조 잃은 여자의 망신을 가리키는 뜻도 있습니다.
④. 고전6:19- “너희 몸은.......성령의 전-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고, 지금 우리 안에 계십니다.(요14:16-17)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성령의 전을 창기와 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우리 몸의 주인이신 성령의 뜻대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⑤.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속죄의 관념을 표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보혈로 우리를 사서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는 동시에 죄에서 해방을 주셨다는 것입니다.(노예해방)
3). 본론(Context): 본문 고전3:16-17과 6:19-20의 말씀은 고린도교회의 분쟁과 음행의 연고로 바울의 특별한 권고의 말씀입니다. 몸은 몸인데 그냥 평범한 몸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령을 받은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거듭나고 성령을 받으셨다면, 그 성령께서 우리들 몸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몸은 일반 세상 사람들의 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소중하고 더 값있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세상의 사람들보다 더 값있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의 본성구성이 <몸과 영혼>으로 되었으며, 몸은 단지 영혼의 뜻을 따르며 영혼의 통제와 조정 하에 놓여있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 몸 안에 <성령의 전>있기에 영혼의 지시를 잘 받들어야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다시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내적 자아(ego)인 영혼(soul)에 대한 2가지 표현에 있어서, 靈은 보다 깊은 정신작용 즉 하나님과 접촉하는 부분을 말하고, 魂은 일반 감각의 분야를 가리킨다고 볼 때, 인간 본성의 구성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혼의 주체세력은 聖靈의 人格性과 그의 하시는 役事입니다.
성령은 전지(고전2:10), 전능(슥4:6)하시고, 편재(요14:17)하신 신적 屬性을 가지고 계시며, 동시에 성령의 人格性은 뜻(고전12:11), 생각(롬8:27), 지식(고전2:10), 말(고전2:13), 사랑(롬15:30), 善(느9:20), 등의 인격적인 요소를 가지셨습니다. 성령의 役事하시는 것은 우리 몸 안에 거주하시며(요14:17), 가르치시며(요14:26), 증거 하시며(요15:26), 확신 시키시며(요16:8), 인도하시며(요16:13), 감동 시키시며(벧후1:21), 말씀하시며(행8:29), 부르시며(행13:2), 보내시며(행13:4), 금하시며(행16:6), 중재하시는(롬8:26) 등을 役事하십니다. 환언하면, 믿음으로 거듭나는 구원(重生)과 그 이후에 따르는 성령의 聖潔한 생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로 하여금 重生케 하신 성령께서는 세례(막1:8, 고전12:13), 인침(엡1:13), 내재(요16:7), 등으로 표시되고, 성령의 삶은 성령 충만(엡5:18), 동행(갈5:16-17), 열매(갈5:22)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크신 역사는 重生과 聖潔인데, 중생은 믿는 순간에 회개를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얻는 것이며, 한번 받음으로 영원히 받으며, 성결은 계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계속적으로 진보하며 죽음의 날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 이러한 성령께서 우리 몸 안에 <성령의 전>으로써 계시는데,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하면 성결한 삶을 살수가 있겠습니까.본문 3:19절을 다시 보십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몸을 자기의 것처럼 함부로 대하거나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철저한 자기 관리와 거룩한 언행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라는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필연코 성도(聖徒)의 본분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유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항상 각자의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기의 몸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의 몸을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의 몸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몸은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기 때문에 몸을 훼손시키는 것은 불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효경”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몸의 모든 것, 심지어 머리털과 피부까지도 다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훼손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시절, 온 나라에 '단발령'이 내렸을 때, 차라리 죽을 지언 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우리는 자기의 몸에 해를 끼치는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으로 계시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 3:16절-17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과 몸을 더럽히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그런고로 그 성전의 주인인 하나님으로부터 몸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자들은 묵중한 성도의 값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귀한 주님의 보혈의 값을 지불하고 죄의 노예에서 풀려난 우리들입니다. 聖徒라는 뜻은 ‘거룩한 무리’라는 말이요, ‘거룩함’이라는 말은 ‘구별되었다.’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몸과 삶은 구별된 성스러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몸이 그토록 귀하고 소중하다면,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분명해 졌습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절) 바울은 우리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 마음대로 살지 말고, 우리 생각, 우리 계획, 우리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먼저 우리의 몸과 영혼을 건강하고 거룩하게 잘 관리하면서 살아갑시다.
4). 결론: 우리 몸엔 성령의 전이 거한다는 것은 인간의 내적 자아(ego)인 영혼(soul)에 대한 2가지 표현에 있어서, 靈은 보다 깊은 정신작용 즉 하나님과 접촉하는 부분을 말하고, 魂은 일반 감각의 분야를 가리킨다고 볼 때, 인간 본성의 구성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영혼의 주체세력은 聖靈의 人格性과 그의 하시는 役事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격성은 知性과 感情과 意志를 가지셨으며, 성령의 역사는 믿음으로 新生케 하는 重生과 그 이후에 따르는 성령의 순결한 생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런 인격성과 우리로 하여금 중생케 하고, 지속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게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몸 안에 <성령의 전>으로써 계시는데,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하면 성결한 삶을 살수가 있겠느냐가 큰 문제로 대두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몸을 자기의 것처럼 함부로 대하거나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철저한 자기 관리와 거룩한 언행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필연코 성도(聖徒)의 본분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유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기의 몸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항상 각자의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성전의 主人인 하나님으로부터 몸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자들은 묵중한 성도의 값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토록 고귀한 주님의 보혈의 값을 지불하고 죄의 노예에서 풀려난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聖徒라는 뜻은 ‘거룩한 무리’라는 말이요, ‘거룩함’이라는 말은 ‘구별되었다.’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몸은 구별된 성스러운 몸인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절)고, 바울은 우리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 마음대로 살지 말고, 우리 생각, 우리 계획, 우리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먼저 우리의 몸과 영혼을 건강하고 거룩하게 잘 관리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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