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9. 부자 청년의 고민

solomong 2024. 12. 12. 10:24

19. 부자 청년의 고민

(본문: 마19:16-30, 막10:17-31, 눅18:18-30)

 

1). 서론: 일본이 낳은 위대한 신학자 내촌감삼(內村鑑三)은 돈에 대하여 말하기를,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으며, 책은 살 수 있지만 두뇌는 살 수 없고, 약은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다.”고했습니다. 인생과 물질이 미치는 힘의 한계점을 말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2:16-21.에 부자 농부가 소출이 풍성하여 곳간을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고, 주연을 베풀며 향락에 젖어들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찾아가시면 그 모든 소유는 다 허무한 것이 아니냐!’ 는 비유의 말씀과 같은 뜻이라고 봅니다.

 

또한 야고보서 4:13-17에, 사업에 성공하여 부자가 되리라고 허탄한 생각을 경고한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생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 유물주의에 집착함이 얼마나 어리석음인가를 교훈하는 말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부자 청년은 자기가 소유한 물질, 율법 준수 및 명예에 만족하지 못해서 영생의 도리를 추구한 것은 다행이나, 종내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공적인 결단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 본론(Text): ①.어떤 사람-마태복음서엔 부자였고, 청년이었으며(19:22), 누가복음서에 의하면 관원이었다고 합니다.(18:18) 산헤드린 공회원인지, 지방관원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만, 그는 30세가 갓 지난 젊음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적인 행복의 조건을 구비한 사람이었으나, 그가 살아 온 삶의 좋은 여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생의 길을 주님께 질문한 것은 장한일이라고 여겨집니다.②.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이 청년이 생각하는 선(善)의 개념은 유대 율법주의적인 외적 행위가 규율에 부합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의미하신 영생의 도리는 ‘무엇을 행함(by doing anything)이 아니라, 어떤 존재의 사람이 되어 있느냐(by being something)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to have(소유)도 아니요, to do(행위)도 아니라, to be(존재)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③. 영생(ζωἡ αἰώνιος-조-에 아이오-니오스=영원한 생명)-예수님께서 “생명에 들어가려면”(마19:17)라고 대답하신 것 같은 의미입니다. 영생은 시간의 영속이란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는, 하나님께 속한 것, 즉 하나님의 품성 같은” 뜻을 말합니다.

 

④.온전함(τέλειος)=시간적으로 끝을 말하고(마24:6), 내용적으로 충만을 말하고(고전14:20), 동작 면으로는 완성을 말합니다.(약1:4) 궁극적으로 판정하여 인간이 하나님 같이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온전함을 향해 노력 할 수는 있습니다. 자기의 결함을 느끼면서 온전함을 향해 달리는 끝없이 참신한 노력인 것입니다.(빌3:12) 마가복음 10:21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는 것은, “한 가지 남은 것”라는 뜻입니다.

 

⑤. 슬픈 기색을 띠고(막1022)=부자 청년의 얼굴색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이냐, 재물이냐(마6:24)는 선택에 있어서 후자를 택했고, 그 결과는 마음의 근심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면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얻었을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질문한 사람은 30세가 갓 넘은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으며, 젊은 사람이 재물도 많은 부자였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서엔 관리(官吏)였다고 하니, 억세게 재수가 좋은 사나이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인간적인 행복의 조건을 거의 구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청년이기에 미래에 대한 꿈과 이상(理想)에 젖으면서, 재력과 권력으로 자신의 포부를 실현 시키기에 안성맞춤 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영생의 도리를 물었다는 것은 주어진 여건이 자신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도 이 정도의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엔 퍽 드물 것 같습니다. 청춘도, 재물도, 권력도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 못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보담도 영원한 가치에 대한 동경과 사모하는 마음을 소유한 인생관의 주인공이 되기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자들 중엔 거개가 이 부자 청년이 갖춘 3가지 조건 중, 그 하나도 아니! 전부를 결한 분들이 대 다수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젊은 청춘처럼 ‘건강’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하면, 사업에 실패하거나, 물려받은 유산도 없이 허기진 인생의 비탈길을 오르는 가난한 군상들이 ‘물질적 축복’을 염원하는 우리들의 실존입니다.

 

또한 조금 형편이 좋아서 ‘사회적, 정치적 지위’에 있거나, 또한 이를 구하기 위해서 지금 노력하는 자들도 지극히 소수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부자 청년처럼 3가지 행복의 조건을 구비했거나, 이를 추구하고 있는 자이거나, 아예 이런 여건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자이거나 간에, 기독자의 기본자세는 인간적인 이런 행복의 조건은 잠정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의 여건이라는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적인 것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주님께서는 부자청년의 영생에 대한 질의에 대한 답변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만,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이 젊은이가 어릴 때부터 지켰다고 답하리라는 것을 예견하셨다고 봅니다. 이 부자청년이 유대인의 관례에 따라서 6세부터 율법을 공부하고 준수했다는 것은 피상적인 범위에서였고, 율법의 참 뜻을 안 것도 아니며, 따라서 심정적으로 준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는 이미 간파(看破)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시각(視覺)은 물질의 소유(to have)도, 율법의 규율을 행함(to do) 보다도, 어떤 인간 존재(to be) 자체되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자청년에게 말씀하시기를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말한다면, 형식적인 율법준수의 도덕률이나, 자기중심의 선의지(善意志)에서 탈출(脫出)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 중엔 자기 체면유지의 아집에 사로잡힌 자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 스스로가 반성을 요하는 문제라고 사료됩니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나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그 한 가지 부족은 총체적인 결격사유(缺格事由)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건성으로 거지에게 돈 한 푼 던져 주는 식의 구제보담도, 오히려 “형제여! 지금은 가진 돈이 없어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더 값진 선물이란 것입니다. 주님은 이 부자 청년의 심리상태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결한 것을 꿰뚫고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판단하신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율법보담도 재물인 것을 아셨습니다, 물론 그에게 많은 부족한 것이 있었겠으나, 그의 재물은 그에게는 우상이었고, 영생의 길을 가로 막는 치명적인 상처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회의도 불안도 이로부터 나왔고, 결국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한 원인도 재물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기독신자 저마다의 한 가지 부족이 다 있을 것입니다. 이 한 가지 부족한 죄를 제거하지 못하여 영생의 거침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는 충고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부자청년의 고투는 시작되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대 결단을 해야 하는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부자청년은 ‘하나님이냐 재물이냐’는 선택에서 재물에 더 집착했기에 근심하고 고민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택하였다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얻었을 것입니다. 12C. 프랑스 리온(Lyons)도시에 로마 가톨릭 신자인 왈도 베드로(Peter of Waldo, 1170~1217) 라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명하신 이 말씀을 읽고서, 감격하여 문자적으로 모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리온(Lyons)의 성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 부자청년은 근심하면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치 못한 것은 아직 회개 할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거개가 같은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주님보다 한 가지를 더 사랑함으로써, 온전한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우선으로 사랑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 앞에서 주님의 것, 신앙을 위해서 대 결단을 하면서 살아가는 기독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자신이 스스로가 부족함이 조금도 없다고 하는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행복의 조건을 거의 가진 자였습니다. 앞길이 양양한 꿈 많은 청년이었으며, 돈도 많은 부자이었고, 권력도 있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미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만족치 않고 영생도리에 대한 지대한 관심도 많았으며, 어려서부터 유대 율법을 지킨 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중심에 감추어져 있는 우상을 지적했습니다. 그 우상은 그의 많은 재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명했지만, 재물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근심하며 고민 속으로 몰입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우상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어 나를 호령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네가 그렇게 사랑하고 귀중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내려놓아라. 너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으라.”고 하시는 음성을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 우상을 깨트려 버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