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온의 찬가
(본문: 시 48:1~14)
1). 서론: 구약 성경에서만 150번 넘게 사용된 <시온>이란 낱말은 “고봉, 정상”이란 어휘의 뜻으로, 실제적인 지역을 가리키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원래 시온은 예루살렘의 골짜기와 중앙의 골짜기가 교차하는 부근, 예루살렘의 남쪽 언덕에 있던 옛 여부스족 요새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그 가리키는 범위가 넓어져, 다윗이 이 요새를 점령한 뒤 다윗의 성이라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요새의 북쪽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후, 시온은 성전과 그 주변 지역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비유적으로 이스라엘 신앙의 수도로서 예루살렘 전체나 그곳의 주민을 의미하게 되었고, 후에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 또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비유하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시온은 때때로 유다의 도시들을 가리키기도 했으며, 새로운 시대에는 하나님의 도시를 언급할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그리고 그곳의 주민들은 시온의 딸과 아들과 자손들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전통 안에서 시온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거처, 그분의 통치, 그분의 왕국, 정의와 의로움과 평화의 영역, 안전과 보호, 구원 등을 떠올리게 하는 핵심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이 눈물을 흘린 곳도 하나님을 배신한 왕들의 부패한 권력들이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곳도 이 도성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쓰인 시온은 그리스도와 속죄된 이들이 머무는 천상의 예루살렘, 하나님 교회 또는 메시아의 통치권이 행사되는 곳 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밖에 시온이라는 말은 주로 메시아적이며 종말론적인 실현을 예고한 구약 성경을 인용한 내용들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뜻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시온은 하나님께서 자기 거처로 삼으신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겠습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시편 46편부터 하나님의 왕권을 노래합니다만, 본문 시는 하나님의 왕도 시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기는 1. 46편처럼 산혜립이 예루살렘을 공략했을 때, 2. 여호사밧 때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 3. 역대하 20장 내용 등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 내용은 1.큰 왕도 시온(1~8), 2. 시온의 노래 (9~14)입니다.
3). 본론(Context): 본문의 시는 이스라엘의 “서울(首都)의 찬가”입니다. 수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생활의 중심지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평화의 기초”라고 하지만, 이 도성처럼 전쟁과 수난으로 거듭되는 역사를 겪은 곳도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팔레스타인 7일 전쟁 전까지는 이슬람 신도들의 성지의 하나로 순례자의 찬송과 기도로 메워진 곳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늘날도 그 통곡의 벽을 보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영혼을 갈기갈기 찢기게 한 눈물과 한숨의 수도요, 원한과 복수의 도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선조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관계한 최초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창 14:18 이하) 만민을 위해 축복받은 이곳,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모리아 산이 바로 이 예루살렘인데, 지금도 예루살렘 금자로 판각된 코란경으로 “모스크”에 들어 가보면, 그 아들 이삭을 잡아드리려던 희생의 돌을 볼 수 있는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가 “여호와 이례”(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쓸 것을 준비하신다.)라는 말대로 닦여진 곳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로 되기 시작한 다윗의 역사까지는 이방인들에 의하여 지켜진 동성이요. 또한 여부스 사람들의 신이 섬겨지던 우상의 장소이었습니다. 다윗이 이 도성을 여부스족으로부터 빼앗아 “시온”이란 이름으로 고쳐 부르고 여기를 하나님 백성들의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 만들어, 구약의 거의 모든 기록은 이 도시와 관련된 역사를 보여 주며, 예언자들이 눈물을 흘린 곳도 하나님을 배신한 왕들의 부패한 권력들이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곳도 이 도성이었습니다.
역사의 슬픈 일, 기쁜 일이 이 도성의 희비애락이었습니다. 이 도성이 수치를 당하면 그 민족이 수치를 당했다는 사실은 애가서 시인이 울며 부르짖은 노래입니다. “아, 그렇듯 붐비던 도성이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아, 시온이 이렇게도 처량하게 되다니, 여호와께 거슬리기만 하던 시온, 정녕 죄를 지었구나, 수도 시온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애가 1:1, 4~5) 예루살렘의 슬픔과 기쁨은 파도처럼 역사의 해변에 출렁이고 있습니다.
영고성쇠 하는 인간의 권력과 영화가 갈매기처럼 파도를 타고 날다가 가버리고, 역사의 모순과 인간의 원한이 속이 빈 조개의 껍데기처럼 무상한 해변에서 뒹굴고 있는 곳이 이 아름다운 도성 시온이 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섬길 산 신이 계시며 만민들이 쳐다볼 구원의 횃불이 문화의 산봉우리에 높이 들린 곳도 이 예루살렘이요 인간이 그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할렐루야 노래”를 부를 곳도 이 시온입니다.
새 사회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한 혁명의 깃발을 휘날린 곳도 이 도성이요, 인간의 간악하고 무자비한 권력욕과 지배욕이 성곽처럼 버티고 있는 곳도 이 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구약성서 속에는 예루살렘에 대한 기쁜 노래 슬픈 노래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죽음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여 모든 인간에 의해서 영광의 별빛을 쳐다보게 한 곳도 이 시온입니다. 우리는 본문이 그러한 애환의 노래 한편을 알려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고통과 비극의 노래가 아니고 기쁨과 힘,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시온의 찬가”입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찬가”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종이 울리네/꽃이 피네, 아름다운 서울에서/서울에서 살렵니다.” 이 노래를 “시온”으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온의 찬가”는 단순히 도성이 아름다워 살기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성의 이름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이 도성이 만민의 피난처와 같이 인간과 보호를 약속해 줌도 전능의 하나님 때문이고, 이 성이 어떤 적군이 치고 들어와도 흔들릴 수 없이 튼튼히 설 수 있음도 하나님의 보호 때문이요, 이 예루살렘의 자랑은 여기 거하시는 주의 이름이요. 이 성을 만백성으로 인하여 쳐다보게 함은 하나님의 정의를 보여 주는 도성이기 때문이고, 이 성에 기쁜 노래가 넘치고 즐거운 소리가 들림도 하나님이 이 도성에서 공정한 판단을 하기 때문이고, 여기 찬란한 자랑은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도성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있지 못함은, 여기 왕궁이 있기 때문도 아니고 여기 난공불락의 성곽이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거룩한 제의와 축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당신의 전에서 당신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9절) 라는 말은 이 성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 때에 하나님이 그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돌보아 주신 사랑을 기억할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이름을 찬양하는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10절) 여기서 예배를 드릴 때 가지는 행진은, 그 성전 안에서만의 행진이 아니고 그들의 일생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인도 하심을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이 城의 아름다움, 견고함과 안전, 여기서 누리는 즐거움과 기쁨, 이 모두는 하나님이 이 도성과 더불어 같이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의 시인은 이 도성이 적군의 손에서 구원받은 어떤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4절 이하는 이 도성을 침입해 원수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지만, 이 성을 멀리서 보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들어오지 못하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 도성에서 느낀 그 공포가 심하여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처럼” 비명을 질렀고 그들의 흐트러짐이 마치 “동풍에 밀려가는 다시스의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도성 그 자체의 위엄보다도 이 성에 건재하고 날카로운 검처럼 휘두르는“하나님의 정의”(10절)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 나라의 수도의 미와 견고는 물리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온'은 좁게는 예루살렘과 그 거민, 및 구약 선민 이스라엘을 가리키나, 넓게는 신약 시대의 영적 선민인 성도들과 교회 더 나아가 장차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산 시온의 찬가'인 본문 시는 궁극에는 전 우주적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노래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시온을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1), '큰 왕의 성'(2), '터가 높고 아름다운 곳'(2) 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시온의 거룩함과 견고함 및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시온 가운데 임재하여 계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또 시인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며(9), '주의 이름(10)'. '주의 판단(11)'을 인하여 시온이 기뻐하며 찬송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상기와 같이 풀이한 것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시온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소로서의 시온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계시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대적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2. 둘째로, 이 시온에 기쁨을 공급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시온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계속하여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3. 셋째로,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시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평안을 누리는 장소라는 것을 고려해 보건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시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보호자요, 승리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4. 넷째로, 이스라엘은 위와 같은 사실임을 확신하면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시온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로서의 시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상에 오셔서 거하시다가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서 임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임재하심은 물론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요 14:20)
이것을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교회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또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의 시온이듯이 그 안에 있는 교회도 또한 시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들의 사역으로 인하여 안식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 있는 교회에 임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쉬심 곧 안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에 기쁨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교회 위에 계시면서 교회를 이끄시며 보호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교회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의 궁극적인 피난처요, 시온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셔서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성자를 통해서 교회를 탄생케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교회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교회의 궁극적인 시온이요, 승리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전 15:55~58)
교회는 이런 승리를 믿고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교회에 늘 임재하여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떠나시지도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보혈을 흘리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능력으로 당신의 몸인 교회를 끊임없이 생성시켜 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을 영원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기뻐하는 자가 우리 성도들입니다.
결국 택함을 받은 백성들의 기쁨과 축복, 나아가 삶의 근원이 여호와이심을 믿는 신앙 고백의 반영인 것입니다. 실로 시온이 상징하는바 교회와 성도의 거룩함과 견고함, 아름다움 및 영원함은 오직 그 가운데 임재하여 계셔서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와 우리의 삶 전체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기뻐하고 <시온의 찬가>를 부르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시온은 “고봉, 정상”이란 어휘의 뜻으로, 옛 여부스족의 요새이었으나, 다윗이 점령한 뒤 다윗성이라고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비유적으로는 이스라엘 신앙의 수도로써 예루살렘 전체나 그곳의 주민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신앙의 전통 안에서 시온이란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거처, 통치, 왕국, 정의와 평화의 영역, 안전과 보호, 구원 등을 떠오르게 하는 핵심적인 상징이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시온은 하나님의 거처로 삼으신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 시의 내용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시온)의 찬가라고 하겠습니다. 예언자들이 눈물을 흘린 곳도, 하나님을 배신한 왕들의 부패한 곳도,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곳도 이 도성이었습니다. 역사의 슬픈 일, 기쁜 일, 희비애락과 영고성쇠의 변화무쌍했던 시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도성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이 도성이 만민의 피난처와 같이 보호를 받은 것도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시온을 좁게는 예루살렘과 그 거민 및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을 가리키나, 넓게는 신약 시대의 영적 선민인 성도들과 교회, 더 나아가서 장차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 시온의 찬가인 본문 시는 궁극에는 전 우주적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시온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로서의 시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상의 인간들을 위한 속죄의 대업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성령을 통해서 임재하게 되었습니다. (요 14:20)
이것을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라고 교회와 연합되어 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또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의 시온이듯이 그 안에 있는 교회도 또한 시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교회 위에 계시면서 교회를 이끄시며 보호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교회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의 궁극적인 피난처가 되시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불화를 화해하여 교회를 탄생케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교회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교회의 궁극적인 시온이요, 승리케 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를 믿는 교회 성도들은 기쁨의 찬양을 올리는 자들입니다. (고전 15:55~58)
결국 택함을 받은 백성들의 기쁨과 축복, 나아가 삶의 근원이 여호와이심을 믿는 신앙 고백의 반영인 것입니다. 실로 시온이 상징하는바 교회와 성도의 거룩함과 견고함, 아름다움 및 영원함은 오직 그 가운데 임재하여 계셔서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와 우리의 삶 전체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기뻐하고 <시온의 찬가>를 부르는 자들이 더욱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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