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59. ​느보산의 모세

solomong 2026. 1. 8. 11:14

 

59. ​느보산의 모세

(본문: 신 34:1~8)

 

1). 서론: 다음 주 8월 15일은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굴종의 생활을 청산하고 자유와 해방을 맞이한 75주년이 되는 光復節입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온갖 수모와 간난, 그리고 피 흘리며 옥중에서 순국한 분들도 많았고, 일군과 전투하다가 죽은 영혼도 무수했습니다. 개별적으로는 독립운동 투쟁을 하다가 일신은 물론이고, 가족 전체에 아픔을 안겨준 예는 허다합니다. 정신대에 끌려가 일생을 한 많은 세월을 연명한 우리 동포도 많습니다. 같은 배달겨레 한민족 정기를 이어받은 많은 백성 중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 목숨까지 저버린 애국지사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일제 앞잡이가 된 매국노도 있었습니다.

 

그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운동’을 통해서 발표된 친일파 708명을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해방 뒤 기득권 속에서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교육 예술 종교 분야에서 한결같이(일본제국주의 시대와 해방 이후) 존경을 받으며 지낸 분들도 많았습니다. 반면에 해방과 독립 후에도 애국지사는 그들의 힘에 밀려 인생의 여전한 뒤안길에서 한 생을 살다가 간 분들도 많았고, 비명에 간 분도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역사의 역설(Irony)인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의 모세의 경우는 위와 같은 사유의 차원은 다를지라도, <有終의 美인 행복한 결말>을 보지 못한 것이 애석해 보입니다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본문과 연관된 말씀들을 통해서 간직할 교훈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2). 본문의 이해(Text):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은 사유>- ①. 모세 偉人의 부정적 측면(격렬한 분노의 정서와 예민한 감정의 소유자)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인 모세의 인간적인 정서 감정의 약점입니다. 때때로 통제되지 못하고 퉁겨져 발산되는 그의 분노였습니다. ⑴.그는 분김에 애급 사람을 죽였으나, 그 義憤이 이스라엘의 해방 열기를 점화시키지 못하고 미디안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출 2:11-15) 그 의분은 아직 하나님께서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폭력행사였다고 하겠습니다.

 

⑵. 또한 하나님의 召命을 받은 후에도, 그는 종종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보고, 격노하여 하나님께서 써주신 언약의 돌 판을 산 아래로 던져 산산조각 낸 것도 모세이었습니다. (출 32:15-19) 그는 하나님께도 불경에 가까울 정도로 화를 통제하기 힘들었던 위인이었습니다.

 

⑶.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것은 <므리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 반석을 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첫 번째 므리바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게 한 것처럼(출 17:5-6), 반석을 2번 치는 행동을 했습니다. (민20:11) 여기서 지팡이로 반석을 2번 친 것은 모세가 혈기를 드러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많이 받고도 계속하여 투덜대고 불평하고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인지라,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 그도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데 자기가 화가 난다고 하여 분노를 발하여, 그 모습을 본 민중들은 하나님께서 분노를 발한 것 같이 오해를 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는데, 모세가 분노를 발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모세가 마치 자기가 반석에서 물을 내어 기적을 일으키는 것 같이 행동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을 내게 하시는 것인데, 마치 자기들의 능력으로 내는 것처럼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모세가 화를 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고 하겠습니다. (민20: 8-13)

②. 모세 偉人의 긍정적 측면(영도자, 제사장, 선지자, 입법자 및 노예해방의 영웅 등의 인물 됨됨이로, 후세 존경이 지나쳐 우상숭배로 전락할 가능성) - 모세의 인간 됨됨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영웅적인 대접이 지나쳐 <우상화>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느보산에서 삶을 끝내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본문 34장 7절에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기력>이란 히브리 원어의 뜻은 ‘생기’, ‘슬기’ 및 ‘생명력’이란 것입니다. 그의 정신과 육체가 건강했음에도 더는 민중의 지도자 사명을 종식 시키신 하나님의 저의도 장차 민중의 <우상화>를 일찍이 차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 백성들의 반응도 필자의 논지를 돕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30일간 슬피 울었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34:8)

 

또한 본문 34:5-6에 의하면,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죽었고,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어느 골짜기에 장사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묘지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1,500년쯤 후에, 신약성서 유다서의 기자는 이 일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하나님께서 천사 장 미가엘을 보내어 모세의 시체를 인간이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 장사지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 1:9). 그 이유는 모세의 묘지가 사람들의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모세는 하나님을 빗대는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의 힘으로 좌우되는 우상을 신으로 만들면, 결국 그 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자들에 의해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가 박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 즉 모든 것을 태워버리시는 불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태워버리시는 분이시란 것을 힘주어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4:15-24)

 

3). 본론(Context): 모세는 제사장, 민족의 지도자, 선지자, 입법자 및 유대 민족 해방의 영웅이었습니다. 모세 시대뿐만 아니라, 유대민족 역사에서 그의 곁에 견주어 세울 인물이 없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 복지를 내려다보면서 느보산에서 120년의 삶을 마감합니다. 우리들의 좁은 생각으로는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질문하기를, “왜지요?” 하게 됩니다. 하지만, 출애굽 사건에서 므리바와 기타 연고로 그렇게 보고 싶고, 가서 보고 싶어 하던 가나안 복지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 두고,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승계하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느보산에서 120세의 일기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 가라사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신 1:37)에,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소서." 모세가 이렇게 간구할 때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다, 이 일로 다시 말하지 말라"(신 3:26)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매정하게 들려 옵니다. 모세는 40년간 동족의 출애굽을 위해 오매 간 잊지 않고,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모세에게는 한 많은 사연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그의 인간적인 정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발산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Over Action) 첫 번째로, 그는 조국을 생각하는 의분이었을지라도 애급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었습니다. (출 2:11-12) 그 의분은 하나님으로부터 召命을 받기 전에 한갓 된 인간적인 폭력행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으로부터 召命을 받은 후에도,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보고, 격노하여 하나님께서 써주신 언약의 돌 판을 산 아래로 던져 산산조각을 내었습니다. (출 32:15-19) 그는 하나님께도 불경에 가까울 정도로 화를 통제하지 못하는 위인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것은 <므리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 반석을 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첫 번째 므리바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게 한 것처럼(출17:5-6), 반석을 2번 치는 행동을 했습니다. (민20:11) 여기서 지팡이로 반석을 2번 친 것은 모세가 혈기를 드러내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많이 받고도 계속하여 투덜대고 불평하고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진노하실 때, 그도 분노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데 자기가 화가 난다고 하여 분노를 발하여, 그 모습을 본 군중들은 하나님께서 분노를 발한 것처럼 오해를 사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는데, 모세가 분노를 발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모세가 마치 자기가 반석에서 물을 내어 기적을 일으키는 것 같이 행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을 내게 하시는 것인데, 마치 자기들의 능력으로 내는 것처럼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모세가 화를 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고 하겠습니다. (민20: 8-13)

 

이처럼 그의 과격한 성격의 정서 감정이 결정적인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도 공사 간 삶에서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공적 잘못이라도 성질(혈기)부리는 행위만은 자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또 한 가지 사유는 본문과 연관된 성서 말씀을 유추해 볼 때, 모세의 인간 됨됨이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영웅적인 대접이 지나쳐 <우상화>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느보산에서 삶을 끝내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본문 34장 7절에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신체가 건강했음에도 더는 민중의 지도자 사명을 종식 시키신 하나님의 저의도 장차 민중의 ‘우상화’를 일찍이 차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 백성들의 반응도 필자의 논지를 돕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30일간 슬피 울었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34:8)

 

또한 본문 34:5-6에 의하면,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죽었고,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어느 골짜기에 장사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묘지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1,500년쯤 후에 유다서의 기자는 이 일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천사 장 미가엘을 보내어 모세의 시체를 인간이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 장사지낸 것이라고 합니다. (유 1:9). 그 이유는 모세의 묘지가 사람들의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모세는 하나님을 빗대는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좌우되는 우상을 신으로 만들면, 결국 그 신의 마음대로 조종하는 자들에 의해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가 박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 즉 모든 것을 태워버리시는 불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태워버리시는 분이시란 것을 강조한 바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4:15-24)

 

진정 하나님의 솔직한 저의(底意)를 모세가 강조한 것은 "가나안 복지에 이스라엘이 정착할 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만들지 말라."(신 4:22~24)는 뜻이었고 경고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유목문화와 가나안의 이미 정착해서 농경문화를 이루고 사는 이방인의 생활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능가한 살기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모세는 제2기 광야 40년의 삶은 애급 바로 궁에서 당시 최고 학문을 공부한 사람이요, 어머니 '요게벳'에게서 배운 민족의식이 결국 살인할 정도의 성정과 혈기가 왕성한 '사람됨'을 아신 하나님이십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인물들의 일반적인 심리 현상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사람됨'의 과정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각각 50%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보통 어렵고 병약하고 가난하게 산 사람은 성공 뒤에, 초심으로 출발한 갸륵한 정신이 흐려져서 강하고 오만하고 잔인할 수 있는 확률이 강하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칼. 융(C. Jung)의 집단무의식 이론에서 유추해 보면, 성서를 통한 밑바닥에 흐르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찰해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집단무의식>(잠재된 객관적 정신, 보편적 감정)을 신학적 견지에서 살펴볼 때, 첫째는 지리적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생에서 고난을 경험했다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거주한 땅의 지리적인 조건들이 모두 고난의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동쪽은 광막한 무인지경 아라비아 사막이 연결되었고, 서쪽은 지중해, 남쪽은 유대 광야로 불모지대이고, 북쪽은 산악지대입니다. 그러하기에 기후는 고르지 못하고 1년 절반은 우기요 (10월~4월까지) 절반은 가뭄을 당하여 비 한 방울 구경할 수 없습니다.

농토가 넉넉지 못하니 농업에도 적당치 않고, 초원이 많지 못하여 목축업도 부적당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금, 은, 동, 철 등이 묻혀있는 곳도 아닙니다. 사철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도, 시내도 (요단강 외에는)별로 없고 우물 하나 갖는 것은 금광 찾아내는 것보다 더 힘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자체를 항상 위협하고 있다 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둘째는 역사적 이유입니다. 강대국 사이에 끼였기에, 이 땅에 있는 적은 나라들은 항상 그 이웃에 있는 강대국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의 역사적 비애와 고통도 인접한 나라, 중국, 러시아, 일본으로 말미암아 왔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조건 중, 하나인 것처럼, 사울 왕 때부터 서쪽 해안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블레셋' 나라와 교전을 몇 차례의 경험을 했습니다. 주전 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서 망했고, 주전 586년에는 신흥 국가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망하였고, 페르샤, 로마, 헬라 등의 식민지 생활을 하였습니다.

셋째는 히브리 문화의 성격이 종교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눈물 나는 신앙 투쟁의 역사요, 그들의 종교수난사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유목민 스타일에서 가나안의 정착된 농경문화로 살아야 했기에 농경문화의 신인 '바알우상'과 밀접한 관계이었습니다. 여기서 시련과 유혹이 많았습니다. 바벨론 포로 시대에 야훼 하나님이 무력하기에 이렇게 포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들은 조롱에 시달려야 했고, 이러한 신앙 투쟁은 그리스(헬라) 식민지 시대에 예루살렘성전을 '제우스' 신당으로 개조하여 제우스신을 경배하는 곳으로 만들었기에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모독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위에서 세 가지 악조건 속에 시달려 온 그들인지라, 절박하게 안정(安定)을 갈구하는 집단무의식이 이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야곱, 이삭의 위기 때는 비겁했고, 생존키 위해서는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창 20:2, 26:7)하거나, 야곱의 교활한 성격 등은 위기 때, 안정을 희구해서 한 정서임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민족의 영웅 모세가 만약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바알 숭배의 유혹을 받을 때, 이런 위기에서 차라리 영웅적인 지도자 모세를 섬기자고 백성들이 아우성치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고 봅니다.

 

맥아더가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 다스릴 때, 일본 천황을 전범 처리하지 않는 이유는, 패전국이지만 일본 백성들이 천황을 신으로 생각하고 모셨기에 백성을 달래기 위해서 전범 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모세가 거기에 살아 있었다면, 모세가 신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일신 야훼 하나님을 신앙하는 정체성(Identity)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시기하는 하나님이요, 제1계명과 제2계명을 특히 모세에게 신신당부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항상 잊지 말 것은 '내가 너희를 애급의 종살이 할 때, 구원해낸 너희 하나님인 것'을 항상 기억하란 말씀을 수없이 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무덤인 느보산을 아무도 모르게 하여 "오늘날까지 그 묘를 아는 자가 없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신 34:6). 혹시 히브리 백성이 모세 무덤이 있는 곳을 알면, 이장(移葬)을 해서라도 '모세 신당'으로 모실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사망 시에 30일간 슬피 운 것으로 보아(신 34:8), 능히 그를 신으로 모실 넉넉한 그들의 집단무의식이 그들의 맥박 속에 맥맥히 저류 해 왔다고 필자는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도 무시 못 할 위인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느보산에서 죽게 했던 그런 하나님이었습니다.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을 때의 나이가 120세였지만 그의 눈은 흐리지 않았습니다.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면 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아갈 지도자로서 충분조건임에도 여호수아에게 승계케 하고, 모세는 아주 가깝게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 땅을 두고서 한사코 느보산에서 죽게 한 사유는, 그만큼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신 신앙 고수와 우상숭배는 철저히 분쇄하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불러내어 안가겠다는 그를 억지로 그의 형 아론과 함께 보내어 천신만고 끝에 출애굽 하게 하시고, 마지막 가나안은 모세에게 있어서 마지막 승리의 월계관을 쓸 종점인데, 그 승리의 종점을 못 밟게 할 만큼 하나님은 엄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목숨을 건 하나님의 소명에 일생을 보낸 자로서, 영광은 전부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는 묘도 없이 절대 순종한 하나님의 진실한 종이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낳은 독실한 신앙자요, ‘일사 각오’(주기철 목사님의 개인 구호)의 정신으로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옥중에서 5년간 獄苦를 거친 후에 순교하신 鮮羊 주기철 목사님의 우상 숭배 반대에 대한 철저한 그의 기상이 생각납니다. 주 목사님 신앙의 특징은 강렬한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요, 십자가 구속 사건에 대한 인간의 감격, 그리고 신앙의 순결성입니다. 주님께 대한 신부(新婦)로서 순결, 정조가 그의 불가피한 순교에서 입증됩니다.

 

그 어른의 아호가 鮮羊(조선을 위해 제물로 드리는 희생의 양이 되겠다는 의미)대로 우상숭배 반대를 위한 조선의 희생양이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 신사가 '바알'이요, 아합이 일본 천황임을 대담하게 은유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감히 천황이란 말도 못 하던 시대에 주 목사는 일본 천황을 향해 소리친 (대 설교 전집에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은 임금이라도 할 말은 하였다.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불의의 혼인을 한 헤롯왕에 대하여 회개하라고 책망하였다. 생사여탈의 대권을 잡은 임금 앞에서 그 죄를 책망하는 세례요한도 일사 각오였고, 나단이나 존 낙스도 일사 각오했던 것이요, 루터도 일사 각오였다. 일사 각오 연후에 예언하는 것이요, 일사 각오 연후에 예언자의 권위가 서는 것이다. 여러분, 몰라서 말을 못 하십니까. 지금도 목사는 일사 각오 연후에 할 말을 하고, 목사의 권위, 예언자의 권위가 서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목사님은 체포되어 일본 순사가 기다리는 주일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 '나의 5종목의 기원'이란 제목에서,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2).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옵소서(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3). 노모와 처자와 교우들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4).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5).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라는 설교를 하시며 순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어른이 얼마나 우상 숭배에 대한 강렬한 반대의 지조를 가졌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를 금하신 하나님은 출애굽에서 모세에게 준 10. 계명을, 다시 한번 더 되풀이 하면서 신명기에서 강조한 것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간곡한 지상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자들에게는 그냥 두시지 않고, 처절하게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마음의 우상, 물질의 우상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며 '애지중지' 여기는 모든 것은 전부 우상 숭배인 것을 차제에 확실히 못 박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임금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해서, 임 향한 일편단심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육신'을 생각해 보잔 말입니다.

가나안 복지를 山頂에서 바라보면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120년의 삶을 마감한 모세 경우를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거울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40년간 바로의 궁전에서 훈련받고, 40년간 광야에서 연단 받고, 40년간 백성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 <느보산의 모세>의 기가 찬 애석한 종말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지의 그 사유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公憤, 義憤을 우리는 지금까지 정당화시켜 왔는데, 특히 모세의 <므리바 사건>을 포함해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서, 우리들의 공적 생활에서 정서 감정의 통제를 잘해야 하겠습니다.

 

복음과 교회 성장에 열을 올리는 우리 주의 종들은 진정 복음을 통한 주님의 구원을 전하는 것이 목적인지, 아니면 대형교회가 흠모의 대상이 되어 나도 큰 교회 만들어 이름을 내고, 영화를 누려보자는 명예심에서인지 우리가 자문자답해 봐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명예, 물욕>이 ‘우상화’ 될 가능성이 있기에, 선한 목회자 상을 가지고 투철한 소명감에서 일해야겠다는 새로운 각오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4). 결론: 모세의 위대성은 그의 인품이나 업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고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스라엘 민중을 신앙과 피로써 굳게 결속시키면서 그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결합도록 한데 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 대해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그들이 위험한 정황에 직면할 때마다, 자기 자신을 불태워 그 위험성에서 모면케 했던 것입니다. 그의 이 같은 열정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열광적인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었고, 또한 그들을 그의 지휘 밑에 강하게 단결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열심, 자기부정, 날카로운 판단, 그리고 하나님께 향한 굳센 헌신을 하면서, 그의 백성들을 감화시켜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마음이 약하지만, 모세의 성격은 대단히 급하고, 격렬한 연고로 평생에 꿈꾸던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놓고, 외로운 일생의 마지막 숨을 가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 백성 간의 중재자의 일꾼이었지만 씻을 수 없는 결정적인 <므리바 사건>은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의 혜안을 굳게 닫아버리게 하고, 장차 전개될 <모세 우상화> 위험성까지 깊이 생각하도록 하시어 모세의 삶을 느보산에서 그 종지부를 찍게 했던 것입니다.

 

자! 이와 같은 교훈이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경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사생활 속에서 아무리 그것이 정당하고 사리에 옳은 것일지라도 혈기 부리는 분노는 자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사회의 공적 사건이라도 公憤이나 義憤으로 야기된 행동을 이젠 더는 그 정당성을 용납할 수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주의 종들이 쉽게 유혹되기 쉬운 ‘명예심이나 물욕’에서 단연코 차단하여 그것이 우상화되는 경지로 발전되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세의 위대성 배후엔 이런 무서운 사연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