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06. 종교개혁의 재조명

solomong 2025. 10. 31. 11:38

 

106. ​종교개혁의 재조명

(롬1:17)

 

1. 서론: 오늘 주일2023. 10. 29.)은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기념 506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95개조의 抗議書를 붙이므로, 개혁의 봉기를 했던 것입니다. 루터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은 오늘 본문인 “복음에는 하나님의 義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하박국 2:4에서, 예언자 하박국이 불의가 강성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으며, 이스라엘이 범죄 하매, 더 악한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심에 하나님께 항의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계시를 했던 것입니다.

 

요는 육적인 고난이 과중해질 때, 의인의 마음은 믿음에 기울이게 되고,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원하셔서, 불의의 강성을 용납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약에 와서 사도 바울에 계승되어, 기독교의 기본교리인 以信得義의 교리가 되었고, 루터에 의해서, 이 말씀이 갱생되어, ‘오직 믿음’(Sola fide)이라 표방하면서,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하박국-바울-루터로 이어 온, 신앙의 大系譜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박국은 악인의 폭력을 상대하여, 바울은 율법주의를 대항해서, 그리고 루터는 로마법황청의 교권에 항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직 믿음’이란 루터의 그 근본정신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원래 하나님의 속성적인 義란 것은 바르고, 정확하고, 엄격하고, 법적이요, 굽힐 수 없고, 불의와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義란 것은 모든 불의한 자에게 다만, 심판과 정죄를 宣告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義는 인생의 불의와 죄를 폭로할 뿐입니다. 완전히 義를 행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죄와 최후 멸망을 선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은혜로운 구절을 잘 생각하게 됩니다만, 하나님은 절대 義로운 분이시며, 義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며, 하나님은 義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義는 불변하시기에, 어떻게 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편에서 오는 義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성질을 가지셨기에, 하나님 쪽에서 의를 준비하지 않으면, 불의한 인생들은 영원히 버림을 받고,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씀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福音인 기쁜 소식 속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義가 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義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이 義는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하나님의 속성적인 義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불변의 속성적인 義는 불의한 인생들에게 정죄, 심판 및 멸망만을 선고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통치자요, 심판자로 행동하시는 義로우신 하나님은 인생의 불의를 容恕하시거나, 寬大하시거나, 용납하실 수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이었습니다. 이런 정황 속에서, 인생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義와 인생들의 절망적인 죄, 中間에 어떤 무엇이 介入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인생들 편에서 善行을 행함으로 구원이 가능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가 苦行을 통해서,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로마 법황청 빌라도 층계를 무릎으로 기어오르다가, 불현듯 오늘 본문을 생각하고 고행을 중지하고 걸어서 내려 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義로써는 하나님 편에로 짧아서 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善行으로써는 하나님께 흡족하게, 만족케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다 죄 아래 있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9-10)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굉장히 노발대발(震怒) 하시고 계신 하나님이었습니다.(아버지가 자식의 잘못함에 대해서 怒가 머리끝까지 끓어올라서, 매를 들고 아들을 치려고 할 때, 아버지와 자식 중간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진정하시죠! 나를 때리고 화를 푸시죠!”하는 것을 우리는 인간사에서 경험합니다.) 이런 仲裁者, 仲保者가 있어야 했습니다.

 

3). 복음의 義가 ‘중보자’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생활로 성취하였으니, 곧 역사 세계에서 이 인간의 불의와 정죄 및 멸망을 대신해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진정시키고, 진노를 풀게 하여, 만족하게 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和解, 和睦케 하셨습니다.

 

죄에 부과되는 형벌은 사망인데, 십자가에서 대신 희생의 제물로 드려짐으로, 우리의 義가 아니라, 하나님 義의 현현(顯現)인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아바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앙모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義가 없고, 罪惡투성이지만, 예수님을 믿음에서 오는 예수의 義의 옷을 덧입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認定을 받게 되었습니다.

 

4). 이것을 일컬어서, “오직 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육신의 醫療行爲에 비유한다면, 믿음은 종두(種痘), 우두(牛痘)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의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서 소에서 뽑은 면역 물질을 살짝 피부를 통해 혈청 안에 넣어서 항체를 만들어서, 천연두 병마가 침입하더라도, 이미 항체가 있어서 천연두에서 解放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요사이 신종 ‘풀루’도, 그 어떤 예방주사도 같은 원리입니다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인류의 속죄의 대업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완전히 義로운 義人이 아니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은 義認인 것입니다.(以信得義) 이 은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仰望하는 믿음만으로 족합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후의 생애는 성령의 감동 하에서 성결케, 영화롭게 진전되는 것입니다. 정치가는 정략으로 살고, 상인은 이익에 살고, 군인은 무력에 의해서 살고, 학자는 지식에 의해서 삽니다. 그러나 기독자는 믿음에 의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자의 ‘오직 믿음’은 일생을 통해서 굳은 결심이 되어야 하고, 순간순간 결단하면서, 그 어떤 희생을 지불하더라도 이 믿음을 관철하겠는 견고한 결심으로 이 믿음의 소유물을 堅持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눈물의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시84:6),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을”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핍박을 받음을 즐거워하고, “나는 여호와 집에 거하리라”는 결의를 다지면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루터는 1521년 웖스 국회로부터 소환되어, 25부의 저서를 취소하라는 것에, “성서에 기준한 것은 성서로써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그것을 취소할 수 없다.”고 답변하면서, “내가 이곳에 서 있어서 다른 도리가 없어오니,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라는 유명한 기도로 종교개혁의 신념을 지켜 결국 성공했던 것입니다. 루터 개혁이후, 개혁자들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구호를 외치면서 시대마다, 상황마다, ‘오직 믿음’이 흐려질 때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 지칠 때마다, 이 심정으로 돌아와 마음을 다짐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3. 결론: 루터가 처음엔 신앙과 교회 모든 관행 중에 잘못된 것만 개발하고 고치자는(Development)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에로 돌아가서 성경의 참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성경을 일반 평신도도 읽을 수 있도록 번역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온 유럽천지가 진동했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 무엇인지 찾아서(Research)개혁하자는 불길이 붙기 시작해서 결국 종교개혁이 성공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근원적인 것, 근본적인 것이 잘못 되었으면, 항상 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쥐어야 하겠습니다.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赦하시고, 하나님과 怨讐 된 인간이 다시 結合하여 親子關係가 수립된 것과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서 죽고, 복음의 義로 말미암아 다시 復活한 이 근원적인 것을 새롭게 음미 하면서 신앙생활 해야 겠습니다.그리고 그 근원에 위배된 것은지금도 가차없이 개혁되어야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