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눈물로 허기진 세월"
(고후 2:4)
1). 서론: 저의 친구 0 0 0 장로의 10주년 주도예배에 즈음하여, 제목을 <눈물로 허기진 세월>로 정해 보았습니다. 여기 "허기진" 용어 개념은 국어시전에, <1. 배가 고프고 기운이 빠지다. 2.간절히 바라거나 그리움의 마음이 생기다.>중에서, 두번째 그리워하는 마음이 유족들에게는 그간 10여간 순간 순간 故人의 모습이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는 세월이었다고 사료됩니다.
제 브로그 <山下연구소와 山下연구원> 오래 전부터, "그리움에 허기진 세월"이란 詩를 제가 올려서 지금도 방문자들이 자주 읽곤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꽃 피고 지듯
불시로 생각나는 그리운이여
지워지지 않을 피멍으로
옹이처럼 가슴한 곳,
통증으로 남아 있는 사랑
몇 번의 각혈로 토해 내도
다시 자라 파고드는
상사(相思)의 업과(業果)
그래요
어루만지며
품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죽어도 함께 할
내 사랑이니까요.
그간 유족들께서는 이 詩처럼 <0 0 0 장로님>을 마음으로 "눈물로 허기진 10년의 세월"을 보내며 살아온 줄 압니다. <눈물로 그리워해온 10년>의 아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2). 본론: <고린도 후서>는 사도직의 정당성을 변명하고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을 경고하고, 고린도교회에 만연된 유대주의를 제거하고 곤란에 처한 예루살렘교회에 구제를 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수신자인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사도직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바울이 전한 복음이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으로 변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태수습을 위해서 동역자 <디도>를 보냈습니다. <디도>는 <디모데>보다 담대하였고, 정치적 수완이 좋았던 것입니다. 그후 바울은 빌립보에서 <디도>를 만나 일단 사태 수숩 된 소식을 듣고, 고후 2:4의 말씀을 한것입니다. 결국 바을은 눈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반대자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명과 영광스러움을 자랑도 해보고, 또한 화해를 호소하기도 하고, 격한 감정의 공격도 해 보다가, 마지막 방법으로 본문의 말씀처럼 ‘눈물의 사람’이 되어, 넘치는 사랑으로 다독거렸던 것입니다.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한 것처럼, 바울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그간 근심에 찬 여러 밤을 눈물로 지새운 가운데서 고뇌에 찬 <눈물의 사람>! 바울의 면모를 우리는 엿보게 됩니다.
*(1). " 눈물의 사람": 이제 추도 예배를 드리는 고 0 0 0 장로님의 가족들 가슴에 그간 10년간 고인을 그리는 사모의 정이 떠날 날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을 생각하는 눈물의 10년간 세월이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눈물의 사람>! 바울은 오늘 추도예배 드리는 가족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씀과 삶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젠 故人을 위해서만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자녀들과 친척, 친구들 및 조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밤마다 새벽마다 울며 기도하는 눈물의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바울처럼 눈물로 악을 죽이는 우리들이 되도록 합시다. 눈물 때문에 세계 도처에 양심이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에게는 고귀한 液體가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땀과 눈물과 피 입니다. 땀을 흘리는 것보다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어렵고, 눈물보다는 피를 흘리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땀은 노력의 상징이요, 눈물은 감정의 상징이요, 피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땀 흘리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고, 눈물 없이는 바로 살아갈 수 없으며,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위대한 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눈물에는 멀리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때 기쁨의 눈물이 있고, 지난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참회의 눈물이 있는가하면, 분투노력 끝에 영광을 차지한 승리의 눈물이 있으며, 억울한 일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恨의 눈물이 있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눈물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연약한 사람, 허물과 회오에 찬 사람은 엎드려서 기도하며 울게 됩니다.
어쩌면 교회는 눈물을 흘리는 장소입니다. 감격의 눈물이 있는 곳, 회개의 눈물이 있는 곳, 사랑의 눈물이 있는 곳이 敎會입니다. 또한 교회는 눈물을 배우는 곳입니다. 눈물은 희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은혜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찾아오면 사랑의 샘이 넘치게 됩니다. 사랑의 샘이 넘치면 눈물이 흐릅니다.
눈물은 삶에 대한 감동의 언어입니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흘러나오는 감동의 언어인 눈물은 삶의 뿌리를 적시는 고은 단비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시고 흘리셨던 예수님의 눈물,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시면서 흘리신 주님의 눈물, 겟세마네 동산에서 속죄의 대업을 이루기 위한 주님의 눈물을 잊지 맙시다. <눈물의 사람>!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씀과 삶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모두 ‘눈물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2). "허기진": 서두에 그리움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움이란 것>은 인생의 어떤 한순간이 마치 예전에 사진을 찍을 때 터뜨리던 마그네슘처럼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속에 찍히고 인화되는 그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것을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 <그리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문안 인사는 서신의 격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의와 인격을 포함한 그리움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내 주변의 삶들이 어느 한순간에 "얼음"처럼 차디차게 냉엄해 졌을 때, 따뜻함이 넘쳐 뜨겁기까지 해준 추억의 주인공들, 상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몫을 나눈 연민의 정이 엉킨 인연의 주인공들, 따스한 말 한마디가 바른 길을 걷게 하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함께 땀을 쏟음으로 참 사랑을 알게 하고, 천 갈래 만 갈래 애달픈 생각으로 위해서 기도해 주는 자들은 모두 ‘그리움의 얼굴’들인 것입니다. 유족 여러분! 이런 그리움을 유발시키는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 간 ‘그리움의 얼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결론: 고인에게만 향했던 "눈물의 허기진 세월"의 시간만 보내지 말고, 이젠, 내 삶의 주변이 "얼음"처럼 차디차게 냉엄해 진 것을 보고, 이젠 그쪽을 향해서도 <눈물 지우며, 그리움이 넘치는> 따뜻함이 넘쳐, 뜨겁기까지 해주는 추억의 주인공들, 상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몫을 나눈 연민의 정이 엉킨 인연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따스한 말 한마디가 바른 길을 걷게 하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함께 땀을 쏟음으로 참 사랑을 알게 하고, 천 갈래 만 갈래 애달픈 생각으로 위해서 기도해 주는, 오늘 추도예배를 드리는 유가족들! "눈물로 허기진 세월의 시간"을 유발시키는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젠 형제 자매, 친지, 친구들, 못 잊어 그리워하는 당사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 간 ‘그리움의 얼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결국 1. 아브라함처럼 순종의 믿음, 2.요셉처럼 고난이 종래 인종의 믿음으로 승리! 3. 모세처럼 신앙의 정조, 신앙의 순결과 절개를 지키는 유가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
2025. 10. 18.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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