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02. 기도자의 3단계 원칙

solomong 2025. 10. 15. 10:27

102. 기도자의 3단계 원칙

(본문: 마7:7-12, 눅11:5-13)

 

1. 서론: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설문 내용은‘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였습니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는 엉망이어서,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 성적도 초라했다고 합니다. 지리 점수는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였고, 그는 3수 끝에 Sandhurst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이런 용기 있는 믿음의 기도가 그를 가장 존경 받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무한대의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는‘희망이 없던 소년’을‘희망을 주는 지도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독자가 경계해야 할 것을,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남을 비판하지 말 것을 경계하신 다음, 거룩한 것(神聖)을 지킬 것을 당부하신 후에, 이제 기도에 힘쓸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 기도자의 3단계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하여 우리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 그 참 뜻을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기독자들에게는 벌써 격언(格言)처럼 되어 진 마태복음의 본문의 말씀은 아름답고도 박력에 찬 권면이라고 하겠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연이어 세 번 명령형이 나오고, ‘주실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니’라는 또 세 번 보증(保證)의 말씀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3번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나(마26:44), 바울 사도의 기도(고후12:8)에서 볼 수 있는 바처럼, 간절한 기도의 태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의 교훈에서 ‘염려하지 말라, 너희 천부께서 먹여 주신다.’는 하나님편의 보증과 거기에 신뢰 할 것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편의 노력을 부인(否認) 한 것 같은 인상이 있으나, 부인이 아니라 도리어 강력히 인간 편에서는 열심히 기도할 것을 장려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하나님편의 예정(豫定)을 믿는 다는 것은 인간편의 노력을 태만케 하지는 않을뿐더러, 도리어 더 생생하게 해 줍니다.

 

양편 철로 노선(路線)을 달리는 기차처럼, 이 두 가지의 사실이 우리 신앙인의 인격 속에서 조화되고 납득되며 기꺼이 수용될 때, 거기에 신앙자의 건전한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은 구하고 주는 것은 우주(宇宙)에 넘쳐있는 자연법칙입니다. 나비는 꽃을 찾고, 꽃은 나비에게 꿀을 주고, 모든 동식물은 삶을 위해 열을 구하고, 태양은 그 열을 공급하고, 아이들은 사랑과 보호를 요합니다.

 

부모는 그의 완전한 사랑과 보호로 자녀를 돌보고, 남녀 이성 간에는 피차 사랑을 구(求)하고, 이에 응(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구하고, 주는 것’은 만물에 충만한 법칙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법칙도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3번 반복하여 있는 것은 간곡히 구하는 자의 간절한 태도만 가리켜 있는 것이 아니고, ‘구하는 경로’(經路)도 잘 표시하고 있습니다.

 

* 누가복음 본문의 말씀 중, 8절의 ‘강청함’(άναίδεια, 아나이데이아)의 뜻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당당한 요구’, ‘뻔뻔함’이란 의미로, 영어 흠정역 성경엔 ‘Importunity’(끈질기게 졸라 됨)로, 1970판 The New English Bible(Oxford Cambridge)에는 ‘Shamelessness'(수치를 모름)로, 한영 성경전서(2002)에는 ‘간청하다’(παρακαλἐω, 호소한다)의 뜻으로, 공동번역엔 ‘귀찮게 졸라댄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5-8절은 기도에 대한 몸부림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비유는 불의한 재판관 이야기(눅18:1-8)와 인색한 이웃의 끈질긴 요청에 소원이 성취된다는 내용입니다만, 하나님은 이들과 같지 않기 때문에 무례한 ‘강청’(强請)이 아니라, ‘믿고 쉬지 않는 기도를 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에 몸부림치는 사례는 구약의 야곱이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그 좋은 예라고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우리들의 몸부림은 하나님과 더불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과의 몸부림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를 막는 자신들의 의지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고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도에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몸부림치기 이전에,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애정 깊은 하나님의 노력이 선행한다는 것입니다.(롬8:26) 그렇다고 기도에 열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3. 본론(Context): 열심히 기도해야 할 마음의 총체적 태세는 ‘억지를 쓰는 것이나, 뻔뻔스러운 것 보다는, 흠정역의 번역처럼 ‘끈질기게 졸라대는 끈기’와 공동번역처럼 ‘귀찮게 졸라대는 애절함’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그리고 기도의 내용 조목(條目)은 소승적(小乘的=개체의 유익) 차원보다 대승적(大乘的=공동체의 유익 )차원의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절차(經路)는 아래와 같이 주님께서 3단계 원칙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첫 단계로서, ‘구하라’는 것은 기도하는 자의 심적 준비를 말하는 것이며, 심중에 내재(內在)하고 있는 소원(所願)을 의미합니다. 소원한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것이요, 무엇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가 우는 것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요, 어린 아기는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 자체는 근본적으로 결핍되고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에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의존성은 우리 인생 여로(旅路)의 종착지까지란 것입니다. 그러기에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간곡하게 구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을 자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간의 관계도 무엇을 청원하는 편이 너무 간절한 태도로 나오면 이에 응하는 편도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하등의 마음에 원치도 않으면서 지나가는 말끝에 무엇을 소청한다면 이편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부탁을 받은 편이 그 일에 관심을 성취하여 주었는데, 부탁한 편은 벌써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큰 실례가 되겠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는 이런 식의 기도를 얼마든지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의 아무런 준비도, 간곡한 소원도 느끼지 않으면서 기도를 시작한 김에 얼마든지 길게 구하고, 구한 후에는 다 잊어버리고 만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그 얼마나 큰 불경(不敬)이 되겠습니까. 테니슨은 “구하라! 말로도 못한다면 눈물로써 하라.”는 기도의 제일보를 가르쳐 준바 있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인,‘찾으라.’고 하신 말씀은 ‘마음의 준비’에서 ‘행동화 된 탐구’로 옮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경은 보지 못하고 걷기만 하고, 앉은뱅이는 보기만하고 걷지는 못합니다. 잘 보고 잘 걸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 마음의 방향을 따라서 일어나 동작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것을 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마음에만 있고 태도로 옮겨 찾지 않으면 얻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찾으라고 하심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간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허튼 짓을 수 없이 반복한 것으로 인해서, 한 인간으로써,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에서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이젠 구체적으로 잃은 것을 찾기 위한 행동화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 자녀에 대한 깊은 애정,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신의(信義)와 성실성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거룩함과 경건한 믿음에서 세속화되어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음에도 믿음이 있는 것처럼 무감각해진 실존에서 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개척자가 미지(未知)의 광산(鑛山)을 발굴하듯이, 말씀의 진리를 탐구하면서 자신을 그 말씀에 투영(投影)시켜서 부족하고 죄 된 모습에서 벗어나는 각고의 아픈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도 오랜 연구에서, 음악의 이해도 피눈물을 흘리는 연습에서 대가를 얻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찾아다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찾으려고 갈급함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으려고 갈급함과 같도다.”(시42:1)라는 경지(境地)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재정비(再整備)하면서, 하나님께 긍휼과 자비 그리고 불쌍히 여겨 달라는 애절한 절규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잃은 것을 찾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로서, ‘문을 두드리라.’ 고 하는 것은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이며, 막달은 골목에 당도하여 더 이상 갈수 없는 단애(斷崖=절벽)에 서서, 드디어 주님을 만나서 담판을 하겠다는 절박한 마지막 ‘노크’를 말합니다.‘얍복’ 나루에서 천사를 만나서 떼를 쓰는 야곱처럼(창32:24-29), 밤중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기어코 떡을 얻는 벗처럼(눅11:5-8), 얻기 위한 마지막 노력입니다. 미국의 어떤 실업자가 직업을 구하러 다니다가 어떤 회사의 문전에서 ‘밀고 들어오라.’고 써 붙인 것을 보고, 밀고 들어갔답니다.

 

그러니 그 회사의 지배인이 왜 들어 왔어왔느냐고 하기에, “저 문에 밀고 들어오라고 쓰여 있기에 나의 운명(運命)의 문을 밀고 들어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채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와 같이 주먹에서 피가 나도록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이 가다금씩 인생여정에 도사리고 있기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무기(武器)는 낙심치 않는 끈덕진 집념(執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구하는 그 자체가 잘못이라면 옳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주님이시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생명의 일이요, 우리 생명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런 집념의 기도로 인생의 험로를 극복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우리 기독자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는 먼저 간절하게, 진실하게, 절실하게 간구해야 할 것이며, 결핍된 것에 대한 소원은 오직 하나님께 의존할 때만 해결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다. 그간 인생길에서 반드시 지녀할 것을 잃어 버려서 찾기 위해 행동으로 탐색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정비하여 하나님께 애절하게 절규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막다른 골목에 당도하여 더 갈 수 없다는 상황을 인식하고, 그 낭떠러지에 서서 끈덕진 집념의 무기로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 유익하게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보증으로 주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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