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본문설교는 어떻게 디자인할까.
-성서 본문의 골자와 인간 상황의 연결이 중요(9)-
‘본문 설교’를 어떻게 디자인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설교 디자인의 원리 도해’를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설교 디자인의 원리 도해(圖解)
(1)하나님의 말씀.....................(2)인간의 상황
(3)설교.....................................(4)치료(은혜)
필자는 컴퓨터상에 그림을 그릴 수 없어(실력부족), 글로써 설명을 할애한다. 위 그림 (1)이 (2)와 서로 연결을 지으며, 동시에 위의 (1)에서 대각선으로 선을 그어서 (4)에 이르게 한다. 이 (4)는 (1)의 능력으로 (4) ‘치료’케 되는 것이다. 위 그림 (2)는 항상 죄를 짓고 병든 인간 실존이다. 위 그림 (2)에서 대각선으로 선을 그어서 (3)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위 그림 (1)의 ‘복음의 능력’으로 대각선이 (4)까지 이어지는 선과 위 (2)에서 대각선을 그어서 (3)에 이르는 선에서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즉, 복음의 능력과 인간상황의 문제들(죄·병든 인간 실존)이 포인트(Point, 중요한 급부)]이다. 죄 많은 인간, 병든 인간 실존을 ‘치료’(은혜)를 받는 제일 빠른 방법은 (1)의 능력으로 직접 (4)‘치료’ 받는 것이 제일 좋으나, 옛날 구약시대 모세 등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지금은 성서 말씀만 주시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성직자로 통해서 말씀을 풀이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성직자를 통한 ‘치료’(은혜)를 받게끔 되어 있다.(만인 제사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1)에서 (2)로 가고, (2)에서 (3)으로 가다가 (1)에서 대각선으로 내려오는 ‘복음의 능력’과 ‘인간의 모든 문제들’이 서로 만나서(포인트에서 만남), (3)에 이르게 된다. (3)성직자는 하나님의 영감(신적요소)과 자기 인격의 말(인적요소)을 합해서 (4)로 이어져서 즉, ‘치료’(은혜)를 전달하는 것, 이것이 설교다. 이런 ‘설교 디자인 원리의 도해’를 생각해 볼 때, 목사는 세상의 그 어떤 직종보다 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전달하는 자라는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이 사명을 다해야 하겠다는 결의가 용솟음치는 것을 금할 수 없다.
1). 본문설교의 제목문제: 본문설교에서 제목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예컨대, 본문이 창세기 50장 15-21절이라면, 아마 본문의 17절에 있는 “요셉이 울었더라.” 라는 구절에 필자는 아이디어(自己 着想)로 보겠다. 그래서 제목을 ‘요셉의 눈물’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긍정적인 인간 정서의 대표적인 ‘눈물’을 상징적 중심사상으로 잡은 것이다. “긍휼의 실행은, 돈이 없으면 말로 할 수 있고, 말로 할 수 없으면 눈물로도 할 수 있다.”(빅토리아여왕이 나이팅게일에게 준 훈장 내용의 명언) 본문 설교의 제목은 거의 전부 본문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짤막한 문구를 그대로 택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요약해서(줄여서) 제목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목은 그 명제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보다.” 누가 읽어 보아도 대략 개념을 짐작할 정도여야 한다. 불분명한 제목은 절대 금물이다. 또한 좀 인상적이고, 기억하기도 좋고, 품위가 있는 것이 본문설교 제목으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특별히 제목문제에 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거론코자 하나, 설교 제목은 집에서 주인의 문패(주소: 성명을 적어서 문에 다는 것)나 회사의 간판과도 같다고 할까.
거리를 지나다가 문패 이름이 이상한 이름을 보면 “거참 별 이름도 다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성은 양(梁)씨요, 이름은 재기(在基)라면 발음이 “양재기”가 된다. 아마 초등학교를 거쳐서 중. 고등학교 시절 때, 친구들로부터 “어이, 양재기! 양재기로 물 좀 떠오너라!” 하면서 많이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뜻은 “돌다리 기초가 튼튼한 것이 있다.”는 의미로 부모가 지어 주었지만 놀림감이 되어 좋지 않다.
길거리 간판 중에 “Nii 머리 깎을 때 됐다.”(니이, 머리 깎을 때 됐다.)는 이발소 간판이 있었다. 어느 간판은 음식점도 하고 술도 파는 업소인 모양인데 간판이 “억장 무너지는 소리”라고 되어 있다. 비근한 예지만 ‘이발소’라는 광고도 되고 머리 깎으라는 의미도 포함되었다. 대단히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간판이지만, 좀 000한 것 같고, 또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와서 술을 드시라고 선전은 하나 역시 좀 000하다.
설교 제목도 이런 것이 더러 있는 것을 본다. 불분명하고, 품위가 없다. 그래서 강의자는 설교 제목은 절대로 제3자가 변경치 말아달라는 것이 원칙으로 되었다. 너무 분명하면 헤프기도 한 것 같고, 속을 다 보이면 그도 안 좋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는 그 수준의 설교 제목을 택해야 하는데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교 제목문제는 다음에 이야기하자.
2). 성서 본문 이해: ①. 요셉이 애급 총리대신이란 권좌에 있다. ②.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어서 장사지낸 이후의 사건이다. ③. 요셉의 형들이 야곱 사후(死後)에 복수를 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④. 그래서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의 유지(遺志)를 요셉에게 알리면서 “당신의 아버지…”(죽은 아버지의 권위를 다시 이용하려는 심사) 이름을 들먹거렸다. ⑤. “종들의 죄를 이제(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용서하소서.”
⑥. 요셉이 형들의 이 말을 듣고 “울었더라.” ⑦. 동생(요셉이 총리대신이라는 권력도 참작)에게 형들이 무릎을 꿇다. ⑧. “요셉이 두려워 마소서!”라며 이 모든 사건(요셉이 옛날 형들에 팔린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 ⑨. 요셉이 형들의 장래뿐만 아니라, 자녀들(조카들)까지 안전(영육)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함. 이것이 본문에 대한 강의자의 착상(着想)이라고 하자.
3). 인간상황 선택: 설교를 듣는 교인들의 상황은 ①. 눈물에는 진위(眞僞)가 있다. 2). 부모의 편애(여러 형제)가 있다. ②. 사랑싸움이나 재산 싸움·명예·권력 등의 애지중지하는 어떤 것을 빼앗겼을 때, 인간은 복수의 기회(칼을 간다)와 절치부심(切齒腐心)한다. ③. 불법적으로나 불의하게 귀중한 것을 찬탈한 자는 무의식 속에 항상 불안에 떨고 있다. ④.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인생의 투쟁 마당에서 약자(패배자)는 원망하고, 강자는 표면적으로 교만하다. ⑤. 이런 인간 상황에서 기독자가 취할 길은 무엇인가. 등의 상황을 기술(記述)할 수 있다.
4). 본론(비교): 그간 종이에 쓴 ‘본문 이해’와 ‘인간 실존의 상황’과 비교해 본다. 이것을 본문 성서 상황(Text)과 인간 상황(Context)의 ‘연결’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본문 성서 상황의 중요한 골자(骨子)를 기술해 보고, 지금의 인간 실존의 상황은 이렇다. 그러면 우리들은 기독자들인데, 어떻게 할까. 그 다음은 성서 본문 상황(골자만)의 기술과 인간 상황을 순서대로 기술하면 거의 설교는 다 된 셈이다. 사실상 이것이 ‘본론’인 것이다.
5). 설교의 목표: 성서는 개인윤리에 대해서는 ‘용서’하라고 했다. 주기도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했기에 우리도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 그 용서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한(약속) 용서를 삶을 통해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요셉은 첫 번째로 진실의 ‘눈물’로써 ‘용서’에 대해 상징적으로 표시했고, 두 번째로 말과 삶으로써 미래를 지속적으로 용서하는 의미로 영육 간의 모든 삶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이런 결의가 기독자에게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목표가 하나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예: 눈물=과거 원한에 대한 용서=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신앙). 이렇게 본문 설교든, 제목 설교든 언제나 목표는 한 가지 교훈(초점이 하나)이라야 한다. 현대 설교는 2대지 3대지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한 가지 교훈만 주는 것이 기억하기 좋고, 생활에서 음미하면서 실천하기 좋다.
6). 서론: 교인들의 산만한 심정과 행동(지난 일주간 동안의 골치 아픈 것을 그냥 교회로 가져온다)을 집중시키고, 설교에 은혜를 받기 위한 설교 서론의 3-5분 내로 교인들의 마음과 행동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서론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목사들이 자주 본문 설교에서 성서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강의자는 이 같은 방법을 권장하고 싶지 않다. 교인들은 “우리 목사님 또 성서 말씀 가라사대 한다.”고 하면서 “별스런 말씀도 아니구만!” 하기 일쑤다. 그러니 무엇인가 관심을 끄는 소재를 가지고 첫 마디의 입을 열어야 한다.
7). 결론: 중요한 골자 즉, 여기 필자의 “요셉의 눈물” 이란 제목의 설교처럼, 인간의 장난엔 자주 원망하지만, 고난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보니,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우리 기독자는 알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요셉의 눈물은 단순히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용서하는 신앙에 입각한 눈물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형제 간, 친구 간에 서로 용서하는 열매가 있어야 진정한 형제이고 친구란 것을 강조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열매 없는 친구가 있느니, 차라리 원수가 있으라.",
이 명제는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친구보다, 원수가 있으므로, 경계(警戒)하고, 근신하고, 긴장함으로써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의미로 결론을 맺는다. 그러나 결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설교 뒤 모든 목사들은 기도를 한다. 그 기도가 그날 설교의 진정한 의미에서 교인들에게 은혜를 줄 마지막 ‘결론’으로써, 은혜로운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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