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곡의 벽*
48. 형제여, 목 놓아 울어나 보자! (18년 전에 쓴 글)
사랑하는 마음이 짙을수록 웃는 것만이 아니고, 슬퍼 할 줄도 아는 것이 인간이다. 슬피 울 줄도 모르는 사람은 나라(형제, 자식, 교회)를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기뻐할 줄만 아는 것이 아니라, 슬퍼 울기도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치고 그 자식들 위해 울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울 줄도 안다. 당신들은 밤마다 자식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부모님을 모르는가. 당신들은 아침마다, 새벽제단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어버이를 모르는가!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일본 제국주의시대 서울 배제고보 3학년 때, 광주학생 사건에 연루되어 퇴학을 당하시고, 소백산 하 조그마한 마을에 낙향하시어 민족의 슬픔을 삼키면서 한의 세월을 보내셨다. 늦여름 어느 날 오후 어린 나는 낮잠을 자고나니 날이 어두워져 울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무슨 연고인지는 모르나 우는 나를 달래다가 화를 내시고 내 뺨을 한번 쥐어박고는 밖으로 나가시었다. 얼마 지난 뒤, 아버지는 붉은 사과를 가져다주면서 나를 부여잡고 한참 우시는 아버지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내 나이 자식을 위해, 나라 형편을 위해, 지상에 존재하는 하늘나라의 생명이 움트는 세상의 소망으로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목 놓아 울고 또 울 수 있는 분별력 있는 나이도 한 참 먹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시한부의 인생을 제하면서 사는 심정이다. 나의 신학생 시절의 추억 속에 잊을 수 없는 교수님 중 한분이신 구약신학자 김치선 박사님이시다. 교수님은 구약사기를 가르칠 때, 울면서 강의하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아”라고 별명을 붙이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남유다 왕국의 꺼져가는 등불 같은 나라의 운명을 슬퍼하고 통곡하라고 권고하고 있다.(렘9:17-19)백성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나라가 잘못되어 감을 울고 탄식하라고 함이 정말 나라사랑이 아니겠는가. 아모스는 예레미아 보다 약150전에 그의 눈에 비쳐진 이스라엘 왕국은 비관적이었다. 그는 망국의 치달은 역사의 내리막길을 붙잡아 올려 구원시킬 수 없음을 분명히 보았다. 그가 살고 있었던 시대상황은 정치현실의 무질서, 국민생활의 방향감각 상실, 가치관의 전도, 국민 도덕의 부패, 유흥과 사치, 사법권의 타락, 경제의 비윤리, 종교의 순수성 상실 등으로 그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코 아모스는 나라의 어두운 면만을 보는 감상적인 사나이(sentimentalist)는 아니었다. 그는 역사를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의하여 나라의 운명을 역력히 보았다. 그래서 그가 외친 탄식이 암5장16-17절에 “통곡의 권고”를 하고 있다. 이 나라를 위해서 좀 울어 다오. 네 자신이 울 수 없거든 직업적으로 울기를 잘하는 전문가를 불러서라도 통곡을 해 다오. 나라를 사랑하는 길 하나가 최후로 있다면, 나라를 위한 애곡을 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형제여! 어찌 예레미아, 아모스만이리오! 예수님도 민족의 영원한 수도 예루살렘을 위해서 슬피 탄식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가슴에 사무친 비탄한 감정을 마치 죽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처럼 예루살렘이 장차 맞이할 슬픈 운명에 대하여 탄식하신 것이었다. 유월절에 상경하시어, 유대 군중과 사랑하는 제자에 의해서 피소되어 빌라도 법정에서 갖은 수모 다 받으시고, 언약하신 두 어깨에 십자가를 메시고,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영문 밖의 길을 가셨다.
그 고난의 길을 10 여차례 넘어지시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걸어가셨다. 그래서 지금도 그 길을 고난의 길(Via Dolorosa)이 라고 한다. 간악한 바리새인 포악한 로마병정 걸음마다 자국마다 갖은 고난 짊어지셨다. 이 모든 주님의 고난은 온 인류와 우리들을 위한 주님의 작정된 길이었던 것이다. 주님은 이를 위해서 그 때의 존재의미였던 것이다.
오늘 주의 종들도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흘림 없이 못가는 이 길이다. 우리의 목양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주님 따라 올라가야 한다. 십자가의 고개 언덕이 제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우리 어찌 못갈 것인가. 주님 수제자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갔사오니, 고생이라 못 가오며 죽음이라 못 갈 손가! 이 길은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의 길이요. 우리를 통한 뭇 심령을 위한 구원의 무거운 사명감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역시 우리가 목 놓아 울 때이다. 외면적으로는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향해 있고, 휘황찬란한 거리마다 밤길을 비추이는 네온사인과 가로등불, 대로를 가득매운 자가용차들, 매일 다르게 치솟는 고층빌딩과 호화판의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허나,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 작은 키로도 바로 누울 수 없는 쪽 방살이 군상들, 지하철 역구내의 노숙자들! 자살자 많기로 세계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여당과 야당은 당리당략과 정권욕에 혈안이 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가짜 품이 명품을 뺨치고, 가진 자의 하루 밤 유흥비의 수백만 원이 천원을 만원처럼 쓰고 사는 서민들을 서럽게 하고 있다.
환락소리 높은 곳에 보통 사람들의 한숨소리는 땅이 꺼질듯 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고함소리는 천지가 진동한데, “고시촌의 고달픈 세월은 언제던가!” 망각의 시공 속에서 사법고시 합격, 판검사 되고 보니, 국민이 부여한 권력이건만, 서슬 푸른 칼날을 백성들께 들이대고, 교묘한 수단방법 다 주어모아 돈주머니 챙기기에 재미가 고소하다고 한다. 대법관 옷 벗으면 전관예우 대접에 연 수입 10, 20억 거뜬한 대한민국!
대형교회 목사님들, 중세 장원제도 하의 성주처럼, 하나님 영광 홀로 독차지하고, 교회세습에 노욕은 충혈되고, 노회, 총회 재판국원이 그렇게 인기라고, 목회는 뒷전이요, 정치하여 재판국원 되기에 혈안 된 눈 좀 보소! 황금에 눈멀어 억울한 자 그 얼마인고! 당회, 노회는 조폭화 되어 왕초가 거드름을 피우는 교계다. 노회장이 어찌 그리 좋은지, 정법으로 안 되면, 불법으로 밀어붙여 되고나 보자는 노회여! 정교분리 된 이 나라에서, 어떤 목사들은 강단에서 마땅히 주의 복음 전해야 할진데, 어찌하여 대통령선거운동 선전장이 되었다니, 주님은 지금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한탄하시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떤 목사들은 선거운동 했다고 경고장을 받았느니, 사직당국에 고소를 당했다느니, 이 무슨 고약한 소리란 말인가. 역사적으로 기독교인 대통령되어, 이 민족 앞에 주님께 영광보다 욕 돌린 일이 그 아니 많았던가. 형제여! 우리 세상살이나, 교계나 어느 한 곳도 믿을 사람들은 간곳없고, 사기꾼들만 득실하니, 이 나라가, 기독교회가 어디로 가려는가! 형제여! 우리도 아모스처럼, 예레미아처럼, 애국, 애교회 위해 마지막으로 목 놓아 싫도록 울어나 보세!
“주님 당신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게, 당신의 피 흘림이 우리의 피 흘림 되게, 당신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되게, 당신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체 잠든 우리들의 양심에, 불을 활활 당겨주소서. 일체의 죽은 우리 영혼에, 사랑과 믿음과 희망의 불을 질러주소서”라고 통곡하면서 기도해 보자. 혹여 하나님께서 우리 우는 우고소리에 불쌍히 여길지 그 누가 알겠는가. 형제여, 목 놓아 울어나 보자! 끝.
2007. 11. 21. 새벽 1시경
山下연구원장: 양 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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