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그리심' 산과 '에발' 산(신11:26-32, 27: 11-26)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며 저주하던 산이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계승하여 40년간의 기나긴 광야 방황생활에 허덕이던 백성을 거느리고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업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우선 ‘여리고 아이’의 서전(緖戰)에 성공하였다. 그 이후에, 이 산에다가 언약의 법궤(法櫃)를 맨 레위인, 제사장을 중심하여 12지파를 갈라 세운 후에, 모세의 명한 율법의 책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율법의 한 말씀이 떨어질 때마다, 양산(兩山)에서는 호응하여 ‘아멘! 아멘!’의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었다. 이 예식은 이스라엘 국부(國父) 모세가 죽기 전에 거듭거듭 부탁하였던 바의 엄격한 명령이었다.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의 생명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이 율법을 토대하여 건국하였고, 이 말씀의 지배를 받아서 치국(治國)하였고, 이 말씀에 격동되어 회개하였던 민족이었다. 이 복잡하고 긴 율법은 한 마디로 말해서, ‘축복과 저주’이었던 것이다.
율법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고, 버리면 저주를 받는 다는 것이다. 그리심 산에 서서 축복에 호응하는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벤야민의 제 지파들! 에발 산에 서서 저주에 ‘아멘!’하는 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의 6지파들! 모두가 축복과 저주를 하기에 적합한 경력이 있는 족속이다. 축복(祝福)에 ‘아멘!’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저주(詛呪)’에 ‘아멘!’하는 것은 쓰라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엄한 부탁은 축복과 저주에 모두 다 ‘아멘!’할지어다 하였다. 축복에 ‘아멘!’하는 것은 신자의 신성한 특권이다. 저주에 ‘아멘!’하는 것은 신자의 인종(忍從)하여야 할 의무인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은 축복에는 아멘! 아멘! 하지만, 저주에는 아멘! 대신에 불평한다. 반항한다. 반란을 일으킨다. 사탄의 세계에는 축복만 있고, 저주가 없거나, 저주만 있고, 축복이 없다. 어떤 사람에게도 축복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어떤 사람에게도 저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축복 없는 저주는 너무나 가혹(苛酷)하다. 저주 없이 축복만 있는 것은 기만(欺瞞)이다. 가나안 군사의 근거지 ‘길갈’ 진영(陣營), 상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에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오늘날의 우리 조국강산에도 이 양산이 있어야 하겠다. 쓸데없이 ‘절망’함은 옳지 않는 불신앙의 태도이다. 동시에 ‘저주 없는 낙관론자’들도 이 민족을 망치게 하는 족속이다.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고요히 그리심 산에서 들려오는 축복성(祝福聲)에 용기백배해야겠다.
에발 산에서 들려지는 저주의 경성(警聲)에 회개백차(悔改百次)하자! 이 양산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레위인의 모습을 본받아서 우리 민족을 흔연히 축복하자. 눈물로서 이 백성을 저주하자! 그래서 고뇌와 아픔 후에 그리심 산에 오르게 하자. 오늘의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후예인 목사들이여! 헐한 축복만 남발하지 말자! 지금의 이 나라를 이 꼴로, 이 지경으로 만든,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의무와 이웃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 무리들에게 저주의 경성을 외치자! 그래서 축복 받는 금수강산, 그리심 산으로, 우뚝 서게 하자! 끝.
2014년 7월 26일
山下연구소 소장: 양 견 박사
'11. 박물관열람실(7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6. '산 노을'의 명상 (5) | 2025.08.18 |
|---|---|
| 45. 우리 집 손자를 위한 기도 (2) | 2025.08.10 |
| 43. <성서 말씀 명상>: 순간의 유혹 (7) | 2025.07.28 |
| 42. "귀댁의 따님을 저에게 주시오!"(저의 '회고록' 중에서 옮긴 글) (4) | 2025.07.19 |
| 41. "아버지 보고 싶으면 나는 우짜라 카노!"/ 망내 딸 美敬 이야기 (3) | 2025.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