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물관열람실(72)

27. "엄마 생각"(Tagore 詩 감상)과 성서의 교훈

solomong 2025. 5. 6. 10:21

 

27. ​"엄마 생각"(Tagore 詩 감상)과 성서의 교훈

The father came back from funeral rites.

His boy of seven stood at the window,

with eyes wide open and a golden amulet hanging from his neck,

full of thoughts too difficult for his age.

His father took him in his arms,

and the boy asked him, "Where is mother?"

"In heaven", answered his father, pointed to the sky.

The boy raised his eyes to the sky and long gazed in silence.

His bewildered mind sent abroad into the night the question,

"Where is heaven?" No answer came:

and the stars seemed like the burning tears of that ignorant darkness. -Tagore-

"엄마 생각”

아버지는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비해 너무나 어렵고 깊은 생각에 잠기어,

황금색 부적(符籍) 목에 드리우고 둥그런 두 눈을 활짝 떠서,

일곱 살 난 그의 아들은 창문 곁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두 팔로 부둥켜안자,

아들은 아버지께 “엄마는 어디 있느냐?”고 묻는데,

아버지는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나라에 있단다.” 했다.

그 소년은 그의 두 눈을 들어 한참동안 침묵 속에서 하늘을 응시했다.

그 소년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은 바깥 그 어두운 밤을 향하여,

“하늘나라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다만 별들은 무심히 흑암 속에서 총총히 반짝이나

그것은 마치 그 소년의 뜨거운 눈물방울처럼 보이었다.

*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은, 마치 잠자리에서

엄마 생각에 하늘만 쳐다보고 방울방울 흘리는

그 소년의 눈물처럼 보였다.) -양 견 목사 譯-

​인도 시성 Tagore의 “엄마생각”은 5월 8일의 <어버이의 날>에 적합한 詩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를, 방문자들이 많이 사랑하기에 '어버이의 날' 이전에 공개하기로 하였습니다.(2024년 5월에서 약 15년 전에 쓴 것임.) 이 시는 시집에서 옮긴 것이 아니고, 필자가 1970-80년대 도미 유학 때, 그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책 [On Death and Dying](죽음과 임종에 대하여)심리상담학 분야의 속하는 책인데, 저자인 E. Kubler-Ross 박사는 미국 Medical Director of the Family Service and Mental Health Center of South Cook County in Illinois의 가정상담 정신과 의사었습니다.

위 그녀의 저서 제157쪽에 인용한 인도의 시성 타골(Tagore)의 시를 읽는 중에 시적 묘사가 좋고, 시 속의 주인공인 소년의 실존이 너무나 측은(惻隱)하여 자꾸만 가슴에 아른거려서, 그것이 또한 이 시에 매력이고 생명이기에 이 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번역하여 이 시를 1). 아버지 측면, 2). 죽은 어머니 측면, 3). 주인공인 어린 아들측면에서 많은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그 느낌을 여기에 적어보면서, 성서와 결부시켜 결론을 맺을까합니다.

* 아버지 측면: 장례식에서[인도 불교식(화장), 아니면 힌두교면, 강에 떠내려 보내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을 얼싸안고, 부인 생각과 어린 아들 생각에 아마 목 놓아 울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아들이 “엄마 어디 있느냐고” 했을 때, 가슴이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하늘나라에 계신단다.”고 대답했을 때, 전신의 전율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 죽은 엄마 측면: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는 모르나, 사고로, 남편 때문에 자살, 타살, 병고로, 등등 생각나게 합니다. 죽는 그 순간에 남편보다 모정(母情)으로서 7살 난 어린 자식을 두고 가는 어머니의 아들 생각이 오죽 했겠습니까? 아마 차라리 자기가 데리고 가고 싶은 심정이 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어린 아들이 <황금색 부적>을 목에 걸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친척들이, 어린 아들을 두고 가는 어머니가 혹여 평생 그 어린 가슴에 ‘엄마’ 생각의 상처를 두고 가느니 차라리 데리고 가지나 않을까 걱정해서, 황금색 부적(符籍)을 그 소년의 목에 걸게 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황금색>은 권위, 힘, 영광 등을 상징하고, <부적>은 동양 ‘샤마니즘’에서 재앙, 죽음 등을 방지하고, 못된 귀신을 쫒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어린 아들: 이 시의 묘사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부분은 소년의 실존입니다. 그의 집에 다른 식구들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어려서 장례식에 못 가게 하여, 집에 남아서 7살 나이에 비해 <깊은 사념>에 젖었다는 것이, <인생론, 공포, 정적, 어머니를 기다리는 듯이 창문에 기대어 서>있는 그 쓸쓸함과 고독의 쓴맛을 동감케 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같이 올 줄 안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혼자오니, “엄마는 어디 있느냐?”고 묻고, 아버지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늘나라>에 계신다고 했으니, 하늘을 오래 동안 침묵 속에 응시한 표현은 너무나 애석하게 보입니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계신다고 했지만, 도대체 “하늘나라는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 소년은 잠자리 들었지만, 쉬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었습니다. <하늘나라>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만, “어머니를 찾으러 갈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진정(鎭靜)되지 않는 어린 소년의 마음은 바깥 어두운 하늘 저쪽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늘나라가 어디 있을까” 하면서, 하늘을 향하여, 소년의 마음속으로 외쳐 보고 울어보았지만, 캄캄한 밤하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엄마생각>을 하면서, 찾을 수도 없다는 그 현실 앞에서, 다만 별빛 총총한 밤하늘이 마치 이 소년의 흘린 눈물 방울처럼 보이게 되었다는 Tagore 시인의 묘사가 독자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합니다. 어릴 때는 아무리 아버지가 있어도, 어머니가 없으면 천지간에 외로운 고독한 실존이 되기에, 이 소년은 고아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성서의 교훈 래서 구약성서에는 고아(孤兒)와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출22:22), 추수 소산의 1/10을 성읍에 저축하여 고아와 과부 등이 먹고 배부르게 하라고 했습니다.(신10:14:28-29),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라고도 하였습니다.(시68:5),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고(사10:2), 신약성서 야고보서 1장 27절에는 참 경건(敬虔, 영역엔 religion, 즉, 신앙)은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고아(孤兒)의 실존은 정말 가련하기 그지없는 것이기에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로 고아원을 경영하는 분들은 복 받을 거룩한 사업이라고 사료됩니다. 우리 동양사상에서도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고 하는데, 흔히 <환과독고>라고 부르는 말이 있습니다. 환(鰥)은 늙고 아내가 없는 자, 과(寡)는 늙고 남편이 없는 자, 고(孤)는 어려서 부모가 없는 자, 독(獨)은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14장 18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 이후에 성자(聖子)께서 성령을 통해 제자와 더불어 영적으로 같이 계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아는 아비 없는 어린이의 뜻이므로, 제자들에게 아버지처럼 같이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존주의적 인간관에서 볼 때는 인간 각자는 고아와 같은 고독하고 가련한 존재인 것입니다. 내 병을 부모가 대신할 수 없고, 사랑하는 부모가 돌아가시게 되어도 아들이 대신해서 죽을 수 없는 그런 고독한 실존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고아와 같은 우리 실존을 영원히 사랑하고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않고 곁에 와서 계시겠다는 임마누엘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형님처럼(요20:17), 친구처럼(요15:15) 같이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삼위일체 중에 한분이신 보혜사(保惠師, 변호자의 뜻)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련하고 불쌍한 고아를 부모처럼 돌보아 주면서, 우리 형편 역시 고아와 같은 실존이기에 주님께서 돌보실 것이기에 우리는 세상이 주는 그런 평안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평안 속에 살 수 있다는 이 행복을 이 시를 통해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