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수필사랑마당

2. 초연(超然)한 삶이 그립다.

solomong 2024. 11. 3. 12:53

 

 

2. 초연(超然)한 삶이 그립다.

 

초연(超然)의 뜻은 국어사전에 "세속에 벗어나 있어 속사(俗事)에 구애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어떤 속사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하게 자기의 사고(思考). 입장에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말이 그렇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모두가 새해를 맞아서 좀 새롭게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해 보지만, 작심삼일이 되기가 쉽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지 못하고,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해, 구태의연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필자는 여기 시골 전원생활의 삶을 살아 온 지가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멀리 있는 산과 바로 옆에 있는 들판, 그리고 비닐하우스뿐이다. 좀 고독할 뿐이다. 사실 도시에서 억세게 몰아쳐 오는 세파를 이기려고 그 얼마나 발버둥 쳐 온 그간의 세월이었던가! 그래서 얼마나 몸과 마음이 지쳤던가!

 

책을 읽으며, 때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가슴에 스며드는 회한과 고독이 몰려올 때면, 필자는 자전거를 타고 시멘트로 잘 닦아진 시골 농로(農路)로 한 40분가량 달리면서 잡된 생각을 떨쳐버리고, 한 곳도 순리로 되지 않는 곳이 없는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필자 자신을 생각해 보곤 한다. 사실, 시골이기에 매일 운동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필자는 이래서 지금 매우 건강하다.

 

그리고 4계절의 순환, 싹이 움트고, 줄기, 잎이 생긴 후, 열매를 맺는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직업은 '농사'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사실 그렇다. 땀 흘린 만큼, 공 드린 만큼 그만큼 결실이 된다. 집 앞 텃밭에 지난해에 고구마를 심고 비료를 한두 번 주었더니, 지난가을에 거의 애호박 크기만 한 것을 위시해서 짭짤한 수확을 한 바 있었다. 겨울철에 군고구마( 야끼모-やきいも)를 아내와 같이 저녁밥 대신에 먹으며, 지난 인생살이를 회상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삶이다.

 

필자는 이런 삶에서 바동거리는 욕심도, 어디에 얽매이지도 않는 자유 인으로써, 그저 순리대로 살아간다. 충동적인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후회할 일은 아예 차단하려고 한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필자 자신을 적나라하게 살펴본다.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고독한 삶의 연속이니 언제나 능동적으로 취사선택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 내다운 목적은 인생의 종점이 유종의 미(有終의 美)가 되기를 간절히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내 삶이다.

 

이젠 주변 눈치를 보는 일이 별로 없지만, 날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그리며, 내 가슴에 투영된 주님의 그 삶을 생각하면서, 나의 고독한 삶은 주님의 사랑만이 바다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바울이 말한바, "그리스도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 도다."( 고후 5:14) 여기 '강권'이란 원어로 더 세밀히 말하자면, <큰 파도가 엄습해 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초연(超然)해지는 감을 종종 느끼곤 한다.

 

신앙만이 순수한 실존적 자아(自我)로 돌아갈 수 있다. 유일무이한 내가 될 수 있는 곳에 초연이 가능하다. 남의 평가나 우쭐거리는 남과 비교해 보지 말아야 한다. 중국 명나라 때 최선(崔선)이란 학자가 초연(超然)과 관계되는 육훈(六訓)은 익히 잘 아는 바이나, 적어 보면 아래와 같다:

 

"1. 자처초연(自處超然)-자기 자신에 대해 초연하고 속세의 일에 구애받지 않는 것. 2. 처인애연(處人靄然)-남과 사귐에 있어 상대를 즐겁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 것. 3. 유사참연(有事斬然)-무슨 일이 있을 때 꾸물대지 말고 명쾌하게 처리할 것. 4. 무사징연(無事澄然)-아무 일도 없을 때는 물처럼 맑은 마음을 가질 것. 5. 득의담연(得意澹然)-일이 잘 되는 때일수록 조용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질 것. 6. 실의태연(失意泰然)-실의에 빠졌을 때라도 태연자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중국학자보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서, 나사렛 목수의 삶, 가족과 이웃까지 예수님을 미쳤다고 해도, 광야 40일간 허기진 실존 속에서도 그야말로 초연히 사탄의 시험을 물리친 것이나, 귀신 들린 자, 눈먼 자, 벙어리, 문둥병자, 창녀, 배고 푼 군중, 등 하층 구조에서 허덕이는 뭇 군상들을 사랑하셨던 박애주의자! 당당히 앞 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십자가에 죽으러 가는데도 개선장군처럼 진군한 주님이셨다.

 

가장 고독한 순간인 하나님 아버지까지도 외면하고 얼굴을 돌린 겟세마네 동산의 그 날밤에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는 주님의 결단 속에서, 가장 아픈 십자가상에서도 가상(架上) 칠언(七言)을 말씀하시면서, 그리고 끝내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그 초연 자약하신 마음! 그리고 삼 일 후에 부활로 승리하신 주님의 일생 그 초연함과 그 찬연한 삶이 흠모(欽慕)스럽기만 하다.

 

필자는 <초연(超然)>이란 시(詩)에 감동된 바가 많아서 여기에 적어 본다.

 

초연(超然)/이비아: 다정한 달빛이 내려와도/내 겨울 뜨락은 고적하고 차다/가을의 조락(凋落)이 허구의 꿈인 양 서 있는데/철모르는 새 한 마리 오늘도 날아든다./봄바람의 속삭임을 전해 주려는가!/머지않아 기다리는 봄이 오면/너의 둥지에 봄빛이 찾아가리라./지금은 봄의 평안과 무탈을 빌 때/근심하지 말고 자랑도 하지 말라./나는 모든 소리에 초연하여/무심(無心)의 강물로 흘러간다./나의 詩 그리움은/외로운 별빛이 되었나니/밤하늘이라면 알아보리라/몰라본다고 하여 무에 서글픈 일이겠는가./이제로부터/내 진실했던 사랑은/슬픔의 뜨락 깊이 발아(發芽)되어/침묵의 푸른 상록수로 자랄 것이다.

 

'이비아'란 시인이 누군지 아는 바도 없다. 단지 그의 시상에 반했을 뿐이다. 다정한 달빛이 교교히 비추어 주어도, 환경이 아무리 낙심된 분위기라도, 자기 실존이 처한 겨울이란 절기는 자연의 모든 생명을 쓸어 가버린 그 냉엄함에 하늘과 땅이 온통 쓸쓸하고 적막하다는 것이다. 가을에 떨어져 마당에 뒹구는 낙엽이 언제 낙엽이 되었느냐는 듯이 새봄을 재촉하는 것과 같이 보이고, 겨울이란 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 한 마리가 '봄의 전령'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새봄, 새 희망, 새 가능성과 활기를 위해서, 그 좋은 일을 위해서 너무 경망히 굴지 말자는 것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가 있을 수 있으니, 걱정도 교만도 말고, 무심한 강물처럼 그렇게 유유히(초연히) 살아가자는 것이다. 늙는다고, 가난하다고 한탄치 말고, 가슴에 '그리움'(사랑, 염원, 목표)이 없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란 말이다. ‘아무리 캄캄한 밤하늘이라도 별 한 개쯤은 보인다.'라는 서양 격언이 있듯이 말이다.

 

다만, 하나님께! 이웃에게!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물에! 진실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슬픈 사연 속이라도, 검은 먹장구름이 앞을 가려도, 진실과 성실한 마음의 소유자는 능히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진심(眞心) 속에서만이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나의 나 된 것은(초연히 진실하게 삶을 사는 자) 하나님의 은혜'라는, 영원한 삶으로, 상록수처럼 청청하리라는 그 믿음만이 ‘소망의 놀을'을 뜨게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