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수상문>: "바람이 분다. 애써 살아야지!"
-자아를 無化 시키려는 어떤 바람에도 전진하자!-
지난 주일에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의 장시(長詩) 중에서 마지막 연(聯)에 나오는 "바람이 분다. 애써 살아야지!"라는 한 구절(句節)을 설교에 인용하였다. 설교 후에 어느 장로님이 발레리 시 '해변의 묘지'를 복사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어제 삼일 기도회 때, 복사를 해 드렸다. 시 한 구절이 그를 무척 감동시킨 모양이다. 지극히 짤막한 시 한 구절이지만 함축성과 상징성이 필자를 매료시켰기에 설교 예화로 사용한 것뿐인데 효과가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다.
폴 발레리(Paul Valery,1871-1945)는 신앙적 절대주의자인 '폴 클로델'과는 대조적인 위치에서 20세기 프랑스 전반의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그는 남(南)프랑스 지중해안 '세트'에서 코르시카 섬 출신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의 제노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황혼의 땅인 북방 유럽인과는 다른, 지중해 정신을 타고났고 그 속에서 자라났다. 지중해 정신이란 모호하고 신비하고 격정적인 정신에 비하여 명쾌하고 지성적이며 정적인 정신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코르시카 섬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제노아로부터 압제적인 지배를 받아 오다가, 1736년에 코르시카의 애국지사들이 제노아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켰다. 거의 승전고를 울릴 무렵에 제노아가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해서 결국 코르시카는 프랑스에 항복하고 만,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역사와 피가 화합되어 시인 폴 발레리를 출생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예리하게 심미주의와 상징주의적인 인생을 관조(觀照)한 시인이 되었다.
보통 '묘지'는 산중이나 평원에 있는 것이 우리들의 통상 관례요, 의식이다. 그런데 프랑스 '세트'에는 바닷가에 '묘지'가 있었던 같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느끼고 있는 정서의 일단은 바다라는 것은 활력이 넘치고 꿈틀거리는 한 생명체로 대자연의 위압적인 힘의 상징을 연상케 한다. 동시에 이와는 반대로 '묘지'는 일체의 것이 죽어 있는 정적(靜寂)이 흐르면서도, 그 상징성은 비애(悲哀)가 깃든 허무성이다.
발레리는 이 양자를 시어(詩語)를 통해서 창조적인 한 예술로 승화(昇華)시켰다. 필자는 그의 너무나 상징적이고 심미적인 '해변의 묘지'란 장시를 몇 번이나 읽어 보았지만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려웠다. 다만 "바람이 분다. 애써 살아야지!" 이 한 구절이 주는 감동에 취해 버린 것으로 족하게 생각하고 그 느낌을 지금 여기에 적어 나가고 있는 중에 있다. 그래, 필자가 옛날에 가르쳤던 신학교 제자 중에 두 사람이 중한 병에 시달려 지금 투병하면서 고투하고 있다. 한 목사는 한국에서 간 질환으로, 다른 한 목사는 미국에서 대장의 이상으로 모두 수술 후 지금 요양 중에 있다.
이런 아주 특별한 연줄을 생각하면서, 생명의 상징인 바다와 생명을 삼켜 버린 묘지를 대비시키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원하는 심정은 투병하는 이들 모두가 생명의 상징인 바다이기를 바라면서 "바람이 분다. 애써 살아야지!"라는 말이 그렇게 실존적으로 필자를 매료시키면서 엄습해 온 적이 없었다. 그래! 부디 도전해 오는 무서운 질병의 바람이 불더러도 기어코 '애써 살아야지!' 강인한 정신력으로 '얍복' 나루에서 투쟁하여 이긴 야곱이기를 바란다. 자아를 무화(無化)시키려는 바람에도, 단연코 '애써 살아야지!'로 승리하기를 빈다.
또한 오늘의 기독자들! 공기가 빠져 버린 진공의 지대로 바람은 불어오는 법인데, 그러기에 꺼져 가는 심지(心志)처럼 되지 말고, 강력한 성령(프뉴-마토스, 헬라어 어원의 의미는 '바람'이란 뜻)의 역풍으로 신앙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도 "바람이 분다. 애써 살아야지!"가 그렇게 매력적인 언어의 묘미일 수가 다시없다. 어떨 때는 성공의 바람이 불지만 그 속에 유혹의 바람도 있다. 그 유혹이 손짓해도 유혹의 바람을 이기고 '애써 살아야지' 하는 개가(凱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떤 자들에게는 간난(艱難)의 바람, 질고의 바람, 실패의 바람도 불어올 수가 있다.
지나친 유혹의 바람도 있으려니 하면서 애써 살아야 하겠고 반대로 좌절의 늪으로 몰아넣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바람이 없는 조용한 무기력하고 몽롱한 정신없는 태만(怠慢)이란 무풍지대도 있을 것이다. 무풍지대도 일종의 위기의 바람인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바람에도 '애써 살아야지!' 하는 심지(心志)가 있어야 하겠다. 성령의 '맞바람'으로 도전과 유혹으로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승리하는 삶으로써 '애써 살아야지!' 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폴 발레리의 어록(語錄)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필을 놓는다.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2011. 3. 30.
山下연구원장: 양 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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