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신학이론마당(75)

52. “오직 은혜로”와 “오직 선행으로”

solomong 2025. 4. 29. 11:33

52. “오직 은혜로”와 “오직 선행으로”

 

오늘은 루터 종교개혁 506주년을 맞는 날이다. 그래서 그의 <오직 은혜와 오직 선행>에 대한 그의 사상을 묵상해 보려고 한다. 중세 기독교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기초한 구원론을 가르쳤다. 이는 “유사성을 이루어 같은 종류가 되는” 방법론을 가진 사상이었다. 즉 완벽한 하나님과 유사한 일들을 행함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세 천년 간 구원이란 인간이 선행을 통해 신과 유사해지는 노력이며 “성취”였다. 그러함에도 루터는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갖는 내적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 루터는 위 구절을 새롭게 이해함으로 큰 진전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of God)는 중세 사람들에게 도달해야 할 ‘기준’ 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의의 기준에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을 루터는 잘 알고 있었다. 그 기준이 인간이 도달하기 힘든 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기쁜 소식”, 즉 복음이 되겠는가! 루터는 이 구절을 역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의’를 얻게 되는 것이 “기쁜 소식”이 되려면 결국 인간이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역으로 내려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선물’이 바로 ‘은혜’인 것이다. 본래 이 두 단어는 고대 세계에서 같은 의미를 지녔다. 또한 ‘의로움’이 하늘의 선물이라면 그동안 이를 성취하려고 매진한 모든 중세적 선행들, 즉 금식, 자선, 독신, 순례, 유물, 십자군, 면죄부, 교황에 대한 복종 등은 부차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의 사상은 한마디로 중세 천년의 전통을 뿌리까지 뒤흔든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발견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인간들에게 소망의 메시지였다. 삶의 모든 의미와 참 안정은 인간이 쌓는 선행 탑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와 생명으로부터 출발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는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졌고 새 생명은 주어졌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루터는 오직 은혜만이 우리를 죄와 악한 세상에서 구원한다는 강한 믿음을 말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복과 물질이 많아지는 것을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거짓된 신앙이다. 루터는 이를 소위 “영광의 신학”(Theology of glory)이라 부르며 거부하였다. 오히려 세상의 가치들을 추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따르는 삶인 ‘십자가의 신학’(Theology of cross)만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루터에게 교황이나 중세 기독교의 모습이 거짓으로 보였던 것은 바로 외적인 요소에 대한 치중과 예수 이름을 이용한 상업적 신학, 십자가 없는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종교성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루터 사상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회귀할 경향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기복을 위해 종교를 갖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이런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십자가를 향한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다. 루터의 사상은“오직”을 뜻하는 5개의 라틴어 ‘솔라’(sola, only)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은혜(sola gratia) 의로워지며, 십자가에 대한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구원에 이른다.

 

또한, 교황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o)가 교회의 중심이며, 공의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 최고의 규범이다. 루터의 이 주장은 교황이 필요 없는 새로운 기독교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서 루터는 진정한 의미의 ‘오직 행함’(sola opera)을 강조하였다. 면죄부 구입, 유물 수집 같은 “중세의 선행”들을 거부하고 ‘이웃 사랑’만이 참 선행(hona opera)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