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침착하고 익살스런 설교
1). 설교자는 왜 흥분하는가. (흥분하게 되는 생리와 심리 상태): 젊은(갓 목사 안수 후)설교자나, 목회 초년병으로써의 목사나, 아니 평생을 목회한 퇴임 때까지, 회중이 많을수록, 큰 교회 강단에 서거나, 유명한 설교자로 정평이 있는 교회 강단에 설 때나, 같은 교회에 수년간 설교했지만 특별한 집회나, 내빈 회중이 많이 왔거나, 교회 환경이 변한 상태나 등등일 때, 설교자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조금 떨리는 듯한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것은 어쩐 일이며, 어떻게 하면 침착하게 설교를 잘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흥분했기 때문이다.
흥분한다는 것은 주의(注意) 범위의 협착화 현상이 발생하든가 주의 확산의 현상이 발생한 심리 상태를 가리킨다. 주의 법위의 협착화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일부만이 의식에 들어오고, 초점 이외의 부분은 무시되는 듯한 상태, 멍하여지는 무아몽중의 상태를 가리킨다. 또 주의 확산은 당면한 사태의 본질이 아닌 회중의 웅성거림에 신경을 써서, 주의가 이야기에 집중되지 않는 상태이다. 결국 흥분한 상태는 주의가 적당히 통제되지 않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흥분한 때에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도대체 흥분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교회당 분위기, 회중, 상황 등 설교자를 에워싼 환경에 설교자가 잘 융합하지 않는 데서 찾아지는 불안감이다. 교회당 분위기: 새로 단장한 의식적 분위기, 넓은 교회당, 본 적이 없는 처음 대하는 교회당. 회중: 회중이 많이 모였다든지, 지위와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 참석했다든지.
상황: 책임을 지는 설교를 해야 하는 경우라든가, 전후에 능변의 설교자들이 대기하는 상황(노회나, 총회 개회예배)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오는 것, 결국, 장면의 조건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수준급 설교자라도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오랜 경험을 쌓은 능숙한 설교자라도 강단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술회하는 분이 많았다. 유명한 설교자 일수록 그리고 주의가 깊어질수록 환경에 대하여 민감하기 마련이다.
2). 침착할 수 있는 방법: 청중을 사뭇 넘본다. 제아무리 위엄 있게 보이는 사람도 약점은 다 있다. 그들도 치통이 생기면 어린애처럼 울상을 한다. 가령, 장관급 인사가 줄지어 앉은 자리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더라도 “장관이면 어때!” 하는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인생의 표리를 날카로운 눈으로 들추어 낸 소설가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 1874-1965)은 “달과 6펜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명망이 높은 정치가와 성공한 군인 등의 위대함이란 요컨대, 그들 인간 자체보다 그들이 차지한 지위에 수반되는 위대함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사정이 바뀌면 곧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가령, 너무나 자주 보이는 실례이나 은퇴한 총리는 이미 젠 체하는 정치 평론가에 불과하든가, 군대에서 예편한 장군은 마음 좋은 할아버지에 불과하다.” 고 했다. 사회적 지위와 직함에 이끌리지 않고 인간을 보는 것이다. 과장, 사장, 회장, 장관과 같은 직함을 떼어 놓고 누구나 청중은 하나 같이 설교자의 말씀을 듣는 참석자라고 생각하면 설교자는 이제 더 이상 비굴해 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흥분하지 않는(침착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였으나,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준비를 착실히 해 놓은 설교자는 자신이 생기는 법이다. 야구팀의 어떤 감독은 신인 타자를 등장 시킬 때, 며칠 전부터 “저 피처가 던지는 볼의 방향을 잘 봐둬” 하고 미리 일러 놓는 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그 타자는 대개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타석에 선다는 것이다. “충분히 준비돼 있다.” 고 하는 안정감이 흥분의 와중에서 설교자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3). 웃기려고 하면 웃지 않는다: 미국 교회에서는 설교에 유모는 필수 조건처럼 여긴다. 그 이유는 웃음을 유발하여 회중의 무장을 해제시켜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도 남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인간관계 등에서 무척 호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므로 회중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뿐만 아니라 웃음은 설교자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고, 회중을 설교자의 이야기에 끌어들이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와 그날의 회중의 정서적 감정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감지하고 유모를 해야지, 함부로 하면 오히려 민망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 순간의 기지나 적절할 때의 유모가 통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웃기려 하면 오히려 회중은 웃지 않는다.*유모를 위한 유념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같은 내용을 반복해 말하지 않는다. 가령, 평소에 거만하게 굴던 윗자리의 사람이 뜻밖에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굴러 넘어져 머리에 혹이 생겼다면 눈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우습다. 그러나 자주 넘어지면 웃음은 사라진다. 혹여 이상이 있지나 않는지 동정이 생긴다.
(2).무리하게 억지를 쓰지 않는다. 우스개 예화는 설교자가 말씀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한 가지 자료이고 부품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재미있는 것일지라도 예화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우스개는 금물이다. 본 설교 말씀에 부합하는 예화라야 적절한 것이다. 그리고 설교 25분에 자주하는 것도 금물이다. 서론에 한 마디, 본론에서 한 마디 2번으로 족하다고 생각된다. 자주하면 설교자가 아니라, 만담가로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3). 미리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스운 애기입니다. 여러분이 크게 웃을 걸작입니다. 요컨대, 결론은 이렇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재미있지요.” 하고 내용의 기법까지 모두 알려주면 곤란하다. 흔히 설교자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먼저 말하고 들려주면 회중의 웃음 효과가 크게 감소되는 것은 물론이다.
(4). 자신이 먼저 웃지 않는다. 우스개 예화는 시치미를 떼고 말하기 때문에 웃음의 효과가 증폭되는 것이다. 웃길 때는 결코 먼저 웃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5). 독창성 있는 예화를 한다. 독창성 있는 우스개를 하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얼굴에 수염이 별로 없는 김 목사에게 “얼굴에 수염이 없으니까 아침에 면도 시간이 무척 짧겠습니다.” 고 말을 걸 때, 김 목사가 “아니죠. 그렇지 않죠. 수염이 없으니까 수염을 찾다 보면, 면도 시간이 길죠.”
(6). 뒷맛이 나는 유모를 하라. 설교에 말의 간질거리는 것으로만 하지 말고, 뒷맛이 남는 유모가 바람직하다. 유모는 단지 우스개를 하는 말이 아니라, 본문의 진리를 더 쉽게 설명하는 것이나, 따스한 인간미가 넘치는 세련된 지적인 웃음이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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