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물관열람실(72)

21. ‘계절풍' (대구일보)의 칼럼

solomong 2025. 3. 7. 11:18

 

 

21. ‘계절풍' (대구일보)의 칼럼

 

* 1970년 8월 19일 대구일보사 문화부 기자 홍 경 표 씨로부터, 대구일보의 문화면의 ‘계절풍’란의 글을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은바 있었다. 당시 나는 신명여고 교목으로 재직 할 때이었다. 매주 한편씩 써 보낸 글이 신문에 기재된 것을 ‘스크랩’해 둔 것이 우연히 내 서재에서 발견되었다. 55년 여년 전(30대)에 쓴 글을 읽어 보니 보잘 것 없고 미숙한 면들이 많이 보이나, 내 젊음의 정열과 순정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어서 조금 수정해서 옮겨 본다. 그래서 여기 S. M.에서 교목으로 활동할 때, 쓴 칼럼이라 여기에 부록으로 편집 한다.

 

第1話: <인생 축소판>

 

인가(人家)와 단절된 학교사택 내에서 우리 집과 다른 두 가정이 이웃하여 살고 있기에 우리 집 꼬마들도 자연히 울안에서만 다른 두 가정의 꼬마들과 희로애락을 싣고 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곳 세 가정 중에 한 집에서 ‘텔레비전’을 사게 됨으로써 문제의 발단은 시작되었다. 결국 우리 집 아이들은 나를 붙잡고 우리도 ‘텔레비전’을 사자는 설음의 하소연을 터트리며 도전해 왔다. 그래서 나는 먼저 동심(童心)에서 우러나오는 저들의 진실 된 호소를 듣기로 했다.

 

내용을 듣고 정리해 본 결과, 세 가정 꼬마들 간에 벌어지는 미묘한 삼각관계였다. 즉 이 심각관계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쟁탈전이었다. 어떤 때는 ‘텔레비전’을 가진 가정의 꼬마가 1대(對)2로 못 가진 두 가정의 꼬마들에게로부터 소외되어 고독을 되씹게 되고, 그런 나머지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서 ‘텔레비전’을 보여 주면서 선심작전을 펴서 자기들의 편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우쭐한 기분으로 이젠 2대1이 되었다는 승리감에서 우리 집 꼬마들을 골려 준다는 것이다. 이래서 우리 집 아이들은 울분을 터트리다 못해 먹을 것을 가지고, 또는 장난감으로 빼앗긴 벗을 유인(?)해서 자기네 편을 만들어 승리의 쾌감을 누린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 삼각관계에서 중간에 끼인 집 꼬마들의 처신이 퍽 재미있을 것 같다. 어떤 때는 어느 쪽을 가야할지 입장이 곤란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어느 양쪽으로부터 잘 하면 톡톡히 늘 이익만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삼각관계가 빚어낸 이야기가 우습기도하고, 한편 서글프기도 한 것은 이것이 「인생 축소판」이 아닌가 할 때 느끼는 뒷맛이 씁쓸한 감정이었다.

 

오늘의 기성사회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경우가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갈등!(물질. 권력. 지식 등 전반에 있어서) 그 두 사이에서 어떻게 처세할지 망설이고 있는, 그래도 양심가의 고충!, 이 두 사이에서 적당한 기회를 봐서 입신출세를 하는 기회주의자의 이득!, 참 세상은(인생은) 요지경이로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고 교훈 하셨다.

 

결국 이 삼각관계는 서로 먼저 주는, 아니!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진실 된 사랑으로 주는(自己 贈與的 愛情,Self-Giving Love) 그 곳에 아름다운 조화가 있지 않을까? 물론 동심의 세계를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다만 이것이 「인생 축소판」이기에 하는 말이다.(1970.9.22일자).

 

第2話: <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

 

필자가 학원 카운슬링(相談)을 맡게 된지 1년이 조금 지났다. 본래 필자의 사명은 「미션스쿨」에서 「그리스도」적 인격형성을 위한 기독교 교육을 담당한 것이 주 임무이지만, 현대 학원 선교에 있어 「카운슬링」을 통해서 복음(福音)을 전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을 착안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이 방면에 역점을 두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교실 또는 잔디밭으로 학생들을 찾아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친숙한 관계를 맺어 대화의 광장을 터놓았다.

 

저들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친구로 인상되게끔 하고 수업시간마다 짬짬이 심각한 문제의식을 던져 주면서 괴로운 문제를 가진 자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같이 이야기 해 보자고 간절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그 후 많은 클라이언트(來談者)들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피곤을 느끼면서도 침울한 얼굴로 찾아 온 그들이 상담 후에 명랑한 얼굴로 돌아가는 그때가 가장 보람차고 흐뭇한 순간임을 느끼기에 오늘도 이 일을 쉬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느 분이 필자에게 일 년 카운슬링의 총 결산의 백서를 간단히 쓰라고 한다면, 서슴지 않고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형편상 그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고, 또 생명에 가까우리만큼 비밀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카운슬러(相談者)이기에 말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들이 가정에서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받아먹지 못하고 자라난 「사랑 결핍증 환자」들이란 것이다.

 

물론 사랑 과식 자는 배탈이 나지만-이들 중엔 일직이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한편을 여윈 학생들도 있고, 부모 간 애정에 금이 간 그 여파로 오는 수도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부모가 있으면서도 사업에 몰두한 나머지 자녀교육에 등한시. 무관심. 방임 상태에도 있고 자녀의 심리 상태를 몰이해한 탓도 있다.

 

또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상당수의 지성인의 부모들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머니가 직장생활로 집을 비우고 없을 때 하학 후 그 쓸쓸함과 허전함은 이루 형용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격이 비뚤어지고 문제아가 발생하게 됨은 아무도 부인 못할 것이다. 학비만 대어주고, 기름 끼 있는 음식만 먹여주고, 반반한 옷이나 지어주면, 교육은 학교 당국이 책임지리라고 생각한다면, 인식 착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인간은 원래가 빵만으로 살지 못하고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찌 이들 만이랴! 인간 전 실존이 그렇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필자의 지나친 비약적 판단일까? 각박한 현대 상황 속에 사랑의 훈풍이 아쉽다. 따스한 사랑의 바람아 어서 좀 불어 오려므나!(1970.10.9일자).

 

第3話: <생의 정리>

 

오늘은 시내 X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스잔나」란 영화를 보고난 감상문을 한 번 써 보려고 한다. 이것도 아마 ‘철 따라 부는 바람’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또한 그렇다고 극장 측으로부터 선전 「커미션」이라도 받아먹고 쓰는 것은 아니다. 내 발로 걸어가서 내 돈 다 주고 본 영화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감상이 구구각각 일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쇼펭하우엘」의 염세철학을 연상하거나,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제행무상이라면서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의 사상을 연상 할지도 모를 것이고, 영화 감독이 보면 여주인공의 독특한 개성미를 지닌 성격배우의 명연기를 감탄 할지도 모르겠다. 어찌했던 저마다 각기 다른 감상담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대로의 관점에서 느낀 점은 여주인공 「스잔나」가 「뇌 암」이란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 살 수 있는 6개월(실제는 2개월이 더 연장되었으나)이란 시간을 부정적 또는 소극적으로 당장 자살하거나 아니면 미쳐서 발광을 하는 것이거나, 마지막 판이니 싫도록 놀고, 먹고 마시는 체념적 삶이 아니었다. 6개월이란 세월을 아껴 가면서 묵묵히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생의 정리」를 하는 장면들이 퍽 인상적이고 깊은 감명을 자아내게 했다.

 

물론 죽음의 날이 임박 할수록 불안감은 없지 않으나, 그러나 지금까지 오만하고 질투심속에서 잘못 살아 온 그녀의 삶을 부모에게 효도, 언니에게 진실 되고 따뜻한 정의(情意),사회를 위한 봉사로써 고요히 그리고 은밀한 가운데서 차분히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 정말 인생극의 막을 내리는 장면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관객 중에 「틴에이저」들과 숙녀들이 훌쩍 훌쩍 우는 소리를 내면서 구경을 한다.

 

한 여인의 죽음을 서러워 한 나머지 감수성이 예민한 심리적인 탓인지, 아니면 한국인의 민족성에서 오는 비극을 좋아하는 심사에서 오는 푸념일까, 아니면 예술의 삼매경에 몰입해서 공명 공감 하는 예술의 재창조에서 일까, 여러 가지로 추상해 보았다. 하였든 결국 인생자체가 세상에 생이 던져질 때부터 벌써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언제 어디서 인지는 몰라서 그렇지, 영원의 시공에 비한다면, 60년도 6백년도 결국 6개월과 같은 짧은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 시간도 역시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고 낙엽이 한 잎 두 잎 자꾸만 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생(세상)은 죽음을 기다리면서 사는 인생 대기실이 아닌가!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그렇다면 우리들의 남은 생을 유감없이 보람찬 일을 순간마다 채워 나간다면, 그 일생은 얼마나 값질 것이며, 인간 사회는 보다 밝아 질 것이다. 이 같은 나의 영화 감상 이야기가 한낱 감상주의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관람료 2백5원이 얼마나 비싼 것이 될 것인가!(1970. 10. 24일자).

 

第4話: <호칭 유감>

 

학생들이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대할 때, 그들이 부르는 호칭이 몇 가지나 된다. 학교부임 인사를 할 때 좀 인상적이고 친근감을 주면서 유모어를 썩어가면서 재미있는 말들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분들을 대하니 마치 처제들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사람’ 이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더니 장내 전체에 대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 후 어떤 학생들은 떼를 지어서 「형부 예!」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나의 본의를 몰라주고 아무렇게나 「형부 예!」하니 입장도 곤란하거니와 당장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마 새로 부임한 나에게 호기심과 더불어 한 번 골려보자는 심사에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웃음으로 받아주고 말았다. 이 호칭은 얼마 안가서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나는 「목사님 예!」 라고 불러 주었으면 더 좋겠다고 했다. 여기엔 나대로의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

 

그것은 성서에 목사는 목자(牧者), 학생들은 양(羊)떼로 비유하면서, 동시에 목자는 양떼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양떼는 목자를 신뢰하는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학생들이 나를 보고 「목사님 예!」 할 때 나는 늘 목자와 양떼의 관계를 생각하고 소스라쳐 그 뜻을 되새겨 보곤 한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일이었다. 방학 중에 서신상담을 청해 오는 학생들 중 어떤 학생은 「목사 선생님 예!」라고 특이한 호칭을 사용해 온 서신을 받고, 한참 동안 우리 집 사람과 더불어 웃어 본 적이 있었다.

 

아마 이 학생은 「목사님 예!」하려니 좀 무엇인지 쑥스럽고 그렇다고 「선생님 예!」하려니 그것도 어색한 것 같아서 두리 뭉실 합해서 「목사 선생님 예!」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두 호칭을 다 부르면 아마 내가 좋아서 빨리 답장이라도 해 줄줄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에라! 그래라!」하면서 그때 즉석에서 답장을 해주었다.

 

그런데 요사이는 흔히 학생들로부터 「선생님 예!」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또 다른 선생님께 대한 호칭이 늘 습관에 젖어서 「선생님 예!」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셈 예!」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선생님」이란 3음절이 1음절인 「셈」 예!로 변하는 묘미가 더욱 재미가 있다. 이것은 「선」에서 「서」가 나오고,「생」에서「ㅣ」가 나와서 「세」가 되고, 「님」에서 「ㅁ」만 가지고 와서 「세」에다 「ㅁ」을 붙여서 「셈」으로, 되는 이른바 음절 축약 현상으로 풀이를 나 혼자 해 보았다.

 

현대가 「스피드」시대이니 언어도 간략히 표현함으로써 시간적으로 노력을 절약하자는 노력 경제의식이 작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쩐지 여학생의 말씨가 좀 경박한 것 같고 인정미가 없는 어감(語感) 같아서 그렇게 달갑게 받고 싶은 호칭은 아니라고 느껴지지만, 타면으로는 여학생들의 ‘애교’의 발로라고 생각도 해 본다. 이런 생각도 「님」자가 떨어진 섭섭한 정서 때문일까. 우리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신문을 보고난 학생들로부터 수업 시간 중에 공격을 받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1970.11.5일자).

 

第5話:<벙그레 운동>

 

11월 마지막 목요일은 세계가 공통적으로 지키는 추수감사절 날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조금 당겨서 지난 주간에 추수감사절 행사를 했다. 마침 필자가 이 행사를 위해서 장식 부문을 맡게 되었다. 뭐 강단 앞에다가 오곡백과는 다 차릴 수 없고 감. 사과. 배추. 무. 볏단 이렇게 진열해 놓았다. 그런데 넓은 강당에 무엇인지 허전하고 음산한 감이 들어서 좀 감사절 행사에 더 뜻을 돋우어 줄 수 있는 장식이 없을까 연구 끝에 한 묘안을 발견해 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벙그레」 웃는 그림 두 장을 강당 앞 양편 벽에 그려 붙이고 그 밑에, “항상 기뻐하라.”는 성경 구절을 써 붙여 놓았다. 그런데 미술 선생님이 어떻게나 웃는 여학생의 그림을 잘 그렸던지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가 소리를 내어 웃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정말 이날은 화기가 감도는 가운데서 뜻있는 추수감사절 행사를 잘 보내게 되었다. 원래 필자가 생각했던 바의 목적은 일단 달성된 셈이었다.

 

일찍이 우리나라의 정치가요, 교육가였던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님은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차오. 훈훈한 기운이 없소. 서로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네 사회가 너무 무정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정한 사회로, 사랑과 화기가 맴도는 민족을 만들자는 말이다. 사실 11월은 서리가 내리고 북녘엔 눈이 오는 달이다. 멀지 않아 시베리아 벌판에서 서북풍이 마구 휘몰아쳐서 천지간에 찬 냉기가 가득 차는 계절이 다가오지 않는가!

 

그러면 우리네 사회 도처엔 더 한층 냉기가 도는 바람이 일 것이다. 그러기 전에 이 대구일보 계절풍란을 통해 벙그레 웃는 운동을 좀 전개하자! 「벙그레」 웃는 그림을 버스 안에도 붙이고, 정류소에도 붙이면 좋겠다. 그러면 차장도 웃고 손님도 웃을 것이다. 기차역 대합실에도, 학교나 병원 복도에도 붙이자. 현재 우리네 삶속엔 서로 마주치는 얼굴들이 너무 무표정하다. 너무 무뚝뚝하다. 좀 「스마일」하자.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옛날 어른들이 뜻 없이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웃으면서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될 것이다. 웃음은 소화제이다! 웃으면서 일을 하면 일이 잘 될 것이다. 「스마일」은 힘이다! 일찍이 학창 시절에 잘 웃지 않는 수학 선생님을 우리 학생들은 「시베리아」라고 별호를 지어 부르던 시절이 기억난다. 저마다 벙그레 웃는 습관을 기르자! 어느 분이 필자에게 항상 웃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웃는 연습을 하라고 충고해 주던 것도 생각이 난다. 웃는 연습이라도 좀 하자! 훈훈한 마음으로 「벙그레」 웃는 모양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정이요. 가장 행복한 모습이 아니리오.(1970.11.23일자).

 

第6話: <하마(下馬)와 하차(下車)>

 

일 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 향교(鄕校) 정문 입구에 「절도사이하 개하마(節度使以下 皆下馬)」란 돌로 된 표지판을 땅에 세워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현대 감각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뽑아 버렸다고 한다. 역시 흐르는 역사의 바퀴를 역행시킬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는 조선조시대 경상도 감사가 있던 도청 입구에 세운 것을 옮겨 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절도사는 고려 때는 지방장관이기도 했다.

 

조선조 때는 절도사(節度使)란 외직으로 지방 병영(兵營)의 장관인 병사(兵使)라고 했는데, 병사는 병마절도사(陸軍, 水營은 水軍節度使의 약칭으로, 해군을 말함)로써 품계는 종2품이었다. 병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권세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경상도 감사(觀察使라고 하는데 품계는 역시 종2품이었다.)가 있는 곳이니, 절도사 이하의 벼슬은 일단 말에서 내려서 감영(監營)으로 걸어서 들어오란 말이다. 물론 이와 같은 규례는 봉건사회의 구조 속에 으래 있을법한 일이다.

 

그것은 그렇고, 요사이 어느 학교에서든지 이런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교문 입구 수위실 앞을 통과하여 학교 건물 현관 앞까지 자동차가 도착하는 광경 말이다. 물론 지급한 용무나 무겁고 귀중한 물건 운반이나 환자가 타고 올 경우 등 등의 특별한 예외는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아니고 관용차나 사회 유지들의 자가용차나 택시들이 학교 건물 현관 앞까지 도착하는 예가 있으니 말이다. 옛날 봉건사회 구조 속에서는 귀하고 높으신 분들의 행차에는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윤리는 엄격하고 딱딱한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다. 보다 더 상호의 인격존중과 바른 질서 속에서 양식과 지성에서 우러나오는 예의의 관계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분일지라도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는 학생들 사이로 달려온다는 것은 교통사고도 생길 염려도 있거니와 아직도 우리네 사회가 서구와 같이 「마이 카」시대가 도래 할 만큼 그렇게 풍요한 사회는 아니다.

 

한창 정서적으로 격동하는 소년소녀들에게 심리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나쁜 영향을 주는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이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네 기성인이 내일의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될 그네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끼는 아량이 없다면, 우리네 스스로를 무시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사실 그네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우리 기성인들이 아닌가! 운동장에 뛰고 있는 그들 속에 장래의 위대한 정치가. 과학자. 예술가. 경제인. 학자 등등의 인물들이 자라나고 있지 않다고 그 누가 부정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바로 내일의 역사 창조의 주역들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멀리를 보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쉽다. 지금도 미국엔 「스쿨버스」가 지나가면, 안전운행을 하고 양보를 한다. 대통령 차라도 「스쿨버스」를 앞질러 가지 않는 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원을 신성하게 여기고 교문 앞에서,「막론하인 개하차」(莫論何人 皆下車)함이 옳은 도리가 아닐까?(1970.12.12일자)

 

第7話: <성탄절의 음미>

 

유명한 신학자요 실존철학자였던 「Kierkegaard」의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곳에 한 젊은 왕자(王子)가 있었다. 그는 장차 왕후가 될 아름다운 여인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우연히 그가 큰 도시의 빈민가로 말을 타고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한 아리따운 아가씨를 발견하였는데 첫눈에 살짝 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당장 말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왕자의 체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환궁을 하고나니 그녀에 대한 연모의 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눈에 삼삼, 귀에 쟁쟁, 그만 상사병이 들었다. 그런데 왕자에게 있어 한 가지 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순진한 그 여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왕자이기에 명령으로 그 여인의 사랑을 강제해서라도 빼앗아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강제는 사랑의 모독이기 때문에, 왕자는 그 여인의 자발적이고 순수한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한 결혼을 원했다.

 

또 그녀 편으로 봐서 왕후라는 그 「자리」에 매혹된 동기에서 결혼에 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랑의 진실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농부로 가장을 하고 그녀의 환심을 얻은 후에 왕자의 신분을 밝히는 「스릴」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다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최후로 큰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사랑을 위해서 왕실(왕관)도 버리겠다!」는 것이다. 결국 왕가의 의복을 벗고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에 가서, 직업은 목수로 일을 했다.

 

그리하여 그가 밤낮 일을 하는 중에, 또는 저녁이 되어 일손을 쉬는 동안에 그들과 친숙하기에 힘썼다. 그들의 흥미와 관심꺼리를 같이 이야기하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쓰면서 어려운자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극히 자연스런 가운데서, 그 빈민가의 여인과 사귀게 되었다. 결국 서로가 순정의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왕자인 목수가 그 여인을 순전히 사랑했고, 빈민가의 소박한 그녀도 목수를 순수하게 사랑했다.

 

그리고 종내 왕자인 목수는 일개 목수를 사랑해 주는 순수한 사랑의 원리에 합격한 그녀에게 왕비로서 자기 정체를 폭로했다. 확실히 멋있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필자가 굳이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이 이야기의 뜻을 벌써 짐작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역사 세계에 오신 의미이다. 인간이 되시되, 가장 낮고 천한 인간이 되시고, 가장 쓰라림을 맛보는 인생이 되셨다.

 

그렇기에 그만큼 인생고를 철저히 맛보았기에 인생고에 허덕이는 인생들의 구주(救主)가 되시고 친구가 되시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금의 영광으로 군림할 수도 있으나 가장 약한 어린 아기로 말구유에 겸손히 탄생하셨다. 힘과 무력과 꾀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폐부를 찔러 가슴에서 자유로이 솟아나는 사랑의 응답을 받는 것으로 진정한 문제 해결의 길을 터놓았다. 이 원리는 「종교」에서만이 아니라, 인생도처에 응용할 원리이다. 이 원리가 적용되는 곳에 참 성탄절의 맛을 알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