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물관열람실(72)

20. '매일 춘추'(대구 매일신문)의 칼럼

solomong 2025. 3. 5. 10:57

 

20. ​'매일 춘추'(대구 매일신문)의 칼럼

 

* 1980년 8월 말경에 대구매일신문사로부터 9월. 10월 두 달 동안 ‘매일춘추’란에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당시 나는 도미 유학을 마치고 영남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5 여년 전되는 때였다. 내 일생을 통해서 볼 때, 시공이 점철되는 부분들이기에 여기에 다시 옮겨 본다.

 

第1話: < 옷이 날개라지만....>

 

몇 해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어느 겨울날, 막내 동이를 업고 시장에서 돌아 온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꼬마를 내게 맡기고 외투 옷으로 갈아입고, 급히 나가버렸다. 은근히 걱정스럽기만 했으나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호전된 기분으로 아내는 돌아왔다. 그리고는 자초지종 이야기를 꺼낸다. 빵집에서 식빵 하나를 싸달라고 하면서 돈을 먼저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분주해서 그랬던지, 아니면 아래위로 훌 터 본 나머지, 궁색한 아내의 외모에 오해해서 그랬는지, 하여튼 빵 값을 받은 적이 없으니 돈을 내고 빵을 가지고 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통하지가 않아서 아내는 울분이 터지고 결국 여자의 무기(?)인 눈물까지 총동원해도 쓸데없더라는 것이다. 궁색한 여인상으로 보여 진 그것으로 멸시를 받아야 하고, 거짓 누명을 써야만 하는 것이 원통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명을 벗는 방법으로 집에 돌아와서 등에 업은 우리 딸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얼굴 화장을 고치고 구두를 신고, 다시 그 빵집 주인 앞에 나타났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태도 급변과 공손한 언어와 「죄송합니다.」하는 말과 더불어 선뜻 빵을 내어 주더란 것이다.

 

이런 것을 일컬어서 「옷이 날개」라고 하던가. 인간의 외모에 따라서 인간을 다르게 평가하는 사회일수록 아직도 후진국의 때를 벗지 못했다는 단편적 증거가 아닐까. 또한 무조건 옷만 갈아 입으면 속마음도 아름답게, 선량하게, 자애롭게, 진실하게, 그리고 일약 위대하게 볼 수 있고, 보여 진다는 사고방식과 철학을 우리는 하루 빨리 추방해야겠다. 아무리 옷을 천만번 갈아 입어도 속마음이 쿵쿵하고, 시커멓고, 엉큼하고, 잔인하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제 이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물줄기와 더불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진실과 정 그리고 사랑의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갔으면 한다. 이것이 우리가 다 희구하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그 후로 우리 내외는 이따금씩 그 빵집을 찾아가곤 한다. 우리가 무슨 옷을 입었든지 간에 언제나 친절히 대해 주기만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저 우스워서 웃기만 했다. (1980.9.1.일자).

第2話: < 뚱보와 포옹의 변>

 

미국 대도시 번화가 십자로에 청신호 사인(sign)을 기다리고 서 있는 한 처녀(?)가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우선 장딴지 다리 한 쪽이 우리나라 여고생 거의 몸통만 했다. 독자는 그녀의 몸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리라. 그리고 입은 「티셔츠」 앞가슴엔 「살찐 것이 아니라 임신한 것이다.」란 글이 쓰여 져 있었다.(시실은 임신이 아니고 살찐 뚱보인데....) 청신호 사인이 나자마자 뒤뚱뒤뚱 걸어가면서도 부끄러움도 없이, 다만 「나 보란 듯이」 가슴을 쭉 펴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 그 여유작작함, 그 자신감, 그 자기 긍정의 모습이여! 경이에 이를 정도의 느낌이었다. 미국의 고속도로 진입로 주변, 그것도 아침 「러시아워」때다. 어느 청년이 몰고 오던 차와,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던 한 아가씨의 차가 우연히 서로 옆으로 가까이 멈추었다. 동시적으로 문이 열려지더니 그만 얼싸안고 몇 분을 경과하면서 서로 등을 자근자근 손으로 두드리며 그냥 ‘포옹’(Hug)하고 있는 것이다.(미국서 친한 사이에 인사로 때와 장소가 초월되는 때가 많다.)

 

이들의 차 뒤엔 빽빽이 밀어 닥친 긴 자동차 행렬이 있으나,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는 파란곡절이 있었고, 충분히 이유가 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눕시다.」하는 듯이, 그저 자신감 자기 정당성에만 차 있는 듯 했다. 교통법도, 수많은 사람들의 원성도 저들은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도 클랙슨을 누르는 사람도, 고함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모두가 차속에서 싱글 벙글 미소를 짓고 있는 것뿐이었다. 자, 「뚱보의 변명」이나 「두 청춘 남녀의 포옹」이나, 이를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어 주는 타인들」 의 장면들은 배달겨레의 피를 이어 받은 이 이방인의 심장을 마구 두들겨 주었다. 그네들의 자신감-「이것이 나다.」,「그래서 어쨌단 말이냐?」하는 그 자기 긍정에 감탄과 빙그레 웃어넘겨 주는 사람들의 여유와 아량! 아마 이것들이 미국 국민들의 기질인가 보다. 새 시대 새 물결 속엔 이런 자신감, 이런 아량과 여유도 함께 좀 세차게 흘러 왔으면 한다.

 

「지지리도 못난 것아! 너는 못해! 안 돼!」라는 부정적 부모나 교사의 말씀보다, 「너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뭐 아직 철이 없어 경험이 없어 그런 거야!」하는 긍정적 격려와 이해의 말씀이 아쉽다. 「넌 못났다! 넌 못한다!」하면 한평생 정말 자기는 못났고 못난 인간으로 생각 할 수도 있다. 이 처럼 무서운 독설은 없는데 우리는 예사롭게 생각하고 말한다. (1980.9.8일자)

第3話: <이 가슴의 空洞을 어찌 할까.>

 

지루한 장마, 무덥고 긴 방학, 그리고 벼농사 실패. 이젠 아침저녁으로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 때면 여기「동산」(東山)위에는 나뭇잎들이 누렇게, 빨갛게 물들고 우리들의 가슴엔 커다란 공동(空洞)이 뚫리는 것이다. 「인생들아!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하는 듯이 귀뚜라미는 또한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뜨린다.

 

기름 값이 또 오르고, 세상인심은 더 각박해 지겠지! 관리는 관리대로, 학자는 학자 나름으로,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무엇인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허전함이 그 가슴을 찾으리라. 조국 산천을 등지고 사랑하는 처자를 잠시 이별하고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를 왕래하면서 바쁠 땐 「라면」으로 점심 저녁을 떼 우고 「페이퍼」(학기말 소논문을 말함) 때문에 일상적으로 코피를 흘려가며 고생스럽게 공부했던 유학시절!

 

그 종이 한 장(학위증) 받기위해 몇 번이나 관(棺)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었던가! 한편 가족은 가족대로 정신적 물질적 타격으로 그 가슴속에 망울진 멍울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그렇게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인 오늘 여기 지성들의 고뇌가 깃들고 있다. 그뿐인가 어떤 목적이 성취된 이후에 오는 허전함! 가을이 문턱에 찾아오고 있는 금년도 추석은 어쩌면 더 깊이 가슴에 공동이 뚫리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내일 오후에 청명할지 흐릴지 모르나, 북망산(北邙山) 조상님 무덤에 잡초를 뜯을 성묘 길은 어쩌면 더 가슴에 공동이 커지는 길이리라. 그래도 자욱한 잡초를 휘어잡고 가신님의 영상과 더불어 싫도록 울고나 싶구나. 좀 시원해질지 모르겠다. 오곡백과 추수의 감격대신에 어쩌면 가신님 다시 못 보는 유한성(有限性)에 인생의 허무를 실감하는 내일이겠지.... 그러나 금년도 우리네 추석 축제 속엔 노래와 춤과 환희보다 그늘진 어두움이 짙어 진다해도 인간은 또한 축제 속에서 환영적(幻影的) 공상에 잠기기도 한다.

 

이것은 오늘에 절망하지 않고 내일을 향해 꿈을 꾸는 환상의 축제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가슴에 공동을 지닌 채 새로운 희망을 가져 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희망, 창조적 일의 보람 등의 농도에 따라 공동은 서서히 매워지겠지....(1980.9.22일자)

第4話: <추천서>

 

유학생을 울리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언어의 장벽, 달러, 고독이다. 첫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안 되어서 생활이 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생과장에게 가서 일자리를 하나 알선해 달라고 했다. 그때 나의 자화상은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동정과 온정을 가져 오리라고 기대하면서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학생과장은 한참 생각하더니, 「타이프」를 향해 의자를 돌리고 앉아서 하는 말이 「어떻게 하면 ‘사실’대로 쓸까.」(Ken!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본다) 그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방 맞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대로 쓰면 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뻔하였다. 그러나 나는 은근히 기대했다.

 

사정이 사정인 만큼 외국 학생으로는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법이나, 적당히 이 한국 목사를 그렇게 냉정히 울려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가장 진실대로 이민국에 서류를(일종의 추천서) 써내고 또 사실대로 쓴 나머지 칼자루를 주어진 사람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몇 주 후 교내에서 일주일에 몇 시간만 일하라고 조건부의 허락이 왔다. 사실을 왜곡되게 미사여구와 두둔한 동정심 때문에 「참」과 「사실」을 넘어서는 우리네의 추천서와는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를 절실히 느꼈다. 나의 신학 연구과정에서 책과 교수에게서 배운 학문의 내용보다, 신학의 기초를 다져주는 산 인간 공부를 한 셈이 되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일가친척도, 추천서는 가장 사실에 가까운 정직한 기술(記述)이 되는 사회일 때, 민주주의도, 인권도, 질서도, 살기 좋은 행복한 선진국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천서만은 사실대로 쓰는 새로운 물결도 일어났으면 한다. 지금도 내 주변의 제자나 교인들이 추천서를 부탁한다.

 

은근히 잘 써 달라는 눈빛을 하고 내 앞에 설 때마다, 나는 “Ken! 어떻게 하면 사실대로 쓸까?”하는 이 교훈을 언제나 되새겨 본다. 이런 생활철학을 우리 생활 도처에 적용하고 응용할 때, 물질문명과 함께 정신문화도 병행해서 발전할 수가 있을 것이다. (1980.9.30일자).

第5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교과서에서 인상 깊게 읽은 글 가운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안톤 슈낙’의 작품이 있었다. 「휴가의 마지막 날, 바이올린의 G선 소리를 들을 때, 그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요사이 자주 있는 휴일 이후 직장인은 휴일의 저녁이 가까워 오면 자꾸만 슬퍼진다. 또 한 주간 일과 동료들과 상사들과의 복잡한 인간관계 그리고 거기서 오는 긴장문제 등일 것이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일고, 낙엽이 한잎 두잎 대지 위를 굴러다닐 때, 저녁 달빛이 교교히 창문을 비추면 무드는 더욱 망친다. 어디선가 오열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때, 그것도 저음(G선의 소리)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일상적 생활인에서 뭐 심각히 사고하는 철학자나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인생이 뭐 길래.”, 「이다지도 애타며 가슴조이며 사는 것인가.」

 

「저 바람에 날아다니는 낙엽처럼 종말이 다 그렇게 될 것인데!...」이런 푸념을 속으로 중얼거리노라면 마치 세상사 초연하는 도사(道士)나 된 것처럼 환상에서 맴돌다가 현실적 생활인으로 돌아올 때, 가까스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가슴 아파하곤 한다. 그래서 잠시나마 계절이 가져다주는 것 중에 현실을 초연해 볼 수 있는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게 해 주어서 이 가을철이 좋다.

 

그러나 그 환상에서 깨어나면 우리는 또 괴로워하곤 한다. 이것이 생인가보다. 철석같은 굳은 맹약을 하고 한 목적을 위해 피와 눈물을 같이 나눈 동지를 배반하고,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이젠「너」가 필요 없다는 듯이 자기 이해타산에 충혈 된 인간! 의리도 동지의식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보호색 동물처럼 변하는 이런 인간을 볼 때, 우리는 슬퍼한다. 급하고 필요할 때는 갖은 아양, 필요 없을 때는 무심한 인간을 볼 때, 물건 취급 받아 온 것이 서러워 진다.

 

또 자라목 같은 기회주의 족속들을 볼 때, 그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인간사엔 순서가 있고 서열이 있다. 이 말은 연륜과 경험 속에 인생의 지혜를 쌓고 아픔과 고뇌를 지불하면서 비로소 ‘철’이 들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런 과정도 없이 ‘속성과’, ‘급성장’, ‘벼락감투’, ‘벼락부자’, ‘가짜 박사’ 등의 당연한 대가와 노력 없이 벼락, 속성 출세하려는 족속을 볼 때, 구역질이 난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오! 하나님이여! 굽어 살피소서! 하나님 가라사대 “인생들아! 자기 분수를 알지어다.” (1980.10.7일자).

第6話: <39살 입니다>

 

가을이란 계절이 주는 정감이란 「허전」, 「쓸쓸한 기분」등 이다. 가을 다음에 삭막한 죽음의 겨울이 오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흔히 「인생의 4계절」이란 말에서, 인생의 20대를 인생의 봄, 30-40대를 여름, 50-60대를 가을, 70-80대를 인생의 겨울이라고 구분해 보곤 한다. 그래서 연세가 얼마냐고 물을 때, ‘춘추’(春秋)가 얼마냐고 묻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는 삼복더위가 지나 머지않아 초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계절에 접했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고3때 내 나이 19살, 「어서 20대가 되어서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중,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친구들과 더불어 누나가 신다가 떨어진 「스타킹」(살 양말)을 가위로 절단해서 한쪽을 매듭지어서 밤에 잘 때, 푹 쓰고 자던 일이 생각난다.

 

이튼 날 학교에 가서 누가 더 잘 머리가 넘어갔는지 견주어 보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20대에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대학을 다닐 때, 교회 성도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할 때 「어린 종」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늘 불만이어서 어서 30살이 되었으면 했다. 막상 29살에서 30고개로 넘어가는 제야의 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30살. 그것은 「입년」(立年)의 해가 아닌가.

 

그래서 그간 뜻을 세워 「자기성장」, 「보람」을 위한 준비로 얼마나 고되었던 30대 세월이었던가! 더욱이 30대의 마지막 1년-밤에 잠을 자다가 깨어, 고요한 밤 들려오는 소리, 39살!, 길을 걷다가도 「나는 39살이다.」할 때, 소스라쳐 소름이 날 정도로 놀라기도 했다. 39살은 아직 좋은데, 40살이 된다는 것이 허전함과 「벌써」라는 놀라움의 느낌과 더불어 시간이 성큼성큼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토록 어서 세월이 가서 머리를 기르고 「어린 종」이란 호칭도 듣지 않는 30대 말년이 그다지도 서글플 수가.... 39살로 영원히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미국 사회에서도 여성들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실례지만, 좀 친한 사이에는 「몇 살이냐.」고 물으면 40. 50대를 넘고도 「나는 39살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흔히 들어 보았다. 더욱이 자기 자식이 39살 될 정도의 할머니들도 「몇 살이냐.」고 물으면 「39살」이라고 한다.

 

아마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에서 또 나이를 속이기 위한 하나의 「유모어」로 답변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인생 40대. 남자는 배가 나오고 각 분야에서 성공과 실패의 길을 저마다 달리는 때다. 이것은 30대를 어떻게 보내었느냐에 따라 흔히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40대를「위험한 40대 고개」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2 사춘기」라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공 후에 오는 소유욕, 명예욕, 애욕 문제로 함정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꽃다운 내 청춘도 다 시들어 간다는 의미에서 「히스테리」가 많고, 그래서 치마 바람이 센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월(靑春)! 이 인생의 「한계상황」을 어찌하랴! 단지 늘 새롭고 창조적 삶을 살아가는 예지와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행복과 불행의 분수령이 있다고 본다. 「나는 39살입니다」라고 하는 젊고 의욕에 찬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마른 잎은 굴러도 대지(大地)는 살아있다.”는 임어당(林語堂)의 말이 절실히 생각나는 계절이다. (1980.10.21일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