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설교, 설득 화술의 비결은 무엇인가?
-말의 신뢰를 얻어야 말에 힘이 있다.-
설교는 말이란 언어를 통해서 북음을 회중에게 전달되는 행위다. 물론 말은 성령의 감동(統制, Control)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의 통제가 있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 말에 힘이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예컨대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고통 하는 동족을 애급에서 탈출시키라는 분부를 받자 모세는 사양을 한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자기는 애급 바로를 상대하여 설득할 만한 말의 설득 능력이 없다고 했다(출 4:10).
그때 모세는 하늘의 부름도 없고, 땅의 부름도 없는, 완전히 허심탄회한 ‘빈 마음’(겸허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신뢰를 받으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같이함으로, 대변자 형 아론과 애급에서 배운 ‘학문’과 더불어 출애굽의 새장을 열었다. 사도 바울도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고후11:6)라고 했다. 헬라계통은 웅변술이 능했다. 그러나 바울은 회중을 향한 웅변가는 아니었다. 그의 지식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헬라 철학에는 능통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지식’에다가 성령의 통제 하에서 신약성서의 절반이 되는,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한 것이다. 예레미야도 말에 능치 못했으나(렘1:6)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말씀을 준 것과 진실 된 ‘눈물’로 동족에게 회개를 촉구할 힘을 받았다. 모세, 예레미야, 바울 같은 종들에게는(바울은 구약성서가 있었음) 성서가 형성되기 전인고로, 하나님께서 직접 현현(임재)하시어 그들의 입과 지식에 하나님의 능력을 불어 넣음으로써 위대한 일을 하게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 시대로 오직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신· 구약 성서가 있다. 그래서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가 구비되어야 현대인들에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1). 말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현대는 대중의 시대요, 동시에 매스컴 시대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내는 척도이며, 화술이야말로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남에게 자기가 생각한 바를 알리고,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화술이야말로 설교자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적 견지에서 목사들은 사실인즉 말로 사는 생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런데 말에는 ‘지우개’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번 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가 없다. 대중적인 회중을 향해서 설교로 말을 하고, 개인 상담을 통해서 말을 하고, 교인개인이나 동역자 간의 말로 서로 교제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을 통해서 약속을 한다. 약속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에 따라 ‘신용’이란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신용을 잃으면 청산유수 같은 언변으로 아무리 설교를 해도 회중은 신용치 않아서 은혜를 끼치지 못한다. 언행으로 인간 평가를 하게 된다.
언행일치 하는 사람을 <최상급>으로 그를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그의 말을 믿는다. 그 다음<중급인간>이라고 평가되는 사람은 불언행동의 사람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저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급인간>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불언부실행(不言不實行)으로서, 할 말도 안하고, 할 일도 안하는 사람을 말한다. <제일 밑창의 인간>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유언부실행(有言不實行)인간이라고 한다. 말은 번지르르 하게 해 놓고서 할 일은 안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말을 할 때는 반드시 공사석을 막론하고 ‘무엇 때문에 말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좋은 화술이란 자기 말의 목적을 달성하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말의 목적이란 좋은 의미에서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나쁜 목적의 말도 있기 때문이다. 말의 목적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의사거래(意思去來)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거래란 사회적 교제의 기본단위를 의사거래라고 한다. 그 의사거래 되는 말을 분석하는 것을 의사거래 분석(Transactional Analysis)이라고 한다.
의사거래 분석을 해 보면, 거기에는 훈육적(訓育的) 개념, 합리적 개념, 감정적 개념이 있다. 인격이란 이 세 가지 현실에서 때와 장소 그 분위기에 따라서 어울리게 의사 표현, 행동, 얼굴 표정, 감정처리를 해야 우리는 바람직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말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말의 힘이 솟아나는 것이다.
2). 화술표현의 원리는 무엇인가?: 첫째 원리는 강조법이다. 설교시간에 단조롭게 말하면 결국 설교자는 회중을 졸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고래고래 고함 소리만 지르면, 회중은 부담감과 불안감이 커져서 저러다가 목사님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힘도 소모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낮춤 강조(저음), 보통 음성, 높임 강조(고음) 등 세 가지가 있는데, 문장에 따라서 그 낱말을 특히 강조할 때는 힘주어 말하고, 보통 음성으로 말하다가 심각한 상황을 말할 때는 높임 강조보다 낮춤 강조가 더 회중의 가슴에 스며들게도 한다.
별안간 높임 강조를 하지 말고, 서서히 물 흐르듯이 유유히, 그 다음 폭포를 만나 우렁차게 내리치는 사자후(獅子吼)를 토해야 한다. 둘째 원리는 예컨대,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말을 할 때, ‘띄어서 말’을 해야 한다. 즉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셋째 원리는 감정 표현이다. 자연의 꽃이 아닌 조화(造花)에는 생명력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이 깃들지 않는 단순한 목소리는 살아있는 화술이라고 볼 수 없다. 넷째 원리는 소리의 원근을 살려야 한다. 적은 청중이나 가까운 곳에 있는 회중에게는 톤을 작고 낮게, 많은 회중이나 먼 곳에 있는 회중이면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다섯째 원리는 동격표현(同格表現)이다.
동격(Apposition)이란 강조를 위한 수사로서 같은 낱말이나 어구의 반복, 비슷한 낱말이나 정 반대 되는 낱말의 나열을 말한다. 예컨대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입니다.’라고 할 때, ‘독도는(높임 강조) 대한민국의 땅입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땅입니다.’(높임 강조) 또는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할 때, 낮춤 강조에서 그 다음은 보통 음성, 마지막엔 높임 강조로 하는 경우와 반대로 높임 강조에서 그 다음은 보통 음성, 마지막은 낮춤 강조로 하는 것을 동격표현이라고 한다.
3). 화술 표현의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수나 배우가 대사나 노랫말을 익숙히 암기하듯이 설교도 철저히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요한 부분은 외우듯이 익혀 두는 것이 좋다. 둘째는 멋진 서두(서론)로 회중을 사로잡아야 한다. 첫 마디가 “성서말씀에 의하면”, “본문말씀은”이라고 하면 회중은 “우리 목사님, 또 성서말씀에 의하면 한다.”고 할 때, 이를 본문말씀이라고 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하듯이 회중은 별스런 관심과 호기심으로 집중하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회중을 상대한 화술에도 교훈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교인들 중에는 몸은 교회에 와서 앉았지만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는 교인들이 많다. 그러니 설교의 첫마디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셋째는 논점을 철저히 고찰하라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마음가짐으로 자기의 논점을 철저히 고찰하라는 것이다. 언어는 사상의 표현이기에 단순한 생각에서 특히 판단과 논리(연역법과 귀납법)가 정연해야 한다.
넷째는 교훈적이고 유쾌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의 방법론까지 내용이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투도 너무 딱딱한 말의 표현은 회중을 잠재우게 한다. 다섯째는 적절한 예화로 회중에게 확신을 심어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열정적으로 생기 있게 말하라는 것이고, 일곱째는 회화체(대화체)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강렬한 말로 결론의 여운을 남기라. 저 유명한 링컨의 게티스버그에서 민주선언의 연설의 여운은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정치’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시대의 대웅변가인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폭군 루이를 처형해야 한다.”에서 “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이 슬픈 진리를 말합니다. 수 십 만의 선량한 시민보다 차라리 루이 한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조국이 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루이가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압제자를 처벌함은 인간의 자유가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여운의 예다.
4). 회중 설득의 목적, 회중분석 및 설득방법은 무엇인가?: (1). 설득 목적-민주국가와 민주정치 체제의 교회 생활을 하는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 되는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헬라의 웅변가인 고르기아스(Gorgias, BC. 500-391?)는 ‘웅변술에는 타인을 지배하는 커다란 힘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설득의 목적에는 그 첫째가 동기부여다. 회중으로 하여금 설교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확신을 심어 주는데 있는 것이다. 둘째는 태도변화다. 회중의 행동방식이나 신념을 설교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게 하는데 있다. 셋째는 태도강화다. 회중(교인)이 현재에 가지고 있는 행동방식이나, 신념을 계속 유지하도록 강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2). 회중 분석-회중을 변화시키고자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회중을 설득하기 전에, 먼저 회중을 알아야 한다. 첫째,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요구가 무엇인지, 설교자가 아는 것이 기본 임무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멋진 은혜로운 설교라도 회중이 관심을 갖고 들어주지 않는다면, 마이동풍이 되고 만다. 둘째, 회중의 수준이다. 수준이 높은 계층인가, 낮은 계층인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 맞추어야 한다.
셋째, 연령층이다. 젊은 층이 많다면 미래 지향적인 내용을 요구할 것이다. 노년층이 많으면 과거 사건을 화제로 다루면 좋을 것이다. 넷째, 성별이다. 남성층이 많으면 노력·사업·성공 등이 관심사일 것이고, 여성이 많으면 사랑·육아·미용 등이 화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중이 많으면 군중심리 유발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가 효과적일 것이다. 회중의 수효가 적으면 이기적이기 때문에 논리에 호소하는 설득이 효과적이다.
(3). 설득 방법-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쓰인 '수사학'(Rhetoric)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설교자의 진정한 가치에 기반을 둔 ‘에토스’(Ethos) 방법, 논리적 호소의 메시지 기반을 둔 것이면 ‘로고스’(Logos)방법, 감정적 호소의 메시지 기반을 둔 것이면 ‘파토스’(Pathos) 방법인 것이다. 첫째, ‘에토스’ 방법-회중이 설교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설교자의 인격에 크게 좌우 된다. 설교자의 인격이 훌륭하면 회중은 그의 말을 믿는다. 회중에게 신뢰가 무너진 목사는 아무리 청산유수 같은 설교를 해도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인도의 간디 같은 어른이다. 간디가 단식을 하면 수억의 백성들이 종내 간디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 약 4 백년 통치 하에 간디라는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했다. 설교자는 적어도 자기 교회 회중(교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설교자의 재치와 친밀성, 진지성, 주제에 대한 설교자의 권위와 특별한 지식, 설교자 자신의 자신감, 명예와 성격 일체를 회중이 받아들이고 믿어야 말에 권위가 있는 법이다.
둘째, ‘로고스’ 방법이다. 성서에 대한 증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회중의 이성에 호소하고 설득하는 방법이다. 연역법과 귀납법 및 인과론(因果論)으로 호소하면 회중이 설득을 당한다.(지적 수준에 따라서) 인과론이란 것은 사건(말씀 내용의 사실)의 원인에서 출발하여, 경과 과정이야기-결과 등으로 설교자가 전하면 회중은 이성적인 면에서 설득이 된다.
셋째, ‘파토스’ 방법이다. 설교자가 신뢰 받고 있거나 논리적인 설교를 잘할지라도 설득에는 실패할 수가 있다. 그 이유는 회중의 감정과 연결하지 못한 채 동떨어진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감정에 많은 지배를 받고 있다. 회중을 진정으로 설득하고 싶으면, 이론만 따지지 말고 그들의 감정에 호소할 일이다. 이상의 세 가지 방법을 이용해도 안 되면, 세 가지 방법을 혼합하여 즉 인격·이성(논리)·감성을 사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2015. 9. 11.
山下연구원장: 양 견 박사
'02. 신학이론마당(7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1. 설교, 그 뒷이야기 (1) | 2025.01.31 |
|---|---|
| 40. [신학연구]: <한(恨)의 神學> (0) | 2025.01.28 |
| 38. 어떻게 설교를 논리적으로 작성할까 (0) | 2025.01.20 |
| 37. "가장 낮아진 성자"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 (0) | 2025.01.11 |
| 36. 대중가요에 대한 신학적 명상 (0) | 202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