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민족의 노래 해설>:[울 밑에 선 봉선화]
1. 울밑에 선 봉선화(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2.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3. 북풍 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 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
“울 밑에 선 봉선화”는 소프라노 김천애(1919~1995) 여사가 1942년 봄 도쿄에서 열린 한 음악회에서 앙코르로 부르면서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천애 여사가 흰색 저고리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자 동포 청중은 금세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합니다. 그해 가을, 서울과 평양 등에서 개최한 귀국 음악회에서 ‘봉선화’를 다시 불러 조선인의 마음을 울리자, 일제는 금지곡으로 묶고 음반까지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래는 이미 야금야금 전국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최대 히트곡이 됐다고 합니다.
봉선화 노래의 인기 비결은 역시 저항 의식이 강한 노랫말과 애절한 선율 때문이었습니다. 초가집 울타리 밑에서 모진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마침내 한여름에 빨갛게 피어나는 봉선화의 이미지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갈구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맞아떨어졌습니다. 어떤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굳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풍한설 찬바람에/네 형체가 없어져도/평화로운 꿈을 꾸는/너의 혼은 예 있으니/화창스런 봄 바람에/환생키를 바라노라.”
특히 3절에는 비애를 넘어 부활을 다짐하고 있어 숙연해집니다. 76세에 타계한 김천애 여사는 생전에 1~2절은 3절을 도입하기 위한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폐부를 찌르는 그 시구가 아니었더라면 ‘봉선화’ 선율은 영원히 사장되었을지 모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봉선화’는 일제 강점기에 겨레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노래로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작곡자 홍난파가 친일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답니다. 그가 말년(1937~1941)에 일제에 협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소설가, 번역가, 음악가로서 민족 예술에 공헌한 부분은 확실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준엄한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하겠지만, ‘공(功)은 공이고 과(過)는 과다.’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쉽게 풀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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